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Cooing's

[+1585days] 기억이 자란다.

토닥s 2017. 1. 21. 07:08
오랜만에 써보는 밥상일기 아닌 일기.

언니와 조카가 월요일 한국으로 떠나가고 4일 동안 매일 두 번씩 세탁기를 돌렸다.  빨래할 거리가 많았다기 보다는 세탁기가 6.5kg라 한 번에 많은 빨래를 할 수가 없어서다.

언니와 조카가 떠나던 월요일부터 누리는 쭉 - 감기로 어린이집을 쉬고 있다.  어제인 목요일쯤엔 갈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누리는 어린이집에 가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놀기 때문에 아예 보내지 않았다.  어중간하게 보냈다간 나아가던 감기가 다시 도질 것 같아서.  일주일 동안 정말 둘이서 지지고 볶으며 보냈다. 

가족이 함께 한 3주 사이 크리스마스가 있었고, 해가 바뀌기도 했지만 그러한 계기보다는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 자체가 누리에겐 매일매일이 축제였고 휴가holidays였다.  내가 느끼지는 못해도 한국어가 향상되거나 최소한 유지되기는 했을터다.  언어보다 내가 느낀 더 큰 변화는 누리의 기억이었다.  기억이라는 것이 생겼고, 그 기억이 더 오래 간다는 걸 느꼈다.

예전엔 누리가 뭔가를 요구하면 "내일 해줄께"하면 다음날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에 눈뜨자말자 전날의 요구를 반복하는 누리를 보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런 단순한 기억을 넘어 누리에겐 이제 가족이 기억에 남아있고, 그들과 함께 한 시간이 기억에 남아 있게 됐다.  키와 함께 기억도 자라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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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언니가 와서 2주를 보내고 돌아갈 때 천진하게 손 흔들던 누리가 이번엔 공항에서도 울고, 집에 와서도 울고, 집에서 이모가 신던 슬리퍼만 보고도 울어 나도 마음이 무겁던 며칠이었다.  그런데 또 시간이 지나니 울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했던 기억을 꺼내 이야기도 한다.

베이킹 책을 보고 동그란 브라우니를 보더니 우리집에 언니의 친구 가족이 방문했을 때 먹었던 동그란 초코과자를 떠올리며 "결이 오빠 왔을 때 먹었던 것"이란다.  사실 책 속엔 브라우니가 있고, 우리가 실제로 먹었던 것은 과자였는데.

타원형의 카스테라를 보고선 할머니네 가면 빠리빵집에서 사먹던 "뽀로로 치즈 케이크"를 떠올린다.

이렇게 기억과 함께 아이가 자라고 있다.  기억할 것이 많은 아이가 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