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4년

[life] 고향의 맛

토닥s 2014. 11. 4. 06:38

지난 금요일 누리와 외출 했다 녹초가 되었다.  저녁 해먹을 기운이 없어 누리만 겨우 있던 밥과 국으로 먹이고 재우고 난 다음, 누리도 피곤했다, 우리는 사리곰탕면 컵라면과 냉동만두로 저녁을 먹었다.


토요일 저녁엔 지난 9월에 손님용으로 사두었던 전주 검은콩 막걸리를 땄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길래.  온다던 손님이 안와서 오랫동안 냉장고에 모셔두었던 막걸리.  떡 본김에 제사 지낸다며 파전과 김치전도 구워 저녁을 먹었다.


일요일엔 계획에 없이 아예 한국 식당에 가게 되었다, 일본인 친구와.  한국 마트에 들렀다가 구입한 닭 근위 볶음(네, 맞아요.  닭X집 볶음)과 한국 커피믹스를 샀다.



닭 근위 볶음을 먹게 된 경위


어느 날 폴란드 식품점에 갔는데, 안에 정육점도 함께 있는, 내 눈엔 닭 근위로 보이는 고기가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부위를 한국 사람들만 먹는 줄 알았다.  아니면 발 달린 건 다 먹는 중국 사람이나.  집에 와서 지비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은 같이 가서 "이거!"해서 가르쳤더니 '닭 위장 Chicken stomach'라고.  사실 이게 위장 stomach는 아니잖아.  하긴 큰 아버지도, 작은 아버지도, 이모부도, 고모부도 다 아저씨 uncle로 통하는 사람들에게 더 자세한 걸 묻는 건 무리지.

하여간 폴란드 사람들도 닭 근위를 먹는단다.  크림소스, 토마토소스 마음대로.

그 일이 있고서 내 머리에 들어있지 않던 '닭 근위'라는 음식이 들어앉아서 떠나지를 않았다.  한국 마트에 가서 보니 그곳에서도 팔고 있었는데, 파는 양이 500g인가 1kg인가 그래서 엄두가 안났다.  한국서도 먹어본 경험이 한 손에 꼽힐 이 음식이 갑자기 머릿속에 맴맴.  한국가서 먹어야지..했는데 한국가서는 언제나 그렇듯 백지 상태가 된다.  그리고 돌아와서 후회한다.

그런데 어제는 내가 장을 보는 건 아니라서, 일본 친구를 위해 한국 마트에 간 것이라서 '열린 마음'으로 어슬렁 거렸는데 이 포장된 닭 근위 볶음이 딱 눈에 들어왔다.  '이거다!'하고 데려왔다.

감격한 마음으로 일요일 저녁에 밥과 함께 먹으려고 담았다.  그런데 맛이.. 내가 그리워한 맛은 아니었다.  아니면 정말 먹어본 경험이 얼마되지 않아 그 기억이 굴절되었던지.  맛도 맛이지만 이건 뭐 껌..  그리고 우리에겐 너무너무 매웠다.  하나 집어 먹고 '호호'.

그래서 큰 맘 먹고 담에 생 닭 근위를 사서 폴란드 식품점에 파는 크림소스로 요리를 해볼 계획을 세웠다.  계획인 언제 현실이 될지는 모르지만.  개봉 박두!



 

한국 커피믹스를 먹게 된 경위


지비의 머릿속엔 한국에서 먹어본 커피믹스에 관한 기억이 남아 있었다.  회사에서 타 먹는 인스턴트가 지겨웠다가 그 한국에서 먹어본 커피믹스가 떠올랐나보다.  그래서 한국 마트에 갔을 때 찾아봤는데 세일인 상품이 있어서 사왔다.

나는 한국서도 잘 먹지 않는 커피믹스였는데, 가끔 배가 고플 때나 에너지가 필요할 때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는 마음으로 한 잔씩 먹기는 했지만, 최근 한국가서 이 '커피믹스'에 관한 생각을 한 토막 가지게 됐다.

친구집, 후배집에 갔는데 커피를 준다기에 거절않고 '오케이'했는데, 다들 일어서며 하는 말이 "커피믹스 괜찮지?"였다.  우리 부모님은 집에서 인스턴트 커피를 드시지만 직접 타드신다.  커피믹스가 비싸다고.  하여간 내게도 사무실에서나 먹는 커피가 커피믹스였는데, 이젠 집집마다 침투(?)된 사실이 놀라웠다.   자세히 가격을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일반 인스턴트 커피나 심지어 원두 커피보다도 비싸지 않을까 싶은데.

하여간 오늘 지비가 회사에 가져간다고 박스를 뜯어서 나도 오후에 한 잔 마셔봤다.  첫 맛은 '음.. 고향의 맛이로군'이었는데, 마시면 마실 수록 상큼 쌉싸름한 (원두)커피가 그리워졌다.  이 커피믹스 다 마시고 나서 커피 한 잔 더 먹을까 말까 정말 고민 많이 했다.


요즘 들어 부쩍 한국 마트도 자주가고, 그래서 한국 음식도 많이 사다 먹는다.  파스타 같은 음식으론 풀리지 않는 뭔가가 있다.  별로 입맛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먹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입맛이 없어도 힘이 드니 꾸역꾸역 먹는다.  이러다 살 찌겠지.  그만 자중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