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20년 37

[life] 집콕(feat. 2차 봉쇄)

Covid-19이 없던 때에도 겨울로 가면 점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지는데, 덕분에 더더 집에서 집콕하며 보내고 있다. 영국 잉글랜드는 지난 목요일부터 2차 봉쇄에 들어갔다. 그 전에는 Covid-19 확산이 높은 지역별로 봉쇄를 했다. 생필품을 판매하는 상점 외 모든 상업 시설이 문을 닫았고, 출근도 꼭 해야하는 업종(건설) 정도만 할 수 있다. 실내외를 구분하고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 이외는 만날 수가 없지만 실외에서 친구 1명을 만나는 건 허용된다. 혼자 사는 1인 가구들의 심리적 지원을 위한 방편이다. 모든 것이 정지되었지만 어린집, 학교와 대학은 휴교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 봉쇄도 그렇게 의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더군다나 이번 봉쇄는 4주라는 한시적인 봉쇄인데, 크리스마스 연휴..

[keyword] Language - 말의 무게

한 친구가 가족이 암투병 할 때 그런 글을 남겼다. 우리가 흔히 '나쁜 것'을 이를 때 쓰는 '암 같은 존재'라는 표현이 주는 상처. 친구가 사용한 정확한 단어들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사용하는 언어와 글들이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어떤 사람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음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한 마디 한 마디 가려서 사용하는 게 맞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콘월에 사는 한 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다운신드롬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뒤 자신이 받은 충격이 다운신드롬에 관한 부정적인 언어에서 비롯됐다는 걸 알게 됐다. 그녀는 그러한 언어들을 당사자가 되어 들을 때마다 무척 상처받았다고. 그래서 지난 봄 Covid-19으로 인한 봉쇄 기간 우리가 자주 쓰는, 하지만 옳지 않은 표현..

[life] 궁금하지 않을 근황

주기적으로 블로그를 열심히 해보겠다 마음 먹지만, 그 마음을 오래 가지기 어렵다. 여느 블로그처럼 방문자가 많고, 수익이 생기는 블로그도 아니니, 당위가 잘 생기지 않는다. 그래도 나를 기록하고 위로하는 블로그니 띄엄띄엄이라도 해보자고 다시 나를 재촉해본다. 그래서 아무도 궁금하지 않을 근황-. 누리와 체스를 시작했다. 누리의 폴란드 주말학교 친구 둘이 지난 봄부터 시작된 봉쇄(lockdown) 기간 동안 시작했다는 체스. 전통적인 게임이라 스크린타임을 줄이는데 효과적이며, 아주 가끔 아이가 아빠를 이기를 경우가 발생하면 아이가 얻는 성취감도 크다하여 우리도 시작해봤다. 누리가 생기기 전 3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폴란드의 크라코프에서 바르샤바로 여행했을 때 옆에 앉은 청년둘이 열심히 두는 걸 보고 우리도..

[life] 해피 추석

지난 주말 볼 일을 보러 런던 외곽에 있는 뉴몰든에 들렀다. 그 주말이 추석인줄 알고 송편을 사오려고 했는데 알고보니 추석은 이번 주. 송편은 어렵고 일전에 이웃 블로거님 글에서 본 약식/약밥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제밤부터 콧물을 훌쩍이던 누리가 아침에 일어나니 감기 증세가 확연해 집에서 쉬게 하기로 했다. 요즘 같은 때에 아픈 아이를 학교에서 반길리 없고, 누리도 집에서 쉬는 게 긴 감기를 막는 일이기도 하니. 그래서 집에 있는 쌀가루 rice flour를 이용해 송편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 쌀가루는 이른바 건식 쌀가루라 건식 쌀가루를 이용한 송편을 검색해서 만들어봤다. 역시 건식 찹쌀가루와 섞어 물과 소금을 더해 냉장고에 잠시 묵혔다. 건식 가루 재료에 수분을 주는 과정인듯. 오전시간에..

[keyword] 마스크

Covid-19과 함께 시민들에게 필수품이 된 마스크. 적어도 한국과 같은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한국의 가족들과 친구들은 왜 유럽사람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는지, 정부는 쓰라고 강제하지 않는지 궁금해 한다. 일단 여기서는 전염병 같은 심각한 병에 걸린 사람들이 쓰는 게 마스크라는 생각이 많았다. 그래서 Covid-19 초기 마스크를 썼던 아시아인들에 대한 따돌림 행동이 많았다. 지금은 그보다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더 나아진 것도 아니다. 누리반 학부모 그룹대화방에서 마스크 이야기를 꺼냈을 때 병원에서 일하는(메디컬 스태프는 아니다) 한 엄마는 마스크는 제대로 썼을 때 질병 확산을 막아주는 것이지, 질병으로부터 보호해주지 못하는데 쓸 필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유럽 사람들의 인식이 딱 그 정도다..

