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떠나다. 93

[day19] 흥 칫 뿡!

예전에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위해 버스운전사였다 글을 쓰시는 분을 모신적이 있다. 그 분 책과 글을 읽으면서 짐작만했던 고단한 버스운전사분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었다. 빠듯한 쉬는 시간이 교통정체로 기점으로 늦게 들어오면 잘려나가는 식이었다(요즘은 그렇지 않겠지). 들을 땐 재미있지만 다시 한 번 새겨보면 슬픈 일화 중 그런 내용이 있었다. 한국의 버스운전사들은 운전도 잘하고, 시간도 잘 지키고, 밥도 빨리 먹고, 화장실도 잘 참을 수 있어야하는데 눈도 좋아야 한다는. 버스 정류장에 선 승객이 자신이 운전할 버스를 탈 것인지 말 것인지 멀리서 판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버스가 다가올 때 미동도 없던 승객이 버스가 지나가면 불만신고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초능력/ 예지력 /독심술로 승객의..

[day6] 일타쌍피의 날

외숙모님이 비슷한 때 미국에서 한국을 방문한 사촌동생네와 우리에게 밥을 해주고 싶으시다고 점심 초대를 하셨다. 사정상 사촌동생이 머물고 있는 이모네로 집결. 외국생활하고 있는 사촌과 나를 위해 닭볶음탕(닭도리탕), 아이들을 위해 햄버거 패티를 준비해주셨다. 고기를 먹지 않는 누리는 준비해간 토마토, 오이 그리고 김과 밥을 먹었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사촌동생의 아이들은 나이가 많아 놀라웠지만 누리를 잘 데리고 놀았고, 영어 한 마디 하지 않는 누리는 언니 오빠들을 쫓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지인을 만나 커피까지 마셨으니 일타쌍피. + 집으로 돌아오는 길 누리는 피곤을 주체하지 못해 코알라처럼 내게 매달려 왔지만 또 하나의 반가운 만남이었다. 누리에게도 나에게도. 사촌동생..

[day5] 고사리미더덕찜

10여 개월의 영국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후배가 뭘 먹고 싶냐고 물었다. 김밥과 떡볶이라니 "소박한 양반"이라며 바로 학교 앞 분식집으로 호출해주었다. 멋진 사진들이 가득한 블로그들을 보며 군침을 삼키지만, 막상 먹고 싶은 건 평범한 것들이다. 매번 먹을 거리 리스트를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떠나오는데 바빠서 그런 것들을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다. 사실 누리가 생기고선 음식에 대한 미련이 없어졌다. 배는 고파도 먹고 싶은 것들이 없는 생활들. 오랜만에 들깨 가득 들어간 고사리미더덕찜을 먹었다. 미더덕을 먹어본 게 얼마만인지. 바다향 가득 참 맛있었다. 들깨, 고사리 이런 맛보단 미더덕이 더 비중있게 다가오는 걸 보면 나도 참 유치한 입맛. 밥 반공기에 찜만 두 공기를 먹었다. 내일 아침에도 먹어야지!

[day3] 디어 마이 프렌즈

한국에 도착하고서 벌써 시간이 휘릭. 고교 동창 둘과 친구들의 남편, 그리고 아이들과 바닷가에 갔다. 장소을 정할 때부터 아이들의 엔터테인먼트가 주요 고려사항이었다. 바닷가 까페에 자리잡고 친구들의 남편들이 아이들을 양떼처럼 몰아 바닷가에 가고 우리는 시원한 까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나는 울면서 걸어들어올 누리를 예상하며 친구들과 바닷가의 아이들을 번갈아봤는데, 웬걸. 밥 먹으러 가자고 할 때까지 바닷물에 흠뻑 젖어 즐겁게 놀았다. 거기까지 아이들의 몫이 끝나고 뒷일을 해결하는 건 고등학생에서 부모(아이구 어색해라)가 된 우리 몫. 바닷가 근처 낡은 민박집에서 아이당 2천원씩 주고 물로 씻겨 유명하다는 가자미미역국을 먹으러 갔다. 늦은 점심을 먹고 멀리서 온 친구 가족과 헤어지기 좋은 고속도로 입구 ..

[day0] 파리 파리 파리

지난 월요일이 영국은 공휴일이었다. 긴 주말을 이용해서 파리에 다녀왔다. 이 여행은 그 이유가 변경되고, 변경된 경우였다. 누리와 같은 또래 아이를 두고 있는 Y님과 어느날, "파리 디즈니랜드 갈까?"에서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만 4세 이전에 가면 유로스타(런던-파리간 기차)도 무료고, 파리에 연고가 있는 친구가 자신의 거처에 머물 수 있게 해주겠다고. "좋다", "좋다"며 이야기를 발전시켜나가던 중 지비가 자신도 디즈니랜드 안가봤다며, 가고 싶다며. 그래서 Y님을 배신하고(죄송죄송.. 굽신굽신..) 결과적으로 지비와 가게 되었다. 그 이전에 누리가 학교 들어가기 전에 미국 여행을 하려고 했다. 결혼 5주년이라는 좋은 핑계가 있었으나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아니다, 한 가지 돈이 문제였다. 런던에서는 ..

