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Cooing's

[+737days] 식생활의 작은 변화들

토닥s 2014. 9. 26. 06:43

누리는 많이 나아졌다.  가끔 기침을 콜록콜록 하기는 하지만 아픈 것 같지는 않다.  오랜 감기 뒤에 감기는 나아도 기침은 한 동안 남는 - 그런 상태인 것 같다.


아이들은 아프고 나면 한 뼘씩 자라 있다는 위로의 말들을 많이 들었지만, 사실 그게 큰 위로가 되지는 못했다.  그렇게 피부로 와닿지도 않았다.  매일매일 보니까, 사실 24시간 붙어 있지, 자라는 게 잘 보이지 않는다.  또, 아프면 홀쭉해진다더니 누리는 여전히 통통하다, 얼굴은.  엄마 닮아 큰 얼굴/머리 어디 가겠나.


누리가 아파서 음식을 먹지 않는 며칠 동안, 혹은 보통때보다 훨씬 적게 먹었던 며칠 동안 그런 생각을 했다.  '이왕 안먹는 거 이참에 누리의 식생활을 바꿔보자'는.  누리의 식생활에 문제가 있었다.


한국의 이유식과 이곳의 식생활을 오락가락하다보니 밥, 파스타/면만 주로 먹었다.  한국에선 반찬이 밥과 함께 균형잡힌 식사를 하도록 해주는데, 우리도 반찬없이 먹다보니 누리마저도 반찬없이 밥만 먹었다.  우리야 삶은 채소들을 고기나 생선과 함께 먹지만 누리는 채소도, 고기도, 생선도 안먹으니 문제였다.  밥만 먹기 심심하니 꼬마김밥을 자주 싸주었는데, 누리는 밥 따로 김 따로 먹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이곳 음식이라 할 수 있는 파스타를 먹게 되면 누리는 채소는 먹지 않고 파스타와 소스만 먹었다.  간식으로 오이나 당근을 먹을 때도 있지만 정말 손톱만큼 먹고 만다.  우리가 먹는 삶은 채소 - 브로콜리, 줄콩, 아스파라거스, 베이비콘 등을 주면 먹어보지도 않고 선명하게 "노NO"한다.

그러다보니 조급한 마음에 미역, 두부, 애호박, 시금치, 달걀, 파 등을 넣은 국을 끓여 주었는데, 누리는 아직 국을 따로 먹을 수준은 못되서 ( 손으로 집어 먹다 버릇하니 숟가락질이 서툴다 ) 떠먹여주게 되고, 자주 그 국에 밥을 말아주게 되었다.


골고루 먹지 않는 것과 손으로 집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면 떠먹여주게 되는 게 내가 생각하는 문제였다.  


조금 더 나아가서 집 밥에만 익숙하니 밖에 나가면 먹을 수 있는 게 없다.  그래서 늘 달걀 토스트, 우동, 꼬마 김밥 같은 걸 싸다녔는데 애를 데리고 나가는 일만해도 챙길 게 많은데, 음식까지 챙기다보면 집을 나서는 순간 벌써 내가 지친다.





바나나 혼자 먹기 (2014/09)


그래서 한식을 좀 멀리하고, 구체적으로 국, 여기 음식을 '골고루', '스스로' 먹을 수 있게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누리가 아프고 난 뒤 누리용 음식을 따로하지 않는다.  사실 2~3일마다 끓이던 국도 누리가 먹기 위해서였지 우린 잘 먹지 않았던 음식이다.  대신 우리가 누리가 먹을 수 음식에 좀 더 가까이 가기로 했다.

여전히 채소, 생선, 고기는 먹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음식을 족족 주어본 결과 그 양이 아주 작긴 하지만, 햄과 오이를 먹게 됐다.  그리고 국 없이 밥을 먹는다.  예전엔 피자빵/테두리 1인치 정도를 간식 삼아 먹었지만, 오늘은 그걸 점심으로 먹었다.  작은 피자지만, 피자 절반의 테두리를 모두 먹었다.  누리는 토핑이 올려진 부분은 먹지 않는다.





피자 테두리 먹기 (2014/09)


늘 떠먹여주거나 잘라서 접시에 담아주었던 바나나도 어제는 통째로 줬다.  그런데 넙죽 받아 먹는다.  누리가 못먹을꺼라 떠먹여주거나 잘라서 주었던 건 결국 우리의 기우였다.

바나나를 처음으로 혼자 쥐고 먹는 누리를 보면서 그런 생각도 들었다.  고기를 안먹고, 채소를 안먹어 애를 태우지만, 어느 날엔가 때가되면 그냥 먹을지도 모른다는.  모든 음식에, 아이에게 그냥 그런 때가 있는 거라는 생각.  물론 그 때가 오기까지 끊임없이 채소먹이기, 고기먹이기, 생선먹이기를 시도해야겠지만.  그러다보면 작은 변화들이 쌓여 우리와 함께 먹을 수 있는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