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가 한 돌이 되기 전까지 가끔 어울려 차를 마시거나 서로의 집으로 초대해 밥을 먹곤 한 두 명의 엄마들이 있다. 비슷하게 딸들을 낳은 엄마들. 한 명은 가까이 사는 (그리고 블로그에 가끔 언급된) 독일인 엄마고 한 명은 한 동네라긴 어렵지만 걸어서 대략 15분 거리에 사는 영국인 엄마다. 이 영국인 엄마와 우리가 사는 곳의 중간 지점에 도서관이 있어 그 근처 까페에서 커피를 마시곤 했다.
나를 빼고 이 두 엄마 모두 모유수유를 했는데, 두 엄마 모두 자연주의 육아에 관심도 많고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라 모유수유의 때와 장소에 관해서 스스럼 없는 사람들이었다. 까페에 앉아 모유수유를 해도 가리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간혹 그런 두 엄마를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긴 했다. 그럼 우리끼리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저 사람 왜 쳐다봐"하며 불만을 토로하긴 했다. 그래도 모유수유를 계속했다.
그런 굽히지 않는 마음이 부러웠다. 내가 모유수유를 할 수 있어 했더라면 그랬을까 하고 나를 대입해보면 나는 가림막을 구입했을 듯 싶다.
이들 두 엄마가 유난스러운 게 아니라 모유수유가 권장되면서 이런 풍경을 자주 볼 수 있다.
영국인 엄마는 공공장소에서 모유수유는 자연스럽지만 아이 기저귀를 가는 건 화장실에서 해결한다. 하루는 외출하였는데 간 곳에 기저귀 교환대도 없고 눕혀서 갈 수 있는 유모차도 없었던 때여서 화장실 바닥에서 기저귀를 갈았다고 한다. 한국서는 기저귀는 밖에서 갈고 모유수유는 화장실에서 한다는 경험담을 들었는데. 사실 그 이야기는, 화장실에서 모유수유를 했다는 이야기는 화장실 바닥에서 기저귀를 갈았다는 것보다 더 슬프다.
하여간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모유수유 풍경인데 요사이 나도 '띠옹~'한 순간이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누리를 데리고 수영장에 가려고 노력한다. 한 2주 전에 수영장 풀에서 누리랑 첨벙첨벙하고 있는데 얕은 물가에 앉아 아이를 데리고 있던 두 엄마 중 한 명이 풀에 앉아서 모유수유를 한 것이다. 머리에서 그럴 수 있지 생각하고, 입으로도 그럴 수 있지 말해보지만 그뿐이다. 정말 띠옹~했다.
오늘도 수영장에 갔다 평소와 같이 점심을 먹으러 인근 쇼핑 상가(?)에 들렀다. 창가에 앉아 누리와 토스트를 먹었다. 창밖을 보면서. 그런데 한 엄마가 아이를 품에 안고 걸어가며 모유수유를 하고 있었다. 가림막 같은 거 없이. 또 띠옹~했다.
사실 그 상가라는 게 주택가에 위치해서 엄마들이 필요한 브랜드들이 죄다 입점해 있다. 아가방 같이 아이들 용품을 파는 곳에서부터 슈퍼형 약국, 마트. 그래서 곳곳에 기저귀 교환 시설은 물론 수유공간이 있다. 까페도 있고. 그런데-. 나쁘다거나 싫다는 게 아니라 그저 놀라운 풍경이었다는.
내가 띠옹~한 두 풍경은 평범한 것은 아니지만, 모유수유의 풍경이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 익숙함이 있기 전에 엄마들의 굽히지 않는 마음(용기라 하고 싶지는 않다)이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그 엄마들이 고맙다.
