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육아 149

[+1138days] 남친의 조건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시내로 갈 때 사용하는 지하철 노선은 둘이다. 디스트릭트 라인district line과 피카딜리 라인piccadilly line. 그 중 디스트릭트 라인은 집에서 가까운 역에 서고, 피카딜리 라인은 디스트릭트 라인을 타고서 다른 역에 가서 갈아타야 하는 노선인데, 런던 시내 중에서도 한 가운데로 갈 때 빨리 갈 수 있는 노선이다. 시내 한 가운데로 빨리 갈 수 있는 것은 피카딜리 라인이지만, 개인적으로 이 노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바로 탈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누리와 함께 이 노선을 이용하는 게 무척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이 노선은 런던 히드로 공항이 있는 서쪽 6존에서 런던을 가로 질러 런던의 동쪽으로 간다. 지하철은 자주 있지만, 늘 공항으로 ..

[+1135days] 요즘 우리

이런 저런 생각들은 많은데 정리할 시간을 못찾고 있다. 누리가 잠든 밤에는 뭐하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정말 그 시간이 되면 TV리모콘 겨우 누를 기력 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걸 보는 행위 조차도 영어를 이해해야 하는 고도의 정신노동이라 대부분은 TV앞에서 졸다가 다시 자러 간다. 한국에 다녀온 뒤 누리는 지비의 표현대로 버릇이 없어진 것인지, 그 사이 자라 또 다른 수준의 이른 것인지 이전과 같은 방법으로 다루어지지가 않는다. 하고 싶다는 것도 많고, 하기 싫다는 것도 많고 - 뭐 그렇다. 어중간한 식재료 배달 때문에 멀리 나가지도 못하고 오전에 잠시 산책하고 들어와 둘이서 우동을 나눠 먹었다. 출출함을 커피로 채우겠다며 나갈 준비를 하는데 영 도와주질 않는 누리. 옷 다 입고서 양말만 신기를 거부..

[+1031days] 헌집 주고 새집 받기

누리의 놀이집을 팔고 그 돈으로 인형집을 사기로 하였다. 일반적인 인형집이 아니라 누리가 즐겨보는 CBeebies 의 '빙'이라는 캐리터 상품. 얼마전 우연히 검색을 하다 관련 상품이 7월에 출시 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데 '예약주문'을 하래서 '뭘.. 때되면 사지..'라고 두었는데 놀이집을 보내고 나서 검색해보니 다 품절. 한국의 부모들이 장난감 출시일에 맞춰 줄 선 사진에 고개를 가로 저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모습이 될줄이야. 매일 한 번씩 물건이 들어왔는지 몇 개의 온라인 샵과 잡화상점의 온라인 몰을 확인했다. 그런데 화요일 저녁 잡화상점의 온라인 페이지에 빨간 품절 표시가 사라진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당장 예약하고 다음날 찾아왔다. 비 때문에 취소된 놀이터행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라며 ..

[+1029days] 영국의 클래스

오늘 누리와 수영장에 갔다 역시나 인근 쇼핑상가에 들렀다.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서. 점심을 먹고, 간단하게 필요한 장을 보고, 누리가 늘 가고 싶어하는 마더캐어 mothercare라는 상점에 들렀다. 마더캐어는 영국판 아가방(그 비슷). 누리가 가고 싶어하는 이유는 전시/시연된 장난감들을 가지고 놀 수 있기 때문이다. 누리가 기차를 가지고 놀다가 옆에 있던 인형을 화물칸에 태웠다. 그런데 그 인형이 좀 이상해서 살펴봤다. 휠체어를 탄 인형이었다. 해피랜드라는 마더캐어 내 계열 상품이 있는데, 쉽게 말하면 인형놀이 세트다. 집도 팔고, 차도 팔고, 그 안에 넣는 다양한 직업들의 인형도 팔고 그런 세트다. 물론 따로따로 구입해야 한다. 영국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왕자비가 아들 조지를 낳았을 땐 그 기념 세트..

[+1028days] 엄마적 갈등

첫 갈등 지난 금요일 오랜만에 Y네 레스토랑에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하였다. Y네 레스토랑이 있는 동네는 집에서 가까운 오버그라운드(지상철)를 타고 다섯 정거장만 가면 된다. 그런데 오버그라운드 역까지가 문제였다. 어른 걸음으로 10분이면 될 거리인데 누리와 걸으면 얼마나 걸릴지 가늠이 안됐다. 준비가 늦어져 타려고 계획했던 20분 오버그라운드는 놓치고, 다음으로 계획했던 40분 오버그라운드 역시 놓치고 말았다. 다행히 10분 뒤인 50분에 오버그라운드를 겨우 탔다. 출퇴근 시간이 아니라 배차 간격이 길었다. 역으로 가는 길은 공원을 가로 질러 간다. 가면서 참 많이 갈등했다. 누리를 억지로 끌고 가면 40분 오버그라운드를 탈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그날 따라 누리가 왜 그리도 각종 사물에 관심이 많고,..

