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3년

[etc.] 키즈리턴

토닥s 2013. 11. 21. 00:14
내년이면 지비가 영국에 온지 십년이다.  영국에 오기 전후로 시작했던 브라질 무술 카포에이라.  지난해까지 한 8년 정도 한 취미활동인데, 누리가 태어나면서 그만뒀다.  아래 사진들은 작년 6월에 있었던 바티자도, 일종의 발표회면서 승격식.
누리 때문에 그만둔 것은 아니다.  누리+시간부족이 49%쯤.  51%는 적당한 때에 주어줘야 하는 당근(?)의 맛을 보지못해서라고 할까.
 




















카포에라의 원형쯤 되는 군무 같은데.  이름을 들어도 까먹었다.









정작 지비 때는 잘 찍지도 못했다.  몸이 무거워 작은 카메라를 들고 갔더니 어두운데서 움직임을 찍기가 쉽지 않았다.










지비의 밸트는 오렌지-블루였다.  블루가 되기 직전 단계인데, 완전 블루가 되면 가르칠 수 있다.  물론 그 전에도 서로 도와 가르칠 수는 있지만 공식적인 선생님 단계가 된다는 뜻.
지비가 카포에라를 그만두기 전 2년 동안 같은 단계, 오렌지-블루에 머물러 있었다.  결혼이다, 직장이다 바쁜 이유도 있었지만, 블루로 넘어가기란 그 이전 단계만큼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 승격식을 앞두고, 아니 내가 임신을 한 그 해 1월부터 지금 사력을 다하지 않으면 앞으로 그때처럼 운동하기 쉽지 않을꺼란 결론에 도달한 지비는 최선을 다했다.  일주일에 2~3번씩 수업에 참여하기도 하고, 기타로 주어지는 클럽의 업무도 맡았다.  그런데 그날 승격에 실패한 지비는 무척 서운해 했다.
지비의 선생은 지비와 함께 승격하지 못한 다른 동료와 함께 따로이 불러세워 아직은 조금 부족하니 더 매진하라는 격려를 해주었다.  그랬어도 서운함을 이기지 못해 그날은 승격식만 치르고 자리를 떠났다.  사실 지비의 선생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부분이 그런 것이었던 것 같다.  조직에 대한 헌신?
이후에 따로이 만난 지비의 동료들은 승격식이 너무 정치적으로 진행된다면서, 지비를 위로해줬지만 그래도 서운함이 가시지 않았는지 8월 휴가철을 앞두고 카포에라를 완전히 정리했다.  얼마전까지도 나는 다시 시작할꺼라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완전히 정리한 셈이 되었다.









그날 와준 친구들.
(저 배안에 누리 있어요)


아직도 혼자서는 누리를 감당하지 못해 쩔쩔매면서도 지비에게 늘 카포에라를 다시 하지 않을꺼냐고 물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건 하겠다면 내가 일주일에 하루 이틀쯤은 혼자서 애를 보겠다면서.  보통 카포에라 수업은 수, 목, 금 저녁 그리고 일 오후였다.  무엇보다 한 단계만 더 오르면 '성취'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단계에 오르는데 여기서 멈춰버리는 게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비는 카포에라를 하기엔 자기가 너무 나이가 많다고 했다.  실제로 승격식을 준비하면서 지비는 다른 전문 체육관에서 체조수업(안전한 덤블링 등)을 따로 받았다. 


가끔 지비가 운동을 해야겠다고 이야기 할 때마다 나는 카포에라 이야길 꺼냈고, 지비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날, 바로 지난 주 지비가 아이키도Aikido를 하겠다고 했다.  지비가 카포에라를 하기 전에 3년 정도 했던 일본 무술이다.  합기도는 아이키도의 한국형 정도 되지 않겠나 싶다, 잘은 모르지만.

그래서 지비는 그날로 바로 런던에서 수업을 찾아 선생에게 연락하고, 다음날 수업을 참관했다.  완전 고무된 지비는 폴란드에서 아이키도를 통해 알게 된 친구에게도 연락하고 난리법석.  그래도 아직 누리가 어리니 한 동안은 일주일에 한 번이면 어떻겠냐고 했건만 운동은 일주일에 2~3회는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려 나와 현재 냉전中.  한 술 더 떠 한 달에 한 번 있는 마스터 워크숍, 기차타고 한 2시간 가야하는 도시에서 열리는,에 가겠단다.  



'잘 꽂히는' 지비의 성격을 알기에 내가 조심을 했어야 하건만.( - -);;


그래서 평일에도 이틀 저녁을 혼자서 누리를 감당해야 한다.  그러면서 나더러 주말에 외출하고 싶으면 자기가 누리 다 볼테니 나가라고 한다.  겨울이라 해가 일찍 져서 갈데도 없구만.  그래도 나가라고 하니 혼자서 갈만한 곳을 찾아봐야겠다.  안되면 동네 커피숍에 나가 앉아 책이라도 봐야겠다.  골방에서 책을 보거나, 컴퓨터를 쓰려고 해도 누리가 지비에게서 도망쳐 자꾸만 찾아온다.  집을 나가야겠다.


+


지비는 아이키도가 자신에게 세상을 열어준 운동이라고 사실 그 전부터도 늘 이야기했었다.  가난한 폴란드에 살면서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간 곳이 지비 고향에서 차로 2시간 걸리는 베를린.  지비의 아이키도 선생이 베를린에서 수련하다 폴란드로 온 사람이라 일종의 조인트 워크샵 겸 베를린에 갔다고 한다.  그때 지비 나이 16세.


소년 지비는 베를린에서 문화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에게 문화충격을 준 것은 브란덴부르크 그런게 아니라 흑인 노숙자였다고 한다.  구동구권 국가답게 폴란드는 개방이 덜되서 유색인종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대도시에야 중국인, 베트남인이 있지만 지비가 고향은 그랬다고.  노숙자도 별로 본 경험이 없는데, 그 노숙자가 흑인이어서 충격이었다는 소년 지비.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막 (비)웃어줬다.  "인종주의자!"하면서.(>_< )


그런데 지비는 실로, 진지하게 흑인 노숙자가 충격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