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Cooing's

[+764days] 영어실력

토닥s 2014. 10. 23. 05:40

만나는 사람마다 누리에게 어떤 언어를 쓰는지 묻는다.  나는 한국어로 이야기하고, 지비는 폴란드어를 하려고 노력하고(?), 누리는 영어를 말한다.  '말한다'니 정말 말하는 것 같지만, 그런 건 아니고 단어를 외치는 수준.  그 단어마저도 선명한 발음은 아닌.


Dirty(더러운)와 Tissue(휴지)


누리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이다.  8월 말 바젤에서 만난 S선배는 그런 누리를 보고, 아이가 이 말을 많이 쓴다는 것은 많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그 말을 들을 땐 '내가?'했는데 곰곰히 돌아보니 많이 쓴 것 같다.

하지만 누리의 때가 한 참 뭐 닦고 흉내 내기 좋아하는 때라 꼭 내가 많이 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다고 변명.  설거지 하는 모습을 열심히 본 누리는 목욕할 때 목욕 스폰지로 목욕통에 장난감 삼아 넣어놓은 플라스틱 컵 등을 열심히 닦는 척 한다.  그리고 뭔가를 흘리면 휴지를 달라고 열심히 외친다.  가끔은 일부러 흘리는 것도 같다, 휴지를 받기 위해서.


Wait(기다려/잠시만), Wet(물에 젖은), Wind(바람)


그 다음으로 많이 하는 말은 Wait이다.  길을 건널 땐 늘 wait이라고 외치고 길을 건넌다.  차가 시야에 들어오면 아무리 먼거리라도 건너지 않는다.  그리고 차도로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뛰어서 건넌다.  나는 이 모습을 보고 '생존본능인가'했다.  누리의 이런 모습을 본 해롤드는 좋은 거라고 했지만, 횡단보도 같은데선 차들이 기다려도 차들이 자기 눈 앞에 있기 때문에 건너지 않으려는 통에 늘 애를 안고 건너야 한다.


물을 흘리고서도 Dirty라고 외쳐서, 몇 번이나 "그건 wet이야"라고 이야기해줬더니 wait이라고 외치는 누리.

아메리카 대륙 발 허리케인의 여파로 바람이 불던 월요일.  창 밖으로 보고 wait이라고 외치는 누리.  어디서 wind라고 듣긴 했는데 같은 w라 헛갈리는 모양이다.


Higher Higher! (높이 높이)


아이들이 그네에 앉아 "더 높이 높이"를 외칠 때 higher higher라고 한다.  나는 이 말을 아이들로부터 처음 들었을 때, 깜짝 놀랬다.  '애들이 비교급을 쓰다니'하면서.  그런데 여기 애들에겐 그게 문법이 아니라 그냥 higher higher일뿐이다.  그런데 오늘, 놀이터 그네에 앉은 누리가 higher higher라고 말했다.

그 동안 아이들에게서 들은 말이 이제 누리 입으로 나온 것인가 하면서 정말 놀랐다.  그런데 한 두 시간 뒤에 누리가 그 말을 들은 곳이 TV임을 알게 됐다.  누리가 아침에 보는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오늘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는 장면이 나왔다.  그 주인공이 higher higher를 외쳤다.  나는 그 사실을 몰랐는데, 아침에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4시간 뒤쯤 그러니까 점심 시간에 다시 보여주는데 그때 보고 나는 알게 됐다.  오묘하게 아침 방송은 내가 아침 먹은 걸 설거지 하는 시간이고, 점심 재방송은 점심 먹을 걸 설거지 하는 시간이다.  누리는 그 시간에 소파에 앉아 TV를 보며 혼자 자율학습과 반복학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리가 언어를 늘려가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놀랍기는 한데, 걱정도 된다.  내가 한국어를 아무리 해도 누리의 입밖으로는 나오지 않는다.  '까까(과자)', '우-(우유)' 같은 건 말하지만 현재 습득하고 있는 대부분의 말은 영어다.  그래도 한국어를 알아듣는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놀이터에서 장난감 유모차를 타고 집에 가겠다는 누리 (201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