[life] 발코니 프로젝트

올해 봄이 되면 발코니에 거는 형식의 화분을 사서 꾸며보겠다는 원대한 프로젝트를 구상중이었다. 새로운 봄이 오면 사려고 가을 겨울 부지런히 화분도 고르고, 우리집 발코니에 맞는지 미리 문의도 해보고 그랬다. 그런데 봄보다 Covid-19이 먼저 왔다. 발코니 프로젝트와 Covid-19이 무슨 상관인가 싶은데 식료품을 구입하는 마트만큼이나 바쁜 곳이 DIY와 가든용품을 파는 곳이었다. 사람들이 그 동안 하지 못한 집수리와 봄맞이 가든정리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모양이다. 봄이오면 사려고 했던 화분은 아무리 찾아도 재고가 없고, 화분 흙값은 몇 배로 뛰었다. DIY와 가든 용품을 파는 매장이 essential로 분류되어 문을 열기는 했지만, 직원수 부족으로 몇 군데 거점만 문을 열었다. 우리집과 가까운 매장은..

[life] Covid-19 시대의 남과 여

얼마전 소셜미디어에서 재미있는 뉴스(까지는 아니고 글)을 하나 봤다. Covid-19으로 뉴스도 영상 인터뷰로 많이 진행되는데, 인터뷰시 보여지는 배경에 관한 것이었다. 멋진 인테리어가 배경인 사람도 있고, 책장이 배경인 사람도 있고, 아무런 배경이 없는 사람도 있는데 그 사람의 성향(이나 성격)을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는 글이었다. 어제는 인터뷰하는 싱가포르 저널리스트 뒤로 고양이 두 마리가 싸우는 장면이 보인 것도 화제가 됐다. 인터뷰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의견을 넘어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보여주게 되는 요즘이다.누리의 휴교보다 앞서 재택근무를 시작한 지비는 주로 책상도 없는 침실에서 일을 한다. 누리와 내가 거실 공간(+주방)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오픈형..

[life] Covid-19 시대의 새로운 트랜드

# 교복 지난 주 스코틀랜드의 한 아이가 Covid-19으로 휴교한 뒤에도 집에서 교복을 입고 생활한다는 소식을 어린이채널 뉴스에서 봤다(참고. Coronavirus: The home school pupils putting on their uniforms). 그 뉴스를 함께 보던 누리에게 "너도 입을래?" 물었더니 입는단다. 그래서 휴교 9주차를 맞이하는 지난 월요일 하루 집에서 교복을 입고 생활했다. 마침 그날 해내야 하는 숙제가 평소보다 작았다. 보통은 오전에 2~3시간, 저녁 먹고 난 후 1~2시간을 더해야 하는데 점심 먹기 전에 혼자서 다 마무리 한 누리. 교복을 입어서 집중이 잘되는 것 같단다. 매일 입겠다는 아이를 말려서 일주일에 하루 입기로 했다. 그날 오후, 절친과 Zoom(화상미팅) 너머..

[life] 먹지 않아도 배 부른 빵

Covid-19으로 인한 사재기와 부족현상은 거의 해소가 됐지만, 여전히 몇 가지 품목들은 구경하기 어렵다. 알콜 손세정제, 각종 밀가루, 이스트가 그렇다. 요리에 별로 소질 없는 영국사람들이 빵이라도 만드려나 싶었는데, 그런 이유도 있지만 이동이 통제되고 먹거리의 많은 부분을 직접 해결하게 되면서 사람들이 요리와 제빵의 즐거움을 재발견하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내 주변만 그런지도 모른다. 친구들이 가끔 만든 빵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거나 메신저로 보내오면 그게 자극이 되서 나도 만들어보기도 하고 다시 공유하고 그랬다. 그래서 최근에 만들어본 빵들-. 크림치즈빵 스콘 시나몬 롤 그러다 이스트가 더는 없어서 만들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밀가루와 이스트를 구하기 어렵다는 걸 아는 친구 A가 아침에 문자를..

[life] 시간여행

2000년대 초반에 시작한 홈페이지가 있었다. 글쓰기 연습하고 필요한 자료를 저장할 용도였는데, 그 어느 것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그 홈페이지엔 내가 있었다. 불안하지만 가끔은 행복했던 내가. 영국에 온 뒤로 그 홈페이지를 손댈 여력이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온라인플랫폼들도 많이 바뀌었고 이제 홈페이지 같은 건 유명인이 아닌 다음에야 아무도 찾지 않는 올드 플랫폼이 됐다. 그 홈페이지 안에서 HTML 뒤져가며, 철따라 사진 바꿔가며, 친구들과 댓글로 투닥 거렸다. 나의 20대가 그 안에 멈춰있어서, 나의 오래된 지식으로는 어쩌지도 못하면서 매년 도메인과 호스팅을 유지하면서 10년을 보내버렸다. 매년 5월 초 갱신 기간이 다가오면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갱신하고 다시 일년 동안 잊어버리기를 반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