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Cooing's

[+632days] 소싯적 이야기

토닥s 2014. 6. 13. 05:46

누리를 키우면서 지비와 나는 각자 어렸을 때 이야기를 가끔한다.  잠들기 전 한참을 뒹굴며 편안한 자세를 잡기 위해 뒤척거리는 누리를 보면서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꼭 깔아놓은 이불 위에서 뒹구는 누리를 보면서도 그런 이야기를 한다.  "나도 그랬다"며, 그 기분을 "이해한다"며.


어느 날은 지비가 누리에게 바나나를 주려다 말고 이야기를 꺼냈다.  누리는 이유식을 시작하면서부터 매일 바나나를 간식으로 먹는다.  유기농까지는 아니여도 늘 공정무역 상품으로.  "세상 참.."하면서 시작한 이야기는 지비는 열 살이 넘어서 바나나를 처음 먹어봤다고 한다.  참고로 지비의 나라 폴란드는 열 살이 다 될때까지 공산권 국가.  어느 날 아버지가 바나나를 사와서 먹으라고 주었는데 지비 표현 그대로 "embarrassed" 당황했다고 한다.  어떻게 먹어야 할지를 몰라서.  껍질 채로 깨물었는데 먹지 못할만큼 떫어서 바나나를 버렸다고 한다.  그걸 보고 아버지가 까주었는데, 그땐 "upset" 화가났다고 한다.  아마 부끄러움에 더 가까웠을 느낌.


나는 바나나에 관한한은 그 정도는 아니다.  한국의 경우 제주도 같은데서 바나나가 나기도 했고, 그래서 아주 귀한 음식으로 제삿상이나 차례상에 올라온 걸 일 년에 한 두번 먹어볼 기회는 있었으니까.


나에게 당황과 부끄러움의 음식은 치즈다.  어릴 때 서울에 있는 고모집에 장기간 머물렀다.  집엔 딱히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유치원을 6살부터 2년 동안 다녔는데, 그도 아닌 걸 보면 6살도 안됐을 때 일인듯.  그 고모집엔 80년대 초반 당시론 구경하기 힘든 물건들이 많았다.  레고도 있었던 것 같고, 바비인형 주방세트 그런 것도 있었던 것 같다.  하여간 어느 날 맛있은 음식이라며 벽장 속에서 꺼내준 음식, 사촌언니 오빠들에겐 곶감 같은 존재였을래나, 바로 슬라이스 치즈였다.  얇은 클링 필름으로 낱개 포장되어 있는 지금으로서는 저렴한 가공치즈.  보는 앞에선 꾸역꾸역 먹었는데, 그 맛이 참지 못할 맛이라 밖에 나가서 토하고 말았다.


이 이야기를 지비에게, 여기 사람들에게 해주었더니 당췌 이해를 못한다.  이 곳 사람들은 날 때부터 치즈가 있었으니까.  그들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가 날 때부터.

누리는 요즘 치즈를 먹기 시작했는데, 너무 좋아한다.  처음 먹는 순간부터 좋아했다.  짭짤한 맛이라 그런가?


지비와 나는 누리 키우면서 싸우기도 많이 하지만, 이런 소싯적 이야기하면서 조금씩 알아간다.  정말 우리는 다른 곳에서 왔으니까.  그런데 어떨 땐 지비가 나보다 더 옛날에서 온 사람 같다.





Cardiff, UK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