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Cooing's

[+526days] 내가 내가!

토닥s 2014. 2. 26. 23:46

요즘 누리는 '내가 내가' 초기 증상을 보이고 있다.  이를 닦아줄 때 예전처럼 온몸으로 울부짖으며 거부하지는 않지만 칫솔을 빼앗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혼자서 이를 닦으면야 좋지만 입에 넣는 건 0.1초도 안되고 칫솔모를 손으로 만지작만 거리기 때문에 이를 닦고 난 뒤 손에 쥐어준다.   그러면 이렇게 행복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지난해 5월 한국에 다녀오고서 누리는 기기 시작했다.  지비와 나는 한국에 가기 전 이번 한국행 뒤엔 누리가 어떤 변화를 보여줄까 기대했다.  한국에 다녀온 뒤 뒤뚱거리던 아기걸음에서 조금 날렵하게 걷는다는 것 외에 크게 보여준 변화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누리가 뭔가를 직접 집어먹기 시작했다.





누리는 이전에도 빵조각을 주면 손에 쥐고 있기는 했지만, 그걸 먹을 줄 몰랐다.  사과도 마찬가지.  사과의 경우는 입으로 가져는 가도 그냥 씹어 뱉을 뿐이었는데 한국에서 부드럽고 맛있는 사과맛을 본 후 조금씩 빨아먹기도 하고 어쩌다가는 조각이 입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이곳의 다른 집 아이들은( 비교하면 안된다고 하지만서도 ) 파스타나 빵, 케이크를 손으로 집어먹는데 반해 누리는 아직도 떠먹여준다.  물론 그 집 아이들은 비교적 손으로 집기 쉬운 음식을 먹는다면 우린 밥이 대부분인지라 그러기는 어렵다는 걸 알지만서도.  지비도 나도 누리의 더딘 섭식은 우리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다.  음식으로 누리는 물론 테이블과 바닥이 더러워지는 걸 견디지 못했다.  하지만 계속 떠먹여주면 정말 답이 없다는 걸 알기에 누리가 직접 먹을 기회를 만들고 또 가르치기로 했다.  사실 우리가 마음먹기 이전부터 '내가 내가' 증상(?)을 보여서 그냥 순조롭게 그리고 약간은 지저분하게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과일은 집어먹기 쉬운 과일로 바꾸었다.  여전히 바나나를 먹긴 하지만, 우리가 까줘야 하는 오렌지보다는 블루베리나 포도 같은 걸 주로 준다.  밥을 먹일 때도 누리 손에 숟가락 하나를 쥐어준다.  그때 표정 또한 무척 행복해하는 표정인데 자짓하면 밥 그릇을 엎을 수 있기 때문에 밥을 줄 땐 사진을 찍을 여력이 없다.  밥 그릇 하나에 숟가락 두 개를 넣고 하나는 누리가 쥐고 하나는 내가 먹인다.  누리가 쥔 숟가락에 음식을 올리거나 누리 손을 내가 쥐어 입으로 음식을 가져가도록 해보지만 그 양은 터무니 없이 작아서 주로 떠먹인다.  직접 입으로 가져가는 음식의 양이 점점 많아지기를 바랄뿐이다.




포도나 블루베리 같은 과일은 직접 먹어 좋긴한데 먹는데 걸리는 시간이 포도 한 알이 5분에서 길게는 10분까지 걸린다.  그리고 손을 입으로 가져가는 식이 아니라 손은 어깨쯤에 멈춰있고 입이 가까이 가는 식이라 턱받이 바깥쪽에 과즙을 늘 흘린다는 게 문제다.  그래도 그 정도는 참자 참자 참자 한다.


한국에 다녀온 후 누리도 '사람'이 되어가는지 좋은 것도 싫은 것이 예전보다 더 선명해진 것 같다.  자기가 즐겨보는 'show me show me'라는 프로그램을 할때면 그렇게 행복해할 수가 없다.  자칫 너무 가까이가면 내가 TV를 꺼버린다는 걸 알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너무 집중해서인지 그 프로그램을 볼 땐 자리에서 꼼짝을 안한다.  나는 주로 그때 손톱 발톱을 깎는다.





누리의 '내가 내가' 증상이 보다 빨리 발전적으로 거듭나길 바라면서 오늘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