+
보통은 하나의 넓은 화장실에 남녀아기장애인 모두 사용토록 되어 있는데, 기저귀 교환대 시설이나 장애인 시설이 공간부족 때문에 만들기 어렵다면 모든 이용자시설을 다 넣을 수 있는 하나의 화장실을 만드는 게 방법인 것 같다. 기저귀 교환대 옆 문에 달린 두 개의 가방걸이는 짐이 많은 우리 (?) 같은 사람에게 반가운 배려다. 언제쯤 이런 배려가 표준이 될까.
나를 빼고 이 두 엄마 모두 모유수유를 했는데, 두 엄마 모두 자연주의 육아에 관심도 많고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라 모유수유의 때와 장소에 관해서 스스럼 없는 사람들이었다. 까페에 앉아 모유수유를 해도 가리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간혹 그런 두 엄마를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긴 했다. 그럼 우리끼리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저 사람 왜 쳐다봐"하며 불만을 토로하긴 했다. 그래도 모유수유를 계속했다.
그런 굽히지 않는 마음이 부러웠다. 내가 모유수유를 할 수 있어 했더라면 그랬을까 하고 나를 대입해보면 나는 가림막을 구입했을 듯 싶다.
이들 두 엄마가 유난스러운 게 아니라 모유수유가 권장되면서 이런 풍경을 자주 볼 수 있다.
영국인 엄마는 공공장소에서 모유수유는 자연스럽지만 아이 기저귀를 가는 건 화장실에서 해결한다. 하루는 외출하였는데 간 곳에 기저귀 교환대도 없고 눕혀서 갈 수 있는 유모차도 없었던 때여서 화장실 바닥에서 기저귀를 갈았다고 한다. 한국서는 기저귀는 밖에서 갈고 모유수유는 화장실에서 한다는 경험담을 들었는데. 사실 그 이야기는, 화장실에서 모유수유를 했다는 이야기는 화장실 바닥에서 기저귀를 갈았다는 것보다 더 슬프다.
하여간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모유수유 풍경인데 요사이 나도 '띠옹~'한 순간이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누리를 데리고 수영장에 가려고 노력한다. 한 2주 전에 수영장 풀에서 누리랑 첨벙첨벙하고 있는데 얕은 물가에 앉아 아이를 데리고 있던 두 엄마 중 한 명이 풀에 앉아서 모유수유를 한 것이다. 머리에서 그럴 수 있지 생각하고, 입으로도 그럴 수 있지 말해보지만 그뿐이다. 정말 띠옹~했다.
오늘도 수영장에 갔다 평소와 같이 점심을 먹으러 인근 쇼핑 상가(?)에 들렀다. 창가에 앉아 누리와 토스트를 먹었다. 창밖을 보면서. 그런데 한 엄마가 아이를 품에 안고 걸어가며 모유수유를 하고 있었다. 가림막 같은 거 없이. 또 띠옹~했다.
사실 그 상가라는 게 주택가에 위치해서 엄마들이 필요한 브랜드들이 죄다 입점해 있다. 아가방 같이 아이들 용품을 파는 곳에서부터 슈퍼형 약국, 마트. 그래서 곳곳에 기저귀 교환 시설은 물론 수유공간이 있다. 까페도 있고. 그런데-. 나쁘다거나 싫다는 게 아니라 그저 놀라운 풍경이었다는.
내가 띠옹~한 두 풍경은 평범한 것은 아니지만, 모유수유의 풍경이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 익숙함이 있기 전에 엄마들의 굽히지 않는 마음(용기라 하고 싶지는 않다)이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그 엄마들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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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하나의 넓은 화장실에 남녀아기장애인 모두 사용토록 되어 있는데, 기저귀 교환대 시설이나 장애인 시설이 공간부족 때문에 만들기 어렵다면 모든 이용자시설을 다 넣을 수 있는 하나의 화장실을 만드는 게 방법인 것 같다. 기저귀 교환대 옆 문에 달린 두 개의 가방걸이는 짐이 많은 우리 (?) 같은 사람에게 반가운 배려다. 언제쯤 이런 배려가 표준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