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5년

[life] 선물

토닥s 2015. 6. 9. 06:43

지난 주 K선생님이 계시는 길포드라는 도시에 다녀왔다.  런던의 외곽 도시인데 부산으로 치면 창원이나 마산, 진주쯤 거리.  벌써 오래 전에 한 번 보자고 연락을 주셨는데 시간이 안맞아서 아이들 중간방학 뒤로 미뤘다.  내가 누리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과 선생님의 생활반경 중간쯤에서 만나려다 선생님 댁으로 가서 뵙게 되었다.  다음을 위해서 내가 운전해서 다녀왔다, 조수석에 앉은 지비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집밥을 해주시는 동안 정원에서 누리랑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밥은 정원에 앉아서 먹고.  '아 영국사람들이 이래서 정원을 좋아하는구나' 싶지만, 그것도 여건이 되어야 바람대로 살아지지.   경제적 여건 말이다.

정원에 워낙 볼거리 만질거리 놀거리가 많아서 누리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점심이 마무리 되었을 때 선생님이 닭들과 놀라고 닭을 풀어주셨는데, 누리는 쫓아가고 닭들은 피하는 형상.  결국은 병아리를 잡아주셨다, 누리 만져보라고.







돌아오는 길에 그 집에서는 활용도가 낮아진 책들을 누리에게 주셨다.  시간에 쫓겨 일단 실어왔는데 집에와서 보니 절반쯤 되는 보드북은 지금 누리가 읽기에 딱 좋은 것들이고, 나머지 절반은 좀더 자라야 볼 수 있을 것 같다.  책 두 상자에 든든하게 배가 부르다.


재미있는 건 많은 책들이 영국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책들이었다.  지난 번에 주신 모빌책 한권도 누리가 좋아했는데 자세히보니 영국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었다.  지비는 한국에서 애들 책이 이렇게 많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놀라다가, 많은 책들이 영국책이 원작이라는 사실을 알고나서는 다시 한국에선 아이들 책 안만들고 왜 쉽게 번역만 하냔다.(- - );;


먼길 다녀와서, 초보운전자라 운전 자체에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일찍이 잠들고 다음날은 또 새벽 같이 일어나 도시락을 싸서 하이드 파크에 다녀왔다.  친구들을 만나러.


우리가 참 좋아하는 친구들인데 좀 서운한 일이 있어 약간 소원하게 지냈다.  친구들이 연락을 해와 오랜만에 만났더니 고향, 콜럼비아, 다녀오면서 누리 선물과 우리 선물을 사왔다.  뭘 사와서 그런게 아니라 아이 데리고 먼길 다녀오면서 이런 걸 챙겨왔다는 게 두 배로 고맙게 느껴졌다.  우리 주변에서는 해롤드를 제외하곤 이런 사람들이 잘 없다.  해롤드는 벨기에 출신인데 집에 다녀올 때 종종 초콜렛을 사온다.

전날 책 선물로 든든했는데, 커피와 인형을 받고는 따듯해졌다.  토요일 커피 선물을 받고 일요일, 오늘 계속 그 커피를 마시고 있다.



벽 앞에서 이야기하는 기분이 드는 이곳의 인간관계를 두고 종종 투덜거렸는데, 그 기분을 잠시 동안은 밀쳐둘 수 있을 것 같다.  견물생심이라지 않는가.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