[day0] 시작과 끝 - 유아와 비행기 타기

이번에도 한국 갈 때 아시아나를 탔다. 그 말 많고, 탈 많았던 아시아나. 가격이 매력적이었고, 그 만큼이나 런던 출발 시간이 저녁 9시라는 점이 중요한 결정 포인트였다. 혼자서 누리를 데리고 가는 일정이라 장거리 비행에서 누리가 7~9시간 자준다면 그만한 장점이 없다. 좌석 예약 일찍 좌석 예약을 마쳐두었는데, 런던에서 아는 지인이 아이와 비행할 때 나란히 좌석을 예약하기보다 한 좌석 건너 예약해두면 그 사이 좌석이 빌 경우 편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비수기라면 사이 좌석이 빌 가능성이 아주 높다며. 당장 예약 센터에 전화해 설명하니 이해해 준다. 그래서 같은 줄 A와 C 좌석을 예약했고 런던-인천 구간은 성공적으로 세 좌석에 둘이 앉아, 누리가 잘 때는 두 좌석에 누워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인천-런던..

[day2] 파리의 다리들

루브르 박물관을 떠나 노트르담 성당 Notre Dame de Paris으로 가던 길에 발견한 다리, Pont des Arts. 사랑의 열쇠들이 난간 가득 채워져 있다. 한국도 그러하지만, 오래지 않아 생긴 것인듯. 분명한 건 내가 여행을 갔던 2000년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모르겠다,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인지도. 이 다리 이름을 찾기 위해 검색해보니 시떼 Cite섬을 잇는 다른 다리에도 이 비슷한 것이 있나보다. 열쇠들의 무게들 때문에 다리에 무리가 가서 열쇠들을 걷었다가 말았다가 그런 논란이 있었지만, 이 역시 관광자원인지라 그냥 두기로 한 모양이다. 그날도 세느강은 계속 좌우로 흘러주시고. 여름에 파리를 간다면 유람선은 꼭 타볼만 한 것 같다. 특히 밤에. 조명과 어우러져 볼거리가 된다. 유람선에서..

[day2] 루브르 박물관

파리여행 둘째날은 아침 일찍 서둘러 루브르 박물관을 갔다. 영국처럼 크리스마스에 모든 곳이 문을 닫는 것은 아니지만, 관광객이 갈만한 곳들은 문닫는 곳이 많아 좀 서둘러 둘러보기로 하였다. 파리에 처음 갔을 때 이 수동식 문고리 때문에 지하철에서 내리지 못할뻔 한 적이 있었다. 한국 생각하고 버젓히 문 앞에서 기다리기만 했던 것. 그때가 2000년이었는데, 그래서 지금은 바뀌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여전한 수동문. 유럽은 좀처럼 잘 바뀌지 않는다. 불편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또 딱히 불편하지도 않다. 우리 숙소는 듀블레Dupleix라는 역으로 6호선 상에 있었다. 정말 부지런히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왜 버스나 전차를 타볼 생각은 안았을까 싶지만, 말 안통하는 우리라서 표지판과 역이름이 선명한 지하철 ..

[day1] 오르세 미술관

오르세는 고흐나 고갱 같은 19세기 인상주의 작품들이 많아서 인기가 있는듯 한데, 우리는 별로 이 미술관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관계로 초반에 다른 작품 보다가 지쳐서 인상주의 작품들은 "여까지 와서 그거 안볼 수 없잖아?"식으로 둘러봤다. "응 그래, 저거.."하면서. 힘들어서 감흥이 없었다. 아니 지식이 없어서 그랬는지도. 런던에 유명한 박물관 중에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이하 V&A)이 있다. 한국서 손님이 올 때마다 어디 가고 싶냐고 물으면 빠지지 않는 곳이다. 모든 영국 가이드북과 여행 에세이에 잘 소개가 되어 있는 모양인데, 손님들이 그곳에 가보고 싶다고 할 때마다 내 반응은 "(끄응).."이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박물관 중에 하나다. 크기가 크기도 하지만, 소장품이 너무 많다. 사실 소장..

[day1] 에펠타워

파리에서 묵었던 숙소에서 에펠타워가 가까웟다. 이 여행에서 묵었던 숙소도 재미있는데 그건 다음에 따로 올리고. 그래서 숙소에 짐을 내려놓자 말자 에펠타워를 보기 위해 나섰다. 암, 파리에 왔으면 에펠타워를 보는 걸로 신고식을 해야지. 숙소에서 에펠타워까지는 걸어서 10~15분 정도 걸렸다. 에펠타워로 걸어가다 발견한 빵집 푸아랑Poilane(이렇게 읽는게 맞는강?). 웬지 장인의 냄새가 느껴지는 빵집이었다. 나중에 파리 출신 지비 친구에게 들으니 꽤 유명한 집이라고 한다. 심지어 이 빵집의 재료를 고스란히 영국으로 수입해 영국의 슈퍼마켓 브랜드인 웨이트로스waitrose에서 물만 넣어 구워 팔고 있다고 한다. 웨이트로스는 시중 슈퍼마켓 브랜드 중에서 가격이 높은 측에 속한다. 그런데 그 친구의 말은 모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