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떠나다.

[day40] 한국가면 꼭 하는 일

토닥s 2017. 6. 9. 19:06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에 가면 꼭 먹어야 하는 음식, 만나야 하는 사람은 줄어든다.  믿기지 않겠지만 먹는데 취미를 잃었다.  물론 여전히 먹는 건 즐겁지만, 3인 가족 먹거리를 내 손으로 지어먹고 살다보니 한국에 가면 내 손으로 하지 않은 모든 음식에 감사하고 즐겁다.   필드 밖으로 벗어나니(튕겨나니) 만나자는 사람들은, 멀리서 달려와주는 사람들은 오랜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너무 고맙다.  때로는 쓸모가 없어진 사람같아 서운한 마음도 없지 않지만.

나뿐 아니라 외국에 사는 사람들은 한국에 가면 꼭 하는 일이 병원과 미용실 방문이 아닐까 싶다.  이곳은 미국과 달리 기본적으로 무상진료라 병을 미뤄두고 살지는 않지만 치과는 거의 유상진료일뿐 아니라 한국만큼 해내질 못해 영국의 지인들은 한국에 가면 꼭 치과에 간다.

런던으로 돌아올 날을 앞두고 나도 누리를 데리고 치과에 갔다.  그보다 며칠 앞서 나도 치과에 가서 치석제거를 했다. 

나도, 누리도 치료할 곳이 더 없어 안도했다.  누리는 아기때부터 쓰던 무불소치약을 써서 저불소라도 바꿔야 하냐고 물어보니 치약보다는 칫솔질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해주셨다.  맞는 말씀.  나도 지난해 방문에서 큰 돈 쓰고나서 열심히 칫솔질을 했다.   치간 칫솔도 사용하며.  치약도 손에 잡히는대로, 할인하는대로 쓰던 것에서 평이 좋은 상품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그 상품이 할인을 하면 여유 있게 사둔다.

한국을 떠나오기 바로 전날 미뤄둔 미용실에 갔다.  영국을 떠날 땐 첫번째 할 일로 꼽았는데 마지막 날에야 가게 됐다.  정말 그 전에는 갈 시간도 없었지만 염색을 하거나 퍼머(넌트)를 하는 것에 관해서 갈등하고 있었다.  일단 염색은 하지 않고 머리를 자르기로 했다.
내가 머리를 자르는 동안 누리를 보게 했고, 저도 자르겠냐고 했더니 자른단다.  예전 같았음 울고 불고 했을텐데 나의 나아진 모습(?)을 보고 마음을 바꾼 모양이다.

앞머리 자른다고 눈 감으라니 눈 감는 누리를 보고 '참 많이 컸다'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아직은 '다 키웠다'하려면 갈 길이 멀다.

한국여행의 마지막으로 미용실에 간 뒤 마무리하지 못한 숙제 같은 여권사진을 다시 찍기 위해 사진관을 찾았다.  지난 번 글( '아들의 귀환' http://todaks.com/1522 )을 읽은 사람은 알겠지만 더 이쁘게 찍으려고 한국에서 찍은 여권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용실에 간김에 다시 찍기로 마음 먹었다.

같은 사진관에서 사진을 다시 찍는다고 했을 때 센스 있는 분이면 돈을 좀 깍아 주었을텐데 그대로 다 받으셨다.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두 번째 찍은 사진도 별로였다.  첫번째 사진도 거칠게 포토샵으로 잔머리를 다 지워 아들처럼 만들어놨더니 두번때 사진도 마찬가지.  포토샵을 못하시나.  여권사진 일년에 몇 번 보나, 여권사진은 여권용이라며 돌아와서 그 사진으로 영국여권 갱신 신청을 했다. 

아이용 영국여권은 갱신이라도 한국처럼 구청에 가서 신청하고 그런게 아니라 일종의 증인 서명countersignature을 받아야 한다.  이 사진의 아이가 여권을 신청하는 사람의 것이라는 증인 서명.  누리 어린이집 친구의 아빠가 그 서명을 해줬다.  그러면 여권발급기관은 그 아빠의 직장으로 다시 서류를 보내 한 번 더 그 아빠의 서명인지를 확인받는 내용을 묻는다.  자필로 그 서류를 여권발급기관에 보내면 비로소 여권을 내준다.  왜 이렇게 구구절절 쓰냐면, 이렇게 복잡한 절차를 거쳐 보낸 신청서가 반려됐다.  사진 때문에.  한 달안에 사진만 다시 증인 서명을 받아 보내면 여권을 내줄 모양이지만, 이 반려 편지를 받고 한국에서 두번이나 여권사진을 찍은 사진관에 항의하고 싶었다(요즘 영국의 상황이 그러하여 함부로 폭파하고 싶었다는 표현은 못쓰겠다).

반려를 알리는 편지에 '저급한 사진품질poor quality'이라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었다.  영국여권사진을 한국사진관이 어떻게 아냐고 할 수도 있지만 여권사진은 그야말로 세계공통이다.  여권의 모양은 다르지만 갖춰야하는 내용, 증명하고자 하는 내용은 같기 때문이다.

편지를 받은 다음날 아침인 어제 아침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이곳 사진관에 들러 여권사진을 다시 찍었다.  받아보니 영국여권사진이 요구하는 바를 알겠다.

한국여권사진에서 요구하는 배경, 옷색깔, 어깨선 그런 것들이 중요한게 아니라 사진의 인물과 실제 인물이 같아보이는지 확인하는게 더 중요하다.  기계판독 같은 걸 위해서 두 귀와 눈썹/눈/이마를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  그러니 과도한 포토샵이 문제가 된 것 같다.  사실 사진의 질로 봤을 땐 조명이나 초점 같은 건 한국에서 찍은 여권사진이 더 낫다.  그런데 과도한/거친 포토샵이 인물을 인공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영국에선 이렇게, 포토샵 없이 사진을 찍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쁜 사진 찍어주려고 한국가서 찍었던 것인데.  좋은 & 비용이 드는 경험을 했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사진은 사진사에게,
영국여권사진은 영국사진사에게.

+

그럼 내년에 여기서 한국여권을 갱신해야하는데 그 사진은 또 어디가서 찍나.  런던의 한인타운에는 사진관은 없는데.  잇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