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Cooing's

[+819days] 매직워드s

토닥s 2014. 12. 17. 07:11

매직워드s 


지비와 나는 각자의 언어를 쓰려고 노력하되 누리에게 특별히 언어를 가르치지는 않는다.  특별한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여력과 능력이 없다.  그럼에도 누리에게 가르치려고 한 몇 가지 단어가 있는데 바로 '플리즈'(please 부탁해요)와 '땡큐'(thank you 고마워요)다.


특히 '플리즈'에 관해선 (왠만한 것은 다 들어줄 수 있는) '매직워드'라며 지비가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가르쳤다는 게 별 게 아니라 누리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 '플리즈'를 더하도록 했다.  나는 '매직워드'라는 단어가 참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지비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라 보통 '플리즈'를 그렇게들 부르는 것 같았다.  누리가 보는 어린이 만화에서 주인공 토끼가 친구 코끼리에게 무엇인가를 청하면서 "플리즈라는 매직워드를 썼는데도 안들어줘?"라는 대화가 나온 걸로 봐서.


그래서 누리는 '플리즈'를 말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선명하게는 아니고 '프-즈' 정도로.  '땡큐'도 말했는데, 그러고보니 요즘은 그 단어를 잘 안쓰네.


그러고서 최근에 가르치려고 했던 단어가 또 있는데 바로 '쏘리'(sorry 미안해요)다.  사람이 살다보면 그런 말을 할 일이 있지 않은가.  누리는 '쏘리'라고 말해야 할 상황에 '쏘리'를 요구하면 더 울음을 터뜨리곤 하였다.  그런데 지난 일요일 아침, 먹던 씨리얼을 거부하면서 손을 휘두르다가 지비가 숟가락에 담아 들고 있던 씨리얼이 누리의 발에 떨어졌다.  당연, 지비는 화가 났다.  그런데 그때 누리가 처음으로 "쏘리"라고 말했다.  그 순간 냉냉하던 상황이 스르륵 종료되었다.  '쏘리'의 힘이란 그런 것이다.


그 외에도 누리는 (지비의 표현에 따르면) 스폰지 처럼 단어들을 습득해나가고 있다.  대부분의 언어가 영어라는데 우리는 씁쓸해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하는 말들을 이해하고 있다는데 위로를 삼는다. 


단어익히기 장난감


누리가 먹는 과일 스무디를 사면 알파벳이 들어있는 자석이 3개씩 따라온다. 알파벳 'a'있고 그림은 사과apple인 그런 자석 카드.  누리가 잘 가지고 놀기는 하는데, 누리에게 필요한 건 알파벳을 알고 단어를 아는 게 아니라 그냥 사물을 아는 그 자체인 것 같아서 1월 한국에서 오는 언니 편에 한글단어 카드를 부탁해놓았다.  벌써 구입을 했고, 언니가 1월에 들고 올 예정인데 이곳에서 알고 지내는 K선생님이 딸님이 썼던 장난감(이름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를 보내오셨다.  역시 같은 길을 벌써 지나간 분이시라 지금 이 시기에 누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셨던 것이다.




부직포로 만들어진 사물이 있고, 그것과 짝을 이룬 단어카드가 있는 장난감이다.  뒤에 찍찍이 밸크로가 붙어 있어 커다란 초록색 부직포에 붙일 수 있다. 

사실 처음 이 장난감을 받고 직접 만드신 줄 알고 깜짝 놀랐다.  K선생님의 노력 - 한국어를 물려주고자 한 선생님의 노력이 너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단어를 찬찬히 보니 직접 만드신 것 같지는 않았다.  영국에서는 쓰지 않는 단어들이 제법 있었다.  그래도 선생님의 노력대로 한국어를 물려줄 수 있었기에 그 대단함은 여전하다.  그 동안 우리는 '주말학교' 보내자며 너무 손을 놓고 있었던 것도 같다.  반성!


+


(전혀 다른 이야기로 가서) 오늘 오후 급하게 약속장소로 가다가 사고(?)가 발생했다.  내 머리는 생각에 잠겨 있었고, 발은 부지런히 걷고 있었다.  손을 잡고 가던 누리가 유모차에 타겠다고 해서 태웠는데 밸트를 하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길거리에서 씨름할 여유가 없어 일단 태우고 바쁘게 걸었다.  그러다 유모차가 보도블럭이 (정말) 조금 튀어나온 곳을 지나면서 덜컹함과 동시에 누리가 그대로 앞으로 철퍼덕 넘어졌다.  얼굴로 넘어졌다.  이마와 인중에 자국이 남았고, 입술에선 피가 베여나왔다.  혹시라도 이가 다치지 않았을까 걱정을 했는데, 과자도 저녁도 평상시와 같이 먹는걸로 봐서 다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좀 더 봐야한다.  너무 후회가 됐다.  싫다고 해도 끝까지 밸트를 채웠어야 했는데.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 만난 친구는 "괜찮다 괜찮다" 위로를 해줬는데, 누리는 쥬스마시며 휴대전화의 동영상 만화를 보며 신이 났고, 나는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집으로 오기 위해 일어서며, 누리가 이제 유모차에 타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는 "네가 괜찮으면 누리도 괜찮고, 네가 괜찮지 않으면 누리는 괜찮지 않을꺼야"라고 말해줬는데, 우리가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누리가 혼자 유모차에 척 올라탔다.  정말 그런가보다.  내가 좀 더 느슨해져야겠다.  그래야 누리도 괜찮아지겠다.  나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