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Cooing's

[+519days] 서서 밥을 먹는 일

토닥s 2014. 2. 20. 00:02

누리의 낮잠시간을 고려해 식재료 배달을 3-4시에 시켰다.  그런데 한 시간 빨리, 막 누리가 잠들었는데 배달하는 이가 전화가 왔다.  지금 근처인데 한 시간 빨리 배달을 해도 되겠냐고.  된다고 해야지, 어째.


밖이라고 거짓말을 해서 덜 미안한 상황을 만들 수도 있지만, 엇비슷한 지역에서 시간 내 몇 개의 배달을 해야하는 노동자에겐 내가 거짓말을 하고 안하고에 따라서 휴식 시간을 좀 더 길게 가질지도 모르고, 퇴근을 좀 더 일찍 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누리를 눕혀놓고 막 점심을 먹으려던 터라 인터폰의 볼륨을 묵음으로 바꾸고 그 앞에 서서 밥을 먹었다.  문을 열어줘야 건물로 들어오니까.  밥을 다 먹어갈 즈음 복도에서 저벅저벅 들들들 무거운 발걸음과 짐바구니 끄는 소리가 들린다.  급하게 먹던 그릇을 내려놓고 문을 열었다.  배달하는 이가 문 옆 초인종을 누르기 전에.  어떻게 건물로 들어오는 이가 있어 건물 밖에서 인터폰으로 부르지 않고 들어올 수 있었나보다.


문을 열며 겨우 타이밍을 맞췄다고 안도했는데 배달하는 이가 미소와 함께 힘차게 외친다.


"굿 애프터눈 마담!"


1초도 허락하지 않고 "(쉿!) 쏘리 베이비"라고 했으나 벌써 늦었다.  누리가 찡찡대며 일어났다.  어찌어찌 다시 재우고, 조심조심 음식들을 냉장고, 냉동고에 밀어넣고 잠시 앉았다.  점심 설거지도 미루고.


내가 지금 남의 휴식 또는 이른 퇴근을 걱정할 때인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누리가 다시 잠들었으므로 잘한 일이라고 남겨두자.  물론 잠을 덜자고 깨서 나를 힘들게 하고, 저 또한 피곤해 오후 시간이 힘들어졌다면 다른 이야기지만.


서서 밥을 먹는 일. 


집에서 혼자 아기를 보는 엄마들이 힘든 건 이런 거다.  그래서 다리가 아프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아주 쉬운 일들, 아주 기본적인 일들, 아주 일상적인 일들이 침해(?) 당했다고 느껴졌을 때.  하지만 그걸 대체해 줄 어떤 도움도 없을 때. 

역시 혼자서 아기를 보는 후배 H가 겨우 점심을 먹겠다고 숟가락을 들었는데, 아기가 울어 다독여주고 다시 밥상으로 돌아오니 밥이 불어 슬펐단다.  물론 밥알이 불어 슬픈건 아니고, 그 상황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수 있어서(대신 남들처럼 소비하고 사는 건 할 수 없다) 집에서 아기와 시간을 보내는 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집에서 아기와 시간을 보낸다고 그 일이 쉽다고 생각하지는 마시길.  가끔은 이해할만한 사람들의 이해부족한 말들이 그 사람과의 거리를 무한대로 만들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