탐구생활/Cooing's

[+1162days] Let it go

토닥s 2015. 11. 24. 23:41
얼마나 여기저기서 틀었던지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frozen 을 보지 않은 나도 알게 된 노래 - Let it go.

지난 주 누리가 드라마 댄스라는 체육수업을 하는 동안 아랫층에 앉아 기다리는데, 셋 밖에 안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문 밖으로 흘러나온다. 겨울답게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이 나오더니 이어 나오는 Let it go.

가사를 처음으로 찾아봤다. 대략 성장기라는 스토리를 감안해서 옮기면 '그냥 두자/내려놓자' 정도의 뜻이 될 것 같은데, 누리가 쑥쑥 자라는 상황과 맞물려 울컥-.

아이들이 수업하는 윗층으로 올라가 살며시 들여다보니, 스카프로 가려져 있지만, 세 명의 아이들이 푸른색 스카프를 흔들며 강당을 신나게 뛰어다니고 있다.

이젠 정말 누리가 자라나는 대로 그냥 두어야 할 때인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방치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

누리는 놀랍게도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고 있다.

어린이집 내에서 휴대전화 사용/사진 촬영이 안된다는 사실을 알기 전 찍은 유일한 사진

어린이집을 시작한 첫 주 기저귀 떼기와 병행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내가. 매일매일 정해진 시간에 애를 데려다 나르는 게 '일'이었다.
두번째주부터는 기저귀 없이 어린이집에 가는 실험을 시작했고, 나도 어린이집에 누리를 내려놓고 밖으로 나와 인근 까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기저귀 없이도 한 번 실수도 하지 않고 한 주를 보냈다. 그래서 이번주부터, 어제부터는 누리를 내려놓고 집에와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국에 다녀와서 부모 동반 없이 하는 체육수업을 다시 시작할 때만해도 40분 누리를 떼어놓은 것이 큰 실험이면서 도전이었다. 생각만큼 되지 않아 내가 배경처럼 2주 정도 강당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런 준비가 있어서 어린이집도 금새 적응하게 된 게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3살이 다되도록 나와만 시간을 보낸 누리가 어린이집에 적응하기 쉽지 않을꺼라고 했다. 게다가 누리는 이곳 3살 아이들만큼의 언어수준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나도 그런 걱정이 들긴 했지만, 다른 마음도 있었다.

놀이터나 도서관에 가면 꼭 지나는 초등학교가 있는데 그 담벼락 안에서 들려오는 아이들 소리에 누리가 늘 궁금해했다. 그래서 '학교'와 '스쿨 school'이라는 단어를 벌써 알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지금 누리가 가고 있는 어린이집에 뷰잉을 갔을 때 선생이 이야기하는 동안 아이를 놀려보라고 했다. 그런데 아이들 틈에 끼어서 이것저것 해보더니 마칠 때까지 남아서 과일간식까지 얻어먹고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보면서 누리도 이제 또래의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아직 부족한 부분도 있다. 지난 금요일 저녁 목욕을 하려고 보니 다리에 생긴지 얼마되지 않아보이는 붉은 멍이 있었다. 3~4일이 지난 지금은 거뭇한 멍이 되었다. 그 때 누리에게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못한다. 기억을 못하는 것인지. 그래서 의자에 부딪혔느냐, 테이블에 부딪혔느냐, 블록에 부딪혔느냐, 다른 사람과 부딪혔느냐, 넘어졌느냐 차례로 물어봐도 "아니"란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울었느냐 물었더니 그것도 "아니"란다.
보통은 누리를 데려오면서 선생에게 별일 없었냐고 묻곤 하는데, 지금 물음의 의미는 대소변관계가 주요 목적이다, 별 언급이 없었던 걸로 봐서 울지도 않은 게 맞는 모양이다. 울었으면 선생이 말을 해줬을텐데.
누리가 신변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딱 수준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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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마치는 시간에 누리에게 "재미있었어?", "화장실 갔었어?"하고 묻는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질문을 하는지 궁금하네. 물론 "오늘은 뭐했어?"하고 묻지만 아직은 나름 여러 단어를 나열하지만 내게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다. '대화'가 되는 그런 날도 오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