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4년

[life] 소소한 커피

토닥s 2014. 10. 1. 06:06

커피변천


영국에 오기 전엔 아메리카노만 마셨다.  배부를 땐 에스프레소 마키아또.  집에서는 드립커피를 즐겨 마셨지만.  영국에 와서는 카페라떼를 주로 마셨다.  배가 고플 때가 많았고, 영국의 아메리카노는 진정으로 진하다.  별다방 제외하고.  다른 곳에서 커피를 마시다 어쩌다 별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면 '이게 물인가' 싶다.  작은 라떼들에도 에스프레소 투샷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서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꼭 원샷으로 해달라고 말한다.  그래도 가격은 같다.


누리가 생기고 다이어트에 대한 필요가 두각되면서 아메리카노로 돌아왔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도 쓰다면서, 써도 마시자면서.


그런데 누리가 자라면서 까페에 품위있게(?) 앉아있을 형편이 못되니 양이 많고 뜨거워 원샷이 어려운 아메리카노가 부담스러워졌다.  그래서 지비 없이 외출할 때면 에스프레소 마키아또를 마신다.  커피는 필요하지만 '후딱' 마셔야 하니까.  아무래도 에스프레소는 부담이 된다.  그리고 지비와 함께 외출할 때면 카푸치노 정도.  여전히 아메리카노나 라떼에 비하면 짧은 시간에 마실 수 있다.  또 그리고 누리의 컨디션이 좋으면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날도 있다.


나도 커피를 내 취향 따라 마시고 싶다, 내 형편에 맞춰 마시는 게 아니라.



커피온도


여름에도 시원한 에어컨 아래 앉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사람인데, 영국 날씨는 에어컨 없어도 사계절 아메리카노가 어울린다.  이런 걸 좋다고 해야하나 어째야 하나.


작년에 후배 K가 커피를 앞에 놓고도 누리 뒤치닥거리 하느라 제때 마시지 못한 나를 보고 "식은 커피 좋아해요?"라고 물었다.  일전에 후배 K가 또 다른 후배 H를 만났는데, 역시 아이 뒤치닥거리 하느라 제때 마시지 못하고 식은 커피를 마신 모양이다.  그러면서 후배 H가 한 말이 "어차피 뜨거운 커피 좋아하지 않아서 상관 없다"고.

그럴 수도 있지 - 식은 커피 좋아할 수도.  아니면 H가 그 상황이 덜 무안하라고 한 말일 수도.


그런데 K야, 커피는 뜨거울 때 마셔야 맛있는 것 같아.  적어도 나는.


사실 이 이야기 참 슬픈 이야기다.  아이와 씨름하면서 힘든 건 사소한 일상이 유지되지 못할 때이다.  식어버린 커피나 식어버린 밥 같은.  그런데 이런 어려움은 어떤 육아책에서도 말해주지 않는다.



셀프라떼


예전부터 이런 기계가 있다는 건 알았다.  우유 커품을 만들어주는.  내가 알았던 건 보덤의 제품이었는데 가격이 (제품의 크기에 비해서) 만만찮고 성능을 알 수 없어 관심 수준에서 그쳤다.  그런데 IKEA에 들렀던 8월에 어느날, 필요한 물건을 손에 넣고 계산대를 향해 열심히 걸어가는데 그냥 눈에 딱 들어왔다.  가격도 £1라 고민없이 집어왔다.


그날로 잘 쓰지 않던 모카포트 동원하고, 프렌치 프레스 동원해서 라떼를 만들어봤다.  그 결과 그냥 진한 드립커피로 만들어 먹는게 편하다고 결론지었다.  그럭저럭 먹을만하고, 확실한 건 별다방 라떼 보다는 낫다.





결과물은 라떼보다는 카푸치노가 더 가까운 것도 같다.  우유커품이 그렇게 촘촘하지는 않은 관계로.  모양은 탓하기 없기!



그냥 오늘 오후 커피를 마시다 든 생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