[+1027days] 천일 동안 - 선물 혹은 기념품

누리님 탄신 천일 기념으로 주문한 선물 혹은 기념품 (참고 http://www.todaks.com/1251). 사실 페이스북 친구들은 벌써 봤지만, 그림값을 지불하지 못해 이곳에 올리지 못했다. 공인인증서를 갱신하지 못해 결국 그림값 입금을 한국의 언니님에게 부탁하였다. 선주문하고 그림값 지불하고서 자세한 주문사항을 넣으려고(?) 했으나 어느날 '척' 그림이 먼저 배달되었다. 내가 주문할 그림의 모티브로 고려했던 사진을 딱 골라서 그림을 그리셨다. 사실 그림이 그려진 날짜는 살짝 천일이 지났을 때다. 하지만 선주문을 넣은 날은 천일이었다. 그린이에게 "날짜를 그 날로 넣어주면 안돼?" 할까도 싶었지만 솔직하게 살기로 한다. 한국가서 크리스탈 액자로 만들어 올까, 캔버스 인화를 할까 생각 중이다. 혹시 비..

[+1023days] 이색 모유수유

누리가 한 돌이 되기 전까지 가끔 어울려 차를 마시거나 서로의 집으로 초대해 밥을 먹곤 한 두 명의 엄마들이 있다. 비슷하게 딸들을 낳은 엄마들. 한 명은 가까이 사는 (그리고 블로그에 가끔 언급된) 독일인 엄마고 한 명은 한 동네라긴 어렵지만 걸어서 대략 15분 거리에 사는 영국인 엄마다. 이 영국인 엄마와 우리가 사는 곳의 중간 지점에 도서관이 있어 그 근처 까페에서 커피를 마시곤 했다. 나를 빼고 이 두 엄마 모두 모유수유를 했는데, 두 엄마 모두 자연주의 육아에 관심도 많고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라 모유수유의 때와 장소에 관해서 스스럼 없는 사람들이었다. 까페에 앉아 모유수유를 해도 가리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간혹 그런 두 엄마를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긴 했다. 그럼 우리끼리 들릴 정도..

[+1003days] 아이의 본업

날씨가 좋아진 요즘은 오전 오후 누리를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어떤 날은 아침 먹이고 집를 나서 저녁 먹기 전에 돌아오기도 한다. 집을 나서기 전 누리가 하루 종일 먹을 음식, 간식, 음료를 가방 한 가득 챙긴다. 피크닉 매트도 챙기고. 조금은 가벼워진 가방으로 집에 돌오면 하루를 잘 보낸 기분이다. 그런데 그렇게 다녀도 밝아진 날씨 탓인지 누리의 취침 시간은 점점 늦어지고 있다. 밤 9시 근처. 덕분에 누리는 늦잠을 자고 나는 아침을 먹고 아침뉴스를 보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놀고 먹는 게 누리 같은 어린이의 본업이니 요즘 누리는 본업에 아주 충실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꽁알꽁알 소리가 나는 걸 보니 깼나보다.

[+1000days] 천일 동안

누리님 탄신 1000일. 특별한 기록을 남기고 싶었지만 후다닥 지나가버렸다. 대신 특별한 선물/기념을 구두로 가계약 해두었다. 얼른 선물값부터 지불해야는데 이 IT 강국 한국이 돈쓰는 걸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선물/기념은 잠시 천천히. 천일 동안 이만큼 크느라 고생이 많았다, 누리. 지비도 고생이 많았다. 나도 고생이 많았다. 다들 고생이 많았다. 다음 천일도 잘 부탁하자, 서로들.

[etc.] 과일단상

바로 며칠 전까지 런던은 초봄처럼 추웠는데, 어제 오늘은 초여름 같다. 이제 여름인가 싶은데 영국의 여름은 한국의 봄만큼이나 짧게 느껴지니 제대로 즐겨야 한다. 높아진 기온 말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해주는 건 과일값과 맛이다. 일년 내내 똑같은 과일을 장바구니에 담을 수는 있지만 그 가격과 맛은 참 다르다. 아무래도 봄과 여름이면 과일이 싸고 맛있다. 요즘이 그렇다. 과일을 밥만큼이나 많이 먹는 누리라서 정말 사서 채우기가 바쁘다. 사과 같은 건 오래 가지만 요즘 즐겨 먹는 딸기, 라즈베리, 블루베리 같은 건 3일을 못가니 그 주기로 장을 봐야한다. 사실 빵, 우유, 과일 같이 많이 먹고 유통기한이 짧은 식재료 때문에 거의 매일 마트를 들락날락한다. 운 좋으면 이틀에 한 번. 그런데 이 과일들은 가방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