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Cooing's

[+799days] 따라쟁이 누리

토닥s 2014. 11. 27. 07:47

수요일 오전은 이웃의 딸을 2~3시간 봐주기로 한 날인데, 어제 오전 일찍이 연락해서 오늘은 내가 몸이 안좋와서 못봐줄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집은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남편 마저도 집에서 일하는 자영업자라 어려움 없이 오늘 오전 돌봄을 해결할 수 있었을테다.  몸이 피곤하기는 해도, 누리도 또래와 놀기를 좋아하고 그 집 아이도 우리집 오는 걸 좋아해서 못봐줄 정도는 아니었는데 좀 고민이 생겼고 거기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 시간벌기를 한 것이다.


지난 주에 그런 일이 있었다.  아이를 맡기면서 아이 간식으로 건포도와 프렛젤 미니 과자 pretzel를 주고 갔다.  이웃이 돌아가자 아이는 자리에 앉아 프렛젤을 먹기 시작했다.  누리도 당연히 과자를 달라고.  누리의 경우 프렛젤은 자기 과자가 아니니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누리가 평소에 먹는 미니 크래커 한 두개를 주었는데, 이웃의 아이는 쉼없이 먹었다.  저러단 점심 못먹겠다 싶어 말렸다.  8개쯤 먹고 2개쯤이 남았다.  건포도도 먹는다는 걸 숨겼다.  그때부터 마음이 상했나보다.

조금 놀다 이웃의 아이가 TV를 가리켰다.  켜달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내가 안된다고 했다.  누리도 평소에 TV는 많이 보지만, 그건 각자 집에서 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 같이 있는 시간은 둘이서 할 수 있는 걸 하기 바랬다.  또 마음이 상했나.

다시 조금 놀다 하나 뿐인 장난감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끈으로 끄는 목각 공룡이었는데, 하나뿐인이니 요기서 저기까진 누리가 끌고, 다시 저기서 요기까진 이웃의 아이가 끌게 했다.  그런데 누리에게 넘겨받고도 자기는 넘겨주지 않으려해서 다시 같이 놀라고, 누리에게 넘겨주라고 설명했더니 공룡을 휙 던지더니 거실의 구석에 가서 엎드려 꼼짝을 안하는 것이다.  마음이 상하고, 화가 났다는 의미겠지. 

바로 가서 달래보아도 꼼짝을 않는다.  누리가 가서 흔들고, 장난감을 줘도 꼼짝을 않고.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내가 감정겨루기에서 진 꼴이지만 남의 집 아이니 내 고집대로 다룰 수가 없었다.  그런데 10분이 흐르고 15분이 흘러도 꼼짝을 않아서, 너무 걱정한 나머지, 프렛젤을 줄까 했더니 말없이 머리만 끄덕.  물론 여전히 엎드린채로.  어쩔 수 없이 남아 있는 프렛젤과 부스러기까지 다 주었다.  엎드린채로 다 먹고서도 일어나지 않는 아이.  어쩔 수 없이 힘으로 일으켜세웠다.  버티더니 울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더 당황했고.  마침 이웃이 아이를 데리러 올 시간이 다되서 더 당황했던 것도 같다, 그런데 그날 이웃은 40분 정도 늦게 아이를 데리려 왔다.

어쨌든 힘으로 일으켜 세운 뒤 한참 울다 다시 놀기는 했지만 보이지 않는 식은땀을 엄청 흘렸다.  아이의 아빠가 데리러 왔을 땐 또 안간다고 버텨서 어쩔 수 없이 힘으로 번쩍 들어 아빠에게 넘겼고 울면서 갔다.  아이가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동안 있었던 일 - 엎드린채로 꼼짝을 않았던 - 을 이야기했더니 "그 애가 그렇다"면서.  내가 결국 힘으로 일으켜 세운 것에 대해서 걱정하며 이야기했더니, 집에선 그냥 두면 한 시간도 그러고, 엎드린채로 있는다며 잘했단다.  '한 시간? 겨우 두 돌 된 애가?'하면서 속으로 깜짝 놀랐다.


누리가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사실에 고마워하며 두 사람을 보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뒤에 시작되었다.


누리가 아무리 쉬운 애고(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나도 '안되는 것' 빼곤 다 들어주는 편이지만 저도 마음에 안들 때가 있다.  그땐 울고 말았는데, 그 날 오전 이후 이웃의 아이가 엎드렸던 자리로 가서 머리를 파묻는 것이었다.  그 행동을 처음 보고 깜짝 놀랐다.  물론 누리는 내가 다가가서 '간질간질'하면 웃으면서 다시 돌아서긴 했지만.  제 마음이 안드는 것이 생길 때마다 그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지비는 그냥 누리가 그런 행동을 보일 나이여서 그런 것일 뿐, 그 아이에게 영향 받은 것은 아닐꺼라며 크게 신경쓰지는 말라고 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 그 행동을 보아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만감이 교차한다.

지비의 말도 일부분은 맞지만, 그 아이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도 사실 아닌가.  누리는 요즘 언어는 물론이고 많은 것을 따라한다.  심지어 우리가 먹는 음식들도, 이전엔 안먹는 것들이었는데 우리가 먹는다는 이유만으로 따라서 먹어보려 하니까.

'어쩌지? 어쩔까?' 고민이 되기 시작했고, 그 고민이 마무리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이웃의 아이를 돌봐주기로 했던 수요일이 돌아온 것이다.  오늘은 그냥 넘겼지만, 다음 수요일이 되기 전엔 내가 마음을 정해야 할 것 같다.  어쩔까?


+




우리집엔 거울이 없다.  욕실에 있지만 누리에겐 터무니 없이 높다.  우연히 전자렌지에 비친 자신을 보고 그 앞에서 한참 시간을 보낸 누리.  그래서 거울을 살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리가 그 앞에서 노는 동안 나도 쉴 수 있지 않을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