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4년

[etc.] 무서운 진통제 - 오른쪽 갈비뼈 뒷이야기

토닥s 2014. 3. 3. 08:20

궁금해할 사람은 없겠지만, 혹시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봐 오른쪽 갈비뼈 뒷이야기를 올리면 - 목요일, 금요일 도저히 통증이 줄어들지 않아 의사를 찾아가겠다고 마음을 먹고 보건소 격인 GP에 예약전화를 했다.  이 GP가 최근에 완전 예약제로 바뀌었는데 가장 빠른 진료가 화요일 오전 9시.  투덜거리며 참기로 했는데, 금요일 밤 기침 한 번에 도저히 참기 힘든 통증으로 바뀌었다.  한 밤에 응급실 A&E로 가자니 생명을 위협하는 정도는 아니어서 참기로 했다.  일단 날이 밝으면 알아보는 걸로.  그런데 꼼짝을 하기 힘들어 막말로 날밤을 깠다, 조금씩 졸면서.


아침먹고, 누리가 하루 종일 먹을 음식 만들어놓고 NHS 111 으로 전화를 했다.  응급할 땐 999인지만, 나는 아파도 생명의 사선을 넘나느들지는 않으니 111.  토요일이라도 진료를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는데, 전화를 하니 자기들 메뉴얼에 따라 증상을 예/아니오로 질문 30~40개에 답을 해야한다.  잘 이해되지 않은 질문을 다시 물어보면 또박또박 질문을 다시 그대로 읽어주시는 전화 건너편님.  그 셀 수 없는 질문 끝에 자기들이 진료 스케줄을 잡기 위해 다시 전화를 준다는 말만하고 기다리란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냐니 수분에서 몇시간.(이런!)


10분쯤 지났을까?  토요일 진료 가능한 병원 예약을 잡아주겠다고 전화가 왔는데, 다 멀다.  그랬더니 그럼 의사와 직접 전화로 이야기 나눌 수 있게 해주겠다며 또 기다리란다.


한 시간쯤 지나니 의사에게 전화가 왔다.  처음 111보다는 훨씬 내 이야기도 잘 들어준다.  그러면서 결국은 병원에 와서 진료를 받아보는 게 낫단다.  보통 때 같으면 그냥 알았다하고, 화요일에 GP에 가겠다하고 말았을텐데 통증이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라서 두 시간 후로 병원을 예약했다.


버스타고 한 시간, 사실 차로 가면 20분도 안걸릴 거린데, 의사를 만나러 갔다.  나의든 할아버지 의사가 청진기로 여기저기 들어만 보더니 폐에는 이상이 없고 통증은 '흔히' 있는 증상으로 기침 뒤에 근육과 갈비뼈에 멍이 들어 그렇단다.  그러면서 2 종류의 진통제 - 파라세타몰paracetamol과 이브프로펜ibuprofen을 같이 먹으면서 깊은 숨쉬기 운동을 열심히 하란다.  "진통제를 동시에?"하고 몇 번을 물었다.  그거 안먹으면 계속 아플꺼라고 동시에 먹으란다.  의사의 말은 멍이 나을 때까지 숨쉬면서 진통제로 버티라는 것이다.


좀 지나치게 간단한, 통증 땜 밤잠까지 설친 입장에서는, 진료에 갸우뚱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열심히 그 두 가지 진통제에 관해서 검색하면서.  검색 결과 두 가지 동시에 먹는게 너무 무서워서 이브프로펜은 통증 부위에만 진통효과가 있는 젤타입으로 구입해서 집으로 왔다.  파라세타몰은 타이X놀 같이 늘 집에 상비되어 있는 약이라 그냥 왔다.


슈퍼에서도 쉽게 살 수 있는 약들이지만 하루에 4번 이상 먹지 못하도록 하는 각각의 진통제를 같이 먹어도 되는가를 두고 지비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 가지 진통제를 강하게/많이 먹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에 다른 종류의 진통제를 먹으라는게 아닐까 하고 우리끼리 소결론을 냈다.


그 뒤 파라세타몰은 먹지 않으면서 대충 6시간 단위로 이브프로펜을 통증부위에 발랐는데, 통증이 순식간에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어제오전처럼 숨쉴 때마다 아프지는 않다.  움직일 때, 기침이 날 때는 여전히 아프다.  통증의 원인이 멍이라 하였더라도 그 멍이 순식간에 사라지지는 않았을터, 그저 내가 통증을 못느끼는 것일텐데 나는 그 사실이 참 무섭다.


평소에도 어쩌다가 먹는 타이X놀 한 알 먹고나면 '멍-'해진다.  통증을 줄여주는 게 아니라 뇌 기능을 줄여주는 기분이다.  그저 기분인지는 몰라도.  이브프로펜도 그럴 것 같아 통증 부위에 진통효과를 주는 것으로 샀다. 


이런 걸 두고 약이 효과가 좋다고 해야하나, 내 몸이 참 경제적이라고 해야하나.



아침부터 NHS 지원전화인 111에 전화 걸어 한 시간 거리의 대학병원에서 토요일에 진료를 받기까지, 내 맘에 확 드는 건 아니다.  메뉴얼이 있어서 그렇겠지만, 나에게 예/아니오 만 원하던 전화 상담원도 그렇고, 가까운 거리에선 진료를 받을 수 없다는 것도 그렇고. 

하지만 늘 말하듯이 영국의 의료시스템은 한국에 소개된 것처럼 그렇게 쓰레기(?)는 아니다.  경험과 통계가 시스템화 되어 있는 것 같다.  거기엔 늘 게으른 시스템으로 변질되는/비춰지는 위험이 있긴 하지만 확실한 건 과잉진료와 처방남용을 막아준다.  이번을 겪으면서 왜 한국 사람들이 영국의 무상의료 체제를 쓰레기로 묘사하는지는 약간 이해하게 됐다.  영국엔 돈이면 다되지도 않고, 빨리빨리도 없기 때문인데 - 개인적인 입장에선 그게 한국보다 나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