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5년

[etc.] 과일단상

토닥s 2015. 6. 13. 07:55

바로 며칠 전까지 런던은 초봄처럼 추웠는데, 어제 오늘은 초여름 같다.  이제 여름인가 싶은데 영국의 여름은 한국의 봄만큼이나 짧게 느껴지니 제대로 즐겨야 한다.  높아진 기온 말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해주는 건 과일값과 맛이다.  일년 내내 똑같은 과일을 장바구니에 담을 수는 있지만 그 가격과 맛은 참 다르다.  아무래도 봄과 여름이면 과일이 싸고 맛있다.  요즘이 그렇다.


과일을 밥만큼이나 많이 먹는 누리라서 정말 사서 채우기가 바쁘다.  사과 같은 건 오래 가지만 요즘 즐겨 먹는 딸기, 라즈베리, 블루베리 같은 건 3일을 못가니 그 주기로 장을 봐야한다.  사실 빵, 우유, 과일 같이 많이 먹고 유통기한이 짧은 식재료 때문에 거의 매일 마트를 들락날락한다.  운 좋으면 이틀에 한 번.  그런데 이 과일들은 가방에 꽉꽉 눌러담기도 어렵고, 박스는 크고 뭐 그렇다.  그런데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우니 부지런히 사다 나른다.  단맛, 신맛 때문에 애들이 과일을 다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다.  이웃의 아이도 그렇고, 다른 집 아이도 그렇고 바나나만 먹는단다.  그러면서 다양한 과일과 토마토를 삼시세끼+간식으로 즐겨 먹는 누리를 늘 부러워한다.


장 봐온 과일들을 늘어놓고 보니 영국에서 나는 건 딸기 뿐이다.  사과는 뉴질랜드, 붉은 포도는 칠레, 라즈베리와 블루베리 스페인, 그리고 바나나는 콜럼비아.  사진에 없는 오렌지, 복숭아도 스페인.  


누리는 이 많은 종류를 하루에 다 먹는다.  한 개라도 빠지면 "어.."하면서 손가락을 턱에 대고 뭔가 생각하는 척 하다 "아!" 하면서 달라고 한다.










지비의 사촌형네 조카는 일년 내내 블루베리를 먹는데, 그 산지를 보면 계절따라 지구를 한 바퀴 돌더라고.  나는 겨울에 먹는 블루베리는 맛도 없고 비싸기만 해서 날씨가 좋아진 요즘 많이 먹이고 있다.  맛도 있고 가격도 많이 싸져서.  그런데 정말 싼가.


딸 둘을 키우는 지비의 친구가 지난 번에 만났을 때 과일 잘먹는 누리보고 그런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이 한 번에 조그만 블루베리 상자를 뚝딱 먹어치우는데 2분도 안걸리는데 2파운드나 한다고.  한참 자라는 아이들에겐 양이 적어 심지어 티격태격.  그런 돈들이 은근 부담된다고.  그땐 그런가 했다.  누리가 어려 먹는 양이 얼마되지 않고, 그저 먹어주는 게 고마웠으니.  여전히 잘 먹어주는 게 고맙지만, 요즘 문득 우리가 과일 사는데 쓰는 비용이 적지 않을꺼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한국보다는 훨씬 싼 가격이라는 것 알지만.  한국에 다니러가면 이런 게 좀 걱정이 되기는 한다.  여기서 먹는만큼을 어떻게 조달(?) 할 것인가.


예전에 한국서 여행을 온 후배가 바나나가 참 맛있다고 했다.  나는 여느 마트 가리지 않고 공정무역 바나나를 산다.  후배 말론 협동조합 마트에서 여기서 먹는 것 같은 바나나를 살 수 있지만 참 비싸다고.  5개 정도면 만원을 한단다.  나도 보통 5~6개씩 무게로 사는데 보통 0.6파운드.  한국돈으로 천원이다.  지난번 한국에 갔을 때 엄마가 누리 먹으라고 바나나를 샀다.  그런데 그때 먹어보니 후배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한국 있을 땐 몰랐는데 정말 맛이 없었다.


+


하지만 지비는 바나나 하나 먹을 때도 허락을 받아야 한다.  애 데리고 마트 가기가 만만하지 않고, 누리가 먹을 분량은 마트 갈 날과 맞추어 계산되어 있으니.  돈은 지비가 버는데 불쌍하네.  그나마 나는 누리 과일 준비하면서 주워(?) 먹거나 나눠 먹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