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떠나다. 93

[day13] 아들의 귀환

누리가 어릴 때 한국에서도, 영국에서도 아이가 아들이냐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그때는 '어딜봐서!'하며 혼자 화륵화륵 했는데 지금와서 지난 사진을 보면 내가 봐도 아들 같아 보인다. 눈에 콩깍지가 씌였었나 보다. + 내일은 먼 길을 떠나는지라 조신하게 보냈다. 나는 당분간 받지 못할 물리치료를 받고 약을 챙겼다. 누리는 미뤄둔 여권사진을 찍었다. 영국에 돌아가 영국여권을 갱신하기 위한 사진이다. 영국에서는 보정 같은 과정 없이 여권사진 규정에 맞춰 찍어만 준다. 5년 동안 쓸 여권사진을 이쁘게 찍고 싶어 한국에서 찍고 싶었다. 하나 밖에 없는 동네 사진관에 가서 여권사진을 찍겠다고 하니 머리를 묶어달라고. 두 가닥으로 묶을까 고민하다 한 가닥으로 묶었다. 그런데 아저씨가 애써 앞으로 쓸어내렸던 곱슬 ..

길을 떠나다. 2017.04.13

[day12] 영국이 여기저기

어제 집에서 하루를 보낸 누리는 정해진 하루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한탓에 밤 10시가 다되어 잠들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오늘은 코코몽키즈랜드로 고고. 누리에게 할머니집이란 코코몽키즈랜드와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곳과 동의어다. 런던을 떠나며 코코몽키즈랜드와 자전거를 타러 간다며 신나했다. (글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자전거는 벌써 여러 번 타러 갔는데 코코몽키즈랜드는 아직이었다. 코코몽키즈랜드 - 부산대NC 평일 코코몽키즈랜드는, 거기다 오전은, 정말 한산했다. 누리 포함 아이가 5~6명. 코코몽 공연이 없어 누리가 아쉬워했지만(그런게 있다, 시끄러운 코코몽 테마노래로 아이들 정신을 쏙 빼놓는) 원하는대로 다 할 수 있어 좋았다. 정신없이 흩어져 있던 장난감 자동차를 일렬로 정렬한 뒤 마음껏 레이싱을 하..

길을 떠나다. 2017.04.12

[day11] 긴 휴가의 장단점

휴가가 6주쯤 되니 특별한 일 없이 빈둥빈둥 보내는 일도 있다. 긴 휴가의 단점이기도 하고, 장점이기도 하다. 3박 4일, 5박 6일 그렇게 정해진 휴가라면 상상하지 못할 일이겠지만. 나는 병원 두 곳을 다녀오기는 했지만 누리에겐 특별한 일이 없었던 하루였다. 내가 병원 간 사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집청소도 하고, 저는 돕는다지만 도움은 그닥 되지 않는, 할아버지 방에 들어가 할아버지의 여가생활에 참견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여가생활, 그리고 보자기 하나 뒤집어쓰고 빨간 모자/두건/망토 아이도 되었다가 하늘을 나르는 히어로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보자기가 초록색이네. + 이렇게 금쪽 같은 휴가 하루가 흘러갔다. 정말 금쪽 같이 보낸 하루.

길을 떠나다. 2017.04.11

[day05] 뽑기

런던에서 주로 장을 보는 마트에도 계산대 근처에 동전을 넣고 돌리면 장난감이 담긴 플라스틱 공이 굴러나오는 - 일명 '뽑기'가 있었다. 이 게임기(?)의 정식 명칭은 뭘까? 누리는 늘 궁금해했지만 한 번도 해주지 않았다. 언니, 오빠들이 하는 거라고 말해줬더니 누리도 언니가 되면 하겠다고 했다. 구경하는 일은 있어도 동전을 달라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에 와서 그 뽑기 기계들로만 가득 채워진 가게를 발견하고 걸어들어갔다. 누리 말고, 내 발로. 여러번 맞춰도 계속 맞지 않는 전자손목시계를 누리는 꺼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누리의 애장 아이템이 됐다. 3000원 이상의 기쁨을 주었으니 그걸로 족하다. 또 하자 그러면 어쩌지? + 그리고 친구들도 만나고, 먹거리 리스트에 줄을 좍좍 긋고, (거의 매..

길을 떠나다. 2017.04.10

[day04] 돌봄노동도 돌봄이 필요하다

한국 오기 전 먹거리 리스트를 만들었다. 아주 중요한 리스트라기보다 그냥 가보고 싶고, 먹어보고 싶은 걸 저장해두었다. 그 리스트에 줄을 좍좍 긋기 위해 매일 같이 나가도 부족한데 오늘은 그 모든 일을 접어두고 병원을 가야했다. day04 다리가 아파 잠을 자지 못했다고 앞 일기에 썼는데 아주머니들에 둘러싸여 일하는 언니의 의견으로는 허리가 원인일 수 있었다. 아이 키우다 허리 디스크가 많이 온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월요일을 기다리는 동안 폭풍검색을 해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한국으로 오는 동안 거의 만석의 비행기에서 운 없이 다른 승객과 나라히 앉아와야 했다. 운이 없다고 썼지만 표를 두 장만 샀으니 어쩔 수 없고 당연한 일이다. 지비의 배웅, 언니의 마중을 희망하면 주말에 출발하고 도착하는 것이 ..

