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4년

[book]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토닥s 2014. 9. 3. 06:01


와타나베 이타루(2014).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정문주 옮김. 더숲.


스위스로 여행 온 선배 부부에게 부탁해 받은 책이다.  기대했던 것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쉽게 읽었다(재미 없는 책은 읽는 게 고역이다). 


프리터로 살던 글쓴이가 아버지의 헝가리행 안식년에 동행한 후 농업 관련 대학으로 진학, 유기농 관련 업체에서 일하다 시골로 내려가 천연효모와 자연재배 재료로 빵을 구우며 사는 이야기다.  한 줄로 줄여보면.


그런데 이 한 줄을 풀어보면 그 안에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있다.  프리터로 소모적으로 살아야 하는 젊은이의 인생이 그러하고, 부패한 유기농 관련 업체 현실이며, 우리 먹거리에 스며들어 있는(혹은 장악하고 있는) 이윤추구의 시스템이 그러하다.


유행했던 책이니까 좋은 리뷰는 많을 것 같고, 이 책을 읽으면서 꼭 나누었으면 하는 글을 옮겨본다.

시골에 들어와 산 지 5년이 넘었다.  '마을 조성'이라거나 '지역 활성화' 같은 명분을 내건 사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도 부패하는 경제와 정반대의 일들이 일어나는 현실을 여러 차례 지켜보았다.  지역의 바깥에서 보조금을 끌어와 도시에서 유명인을 불러 불꽃놀이 같은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고, 재료를 조달해 지역 특산품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지역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지갑을 불리는 사람은 이벤트를 벌인 도시 사람들이고, 판촉과 마케팅에 능한 도시의 자본이다.  사용된 보조금도 도시에서 온 사람들 손으로 흘러들어간다.  결국 바깥에서 비료를 퍼와서 속성 재배해 지역을 억지로 키우려 해본들 지역이 잘 살 수는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비료를 투입하면 할수록 지역은 말라갈 뿐이다.(p.178)


일을 하면서 이 '기금'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냥 두면 '눈 먼 돈'이 된다는 우리식의 변명이 있긴 했지만, 그런 변명 때문에 한국의 제3섹터도 기금에 길들여진 약체가 되어버렸다.  물론 글쓴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양식에 기대어 대안적인 행동들을 이끌어내는 곳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곳일수록 그 사례 자체가 공유되지 못하는 것 같다.  온전히 자기에게 기대야 하기 때문에 그럴 여력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제안서로 시작해 보고서로 끝난다'는 표현 - 나는 이 표현을 듣고 웃고 말았지만 - 이 그저 딱인 현재의 모습에서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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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가 유기재배한 재료로 빵(주종)을 만들다 번번히 실패를 한다.  이웃의 권유로 자연재배 된 재료로 빵(주종) 만들기에 성공한다.  이 대목에서 '자연재배'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  농약 가득 농산물을 소비하던 우리로써는 대안이 유기재배가 아닌가 싶었는데 그 위에 또 다른 질문이 던져졌다.  자연재배라..

예전에 장 지글러의 책을 읽으면서도 든 생각이지만 농업 문제는 어렵다.  몰라서 어렵기도 하겠지만 어느 한 쪽도 부당하지 않을 균형을 찾기가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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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지브리의 만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떠오른다.  글쓴이가 다투는 것이 균, 효모라서 그런게 아니라 부패와 순환구조라는 점에서 많이 겹쳐진다.  실제로 글쓴이도 이 만화를 언급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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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이후 한국 사람들이 메뚜기 떼처렴 가쓰야마를 휩쓸고 갈까 걱정이다.  

(사실 나도 가보고 싶기는 하다, 빵이 내가 좋아할 빵은 아니지만)



(밀린 7월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