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4년

[keyword] Assembly Point

토닥s 2014. 4. 23. 23:00

며칠 동안 할 말을 잃었습니다.  여객선이 좌초된 뉴스는 봤지만, 이렇게 한 사람의 생존자도 구조하지 못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바다 한 가운데 떨어져 사라진 비행기도 아니고.


최근들어 보지 않던 한국 TV를 일주일 동안 틈틈이 봤습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곤 KBS, MBC, 아리랑TV 정도가 전부지만.  그 뉴스들을 보면서 선장도, 선원도 사람이니까 재난훈련 같은 걸 했어도 실제 상황에선 메뉴얼 대로 몸이 움직여 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이해해보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줄줄이 드러나는 선박의 사용기한 연장, 과적, 구조변경, 재난대응 등등을 보니 어이가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능한 정부보다 무서운 게 우리 안에 스며든 이기심과 그로 인한 부패라는데 생각이 닿았습니다.  이 정부, 이 대통령이 이다지도 무능하고 무책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에는 바쁜 '척'이라도, 슬픈 '척'이라도 해야 '정치'를 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에선 이들이 하는 게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네요.


승객의 안전은 뒤로하고 과적을 눈감아준 선장은 한 오만원쯤 받았을까요?  항구에서 이를 감시하는 직원은 눈감아준 대신 한 오십만원쯤 받았을까요?  무리한 구조변경을 승인하고 안전을 관리감독하지 않은 공무원은 한 오백만원쯤 받았을까요?  운항사는 이렇게 배를 운항하면서 운항때마다 오천만원쯤 남겼을까요?  이런 싸구려 운항사의 지주랍시고 이윤을 독촉하는 인간들은 오억쯤 더 챙겼을까요?  선박의 운항연한을 늘려준 자들과 무리들은 기업으로부터 오십억정도 받았을까요?[각주:1]


오만원에서 몇십억까지 자기 배만 채우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기심이 만들어낸 부패의 고리가 참 무섭습니다.  비단 선박에만 이런 고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수천, 수만개의 고리가 있을꺼라 생각하니 더 무섭습니다.


그래도 외국 사니까 낫지 않냐고요.

그래도 한국 사람이니까 무섭습니다.

대한민국이 저를 우울하게 만듭니다.



Assembly Point


영국 사람들은 Health & Safety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근원은 알 수 없지만, 이 규정은 무척 까다로워서 원활할 일상생활을 방해할 때도 많다.  하지만 이러한 불편함도 사람들은 "health & safety가 그렇지"하면서 (비)웃으면서 지나가는 편이다.  예를 들어 아무리 중요한 일을 하는 건물이라도 화재알람이 울리면 모든 사람은 건물 밖으로 나와야 한다.  이 때 모이는 곳이 건물 밖 assemply point다.  그리고 소방차가 와서 clear 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아마 여왕님도, 다시 건물로 들어갈 수 없다.




어학원에서 영어수업을 들을 때도, 다른 강좌를 들을 때도, 심지어 누리의 수영 세션에서도 첫 시간엔 이 assemply point를 설명해줬다.  무조건 대피다.  그리고 그 포인트에서 인원을 점검하든 뭘하든 한다.  물론 학교같은 경우엔 애들을 줄세워 나가겠지만.

일종의 구청 평생학습센터에서 강좌를 들을 때는 매학기마다 화재 알람이 울리는지 실험을 했다.  화재 알람이 설치 되어 있지만 작동하는지 실험하는 거다.  이땐 강사들이 사전에 당일 그런 실험이 있음을 알려줬고 다시 대응메뉴얼을 상기시켰다.  이곳에서 3개의 강좌를 들었는데 매번 그랬다.


W에서 일할 때도 새직원 트레이닝에 빠지지 않는 것이 화재 대응이다.  'fire'를 (3번인가) 외치고, 매니져에게 보고하고, assembly point로 대피한다.  물론 신고는 매니져가 한다.  물에서 일어난 사고의 대응은 다르겠지만, 이번 세월호 사고에선 학생들은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선내에 대기하라는 지시에 따른 반면, 선원들의 사고 대응 메뉴얼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 놀라울 정도다.



처음엔 사고 대응 메뉴얼을 새로 써야한다고, 모두 재점검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젠 사고 대응에 대한 어떠한 메뉴얼이 나와도 사람들은 따르지 않을꺼다.  나도 그럴 것 같다.  특히, 한국에서는. 


정말 이젠 답이 없구나, 대한민국.

그래도 힘내라, 모두들.





  1. 물고 물리는 부패의 고리를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지 실제 금액이 아닙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