길을 떠나다. 2017.04.04

[day02-03] everyday holiday

휴가와서 우리가 하는 것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무척 하찮을지도 모르겠다. 놀이터에 나가 놀고, 자전거 대여점에서 자전거를 빌려타고, 빵집에 가서 빵을 사먹고. 사람들이 매일매일 하는 일들이고, 우리 역시 런던에서 매일매일은 아니더라도 일상적으로 하던 것이다. 다만 지금은 한국에서 하고 있다. 한국에서 일상을 보내는 것이 우리에겐, 누리에겐 아주 특별한 휴가다. day 02 누리랑 둘이서 영화를 보러 갔다. 아기돼지 삼형제와 매직램프. 누리에겐 인생의 첫(만화)영화다. 한 시간 정도의 공연을 본적은 몇 차례 있었지만 영화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자세하게 설명해주지 않고, 어둠을 부담스러워할까봐, 카툰을 보러가자고 집을 나섰다. 시차적응이 안되서 집을 나설 때도, 돌아올 때도 무척 힘들었지만 영화 자체는 ..

길을 떠나다. 2017.04.03

[day01] 아이들이 없는 놀이터

긴 여정의 끝으로 어제 부모님집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많이 자고 오전 10시 반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다시 9시 반쯤 잠자리에 든 걸보면 누리는 금새 시차를 극복한듯하다. 물론 나는 그렇지 않고. 처음으로 타본 장거리 K항공사. 기대가 높았다. 비행기는 낡고 청소가 안된 것 같았지만 좌석이 넓어서 좋았다. 좋았던 것은 잠시. 만석의 비행기에서 누리를 재우느라 꼼짝마 자세로 10시간을 날아왔다. 1시간 지연출발에 맘 상했는데 도착시간을 비슷하게 맞춘걸 보면 역시 한국 항공사. 직원들도 친절하고 다 좋지만 아이를 데리고 다니니 그 기준으로 또 한 번 항공사를 평가하게 된다. 누리에게 제공된 기내식은 별 열 개에서 점수를 주자면 별 한 개 정도. 가져다 준 승무원의 친절함이 별 한 개다. 영양이고 뭐고 집에서..

길을 떠나다. 2017.04.01

[day12] 알쏭달쏭 의료보험

우리가 한국에 도착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누리 이름 앞으로 의료보험 청구서가 날아왔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의료보험 공단에 전화를 해봤다. 출입국 기록이 의료보험공단에 자동으로 공지되어 우리가 한국에 체류하면 자동으로 의료보험이 청구되는 것인데, 이번에 청구된 것은 지난해 가을에 입국했을 때 의료보험료였다. 우리는 의료보험이 일시정지된 상태기 때문에 의료보험 혜택을 받으려면 일시정지를 해지하고 의료보험료를 내야한다,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출입국 기록이 의료보험공단과 공유되어 우리가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은 의료보험료가 청구된다고 한다. 의료보험이 일시정지 상태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해도 한국에 있는 기간만큼 무조건 의료보험료가 청구된다고 한다. 의료혜택을 받으나 마나 의료..

[day24] day after day

한국행은 day23에서 끝났지만 딱히 뭐라고 마무리를 지어야할지 떠오르지 않아 day24. 어제 음식만 먹으면 설사를 하는 누리를 데리고 대략 11시간 비행기(인천-런던 구간만)를 타고 런던으로 돌아왔다. 비행기가 40여 분 연착했으니 거의 12시간. 설사하는 누리가 걱정스러워 상하 여벌 옷 3벌에 바지만 3개 더 추가하여 기내에 들고갈 짐을 쌌다. 가방은 무거웠지만 걱정하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시차적응 때문에 새벽 3시에 일어난 누리와 함께 간식도 먹고 , 한국에서처럼 EBS U채널도 보면서 틈틈히 검색을 해본 결과 누리의 설사는 감기/중이염으로 처방받은 항생제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병을 나으려고 먹는 약으로 또 다른 병을 얻다니. 항생제 때문에 얻은 설사지만 친구들의 조언에 따라 유산균 ..

[day20] 한국병원방문기

화요일 저녁 잠시 외출하면서 누리를 부모님께 맡겨두고 나갔다. 집을 나선지 3시간만에 누리가 좋아하는 로보콩을 안고 귀가하였다. 두 시간은 잘 놀다가 한 시간은 발코니에서 문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는 누리. 누리가 그날 밤새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다. 일어나서 한참을 울기도 했다. 그러다 이른 아침인 6시쯤 일어나 구토하고 만 누리. 특별히 열은 없어보여 물을 많이 주고 밥도 조금씩 주었다. 오후에 낮짐으로 빠져든 누리 - 아프다는 증거. 그때부터 몸에 열이 있는듯해서 영국에서 가져온 해열제/진통제를 먹이고 지켜보기로 했다. 하루 더 지켜보고 싶었지만 병원에 가보란 부모님의 의견에 한 걸음도 걷기 싫어하는 누리를 안고 나섰다.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났다. 목 안이 많이 붓고 귀 안에도 염증이 조금 있어 항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