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Cooing's

[+595days] 말 못하는 수다쟁이

토닥s 2014. 5. 6. 22:57

누리가 돌이 넘어가면서 많이들 물어온다, 누리가 얼마나 말을 하는지.  그건 한국의 가족, 친구들은 물론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도 그렇다.  결론적으로 누리는 아직 엄마, 아빠도 못한다.  그게 영어로 mom, dad가 되었든, 폴란드어로 mama, tata가 되었든.


한국에선 돌 전후로 선명하게 엄마, 아빠는 아니라도 마마, 맘마 정도는 하고 누리처럼 20개월이 다가오면 문장은 몰라도 단어는 꽤 아는 모양이다.  얼마 전에 20개월 아기들은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놀까 궁금해서 검색해보다, (한글)단어장을 가지고 놀면서 단어를 가르친다는 엄마의 블로그를 보고 (심하게) 기겁했다.


솔직하게 걱정이 좀 되기 시작했다.  물론 누리는 영국에 살면서 나와는 한국어, 아빠와는 폴란드어로 말하기 때문에 이런 아이들이 보통 한 개의 언어만 습득하고 그런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보다 언어가 늦게 오는 건 많이 들어서 알고 있었다. 

몸무게 체크를 위해 갔던 아동센터의 조산사도 그렇게 이야기했다.  다만 한국에서 옹알이라고 하는 bubling을 하는지 물어왔는데, 그런 면에서 누리는 무척 시끄러운 아이라니 그럼 괜찮단다.  아이들 중에서는 이런 옹알이도 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고, 그런 경우에는 언어를 점검하는 클리닉으로 연결한다고.

지비와 나는 누리는 자신의 언어를 이미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우리와 달라 단지 소통이 안될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정말 누리는 수다쟁이이기 때문에, 다만 우리들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을뿐이라고.



지비와 내가 영어를 사용하면 누리의 말이 더 빨리 늘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에선 어릴 때부터 아이를 영어환경에 넣기 위해 돈을 들이지만, 지비와 나를 포함한 이곳에 사는 외국인 부모들은 어떻게 부모의 모국어를 아이에게 줄 수 있을까 많이 고민한다.

아동센터에서 나눠주는 리플렛을 보아도 그런 경우 부모가 가장 유창한 언어를 사용하는게 좋다고 한다.  영어는 미디어, 놀이집단, 그리고 학교를 통해 '당연히' 배우기 때문이다.  

런던이라는 도시는 그 어느 도시보다 여러 나라 언어가 존재하고, 쓰여지는 곳이다.  비록 영국사람들의 외국어 능력은 유럽에서 꼴찌라고 하지만, 어딜가나 영어가 통하니 외국어를 공부할 필요가 없다.  런던에서는 외국인 부모에서 자라난 사람들, 외국인들이 워낙 많아 2개국어쯤은 '능력' 축에 끼지도 못하는 것 같다.


우리는 그런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 한국과 폴란드의 가족들과 소통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램 정도를 가지고 있다.  우리 주변의 많은 멀티링구얼들이 말하길, 언어는 하나에서 두 개로 늘려가는 것이 어렵지, 두 개가 되면 세 개, 네 개는 어렵지 않다면서.  다만 어릴 때부터 다국어 환경에 노출되는 건 중요하다고 한다.


비록 누리가 아직 말을 못하긴 하나 말을 조금씩 알아듣는 것 같다.  최소한 맥락을 이해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한국어든, 영어든, 폴란드어든 "손 씻으러 가자"하면 손을 비비면서 따라나선다.  목욕 역시 손으로 가슴팍을 문지르며 따라나선다.  자기가 좋아하는 바나나 먹자하면 웃으며 바나나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우유 먹자하면 역시 비명을 지르며 냉장고가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개를 보면 머리까지 끄덕이며 '하우하우'하고(이건 폴란드어인가), 고양이를 보면 '미우미우'하고(이건 영어인가), 오리 백조 및 각종 조류를 보면 구분없이 '꿕꿕(이건 3개국어 공통)' 한다.  그리고 헤어질 땐 손을 흔들며 "바이" 는 한다.  엄마, 아빠는 못해도.


이곳에 알고 지내는 한국인 엄마가, 그 집 아빠는 호주인, 자기도 별로 안시키지만 날 더러는 너무 안시킨단다.  그 집 아이도 누리랑 2주 차이라 20개월 근처인데, 그 집 엄마는 한국어나 영어를 가르치고 아이가 그 말을 하지 않으면 원하는 걸 주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 까지는 못한다.  언어습득이 주는 자연스러운 스트레스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내가 그 스트레스를 만들고 싶지는 않다.  그런 생각은 지비도 마찬가지다.

또 주변의 엄마들을 보면 그 집 아이들은 또 누리랑 비슷하다.  부모가 둘다 영국인이라도.  마마, 파파 정도나 할까.  아마도 18개월부터 24개월까지가 급속한 언어변화를 맞게 되는 시기라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느낌이란 게 있다.  지금은 누리가 다른 아이들보다 언어가 늦을지 모르지만, 멀티링구얼까지는 몰라도 엄청난 수다쟁이가 될 것 같다.  느낌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