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5년 54

[taste] 더 커피 하우스 The Coffee House

집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분위기가 참 다르다. 주택가에 있으니 어른 걸음 5분, 유아동반 내 걸음 10분 반경엔 집 밖에 없다. 그 경계, 5분과 10분을 넘어가면 가게들도 있고, 까페도 있고, 하이스트릿도 시작되고 그렇다. 남쪽과 동쪽의 경우는. 그런데 북쪽과 서쪽의 경우는 가서 커피 한 잔 하고 싶은 곳이 별로 없다. 누리의 아기짐(유아체육교실이다. 이제 더이상 아기가 아니지만)을 하러 가는 서쪽은 한참 가야 나오는 만만한 곳은 맥도널드. 20분쯤 걸어가야 한다. 체육교실이 운영되는 곳은 걸어서 25분. 그쪽 방향은 누리의 체육교실이 아니고서는 차를 타고도 잘 지나가지 않을 곳인데, 누리 덕에 일주일에 한 번씩 6~7개월을 다녔다. 이유없이 맥도널드를 탓하면서, 왜 맥도널드 너 밖에 없냐면서. 그러던..

[life] 기름 한 방울의 일기

런던의 물가는 여행객들에게만 비싼 것이 아니라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그렇다. 차이라면 여행객들은 며칠 아끼다 가면 그만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냥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가끔 내 블로그에 등장하는 이웃가족과 우리가 함께 커피를 마신적이 있다. 누리가 백일도 못되었던 때. 지하철역 근처 프렌치 까페에서. 그때 이웃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자기는 "이 곳(우리가 살고 있는 옆동네)이 참 좋다"고, "이 곳에서 쇼핑을 하고 차를 마시면 나도 마치 부자가 된듯한 기분이 든다"고. 그리고 "이 곳의 채리티 숍에 가면 부자들이 내놓은 헌 옷을 아주 저렴하게 살 수 있다"면서. 그 때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부자가 된 기분이라니'. '우리가 부자가 아닌데 무슨 소용이람'하고 잘..

[food] 할로윈 당근빵 Halloween Carrot Bun

할로윈을 챙기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인터넷에 빵틀이 저렴하게 올라왔길래 사두었다. 지난 봄에. '언젠가 필요한 날이 있지 않겠나' 하면서. 재료는 베이킹 초반에 만들어본 당근 케이크/머핀 그대로. 다만 위에 올린 아이싱/크림은 생략한 채로 만들었다. 참고 : http://todaks.com/m/post/1088 마트에서 화이트 초코렛 펜을 사서 윤곽을 또렷하게 그리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는데 마트에서 재촉하는 어떤 작은 분(?) 때문에 서둘러 오느라 잊고 말았다. 할로윈 당근빵 할로윈이라 이름 붙이기도 미안하다. 사실 빵틀이 98% 먹고 들어가는지라 나의 창의력은 아무 것도 기여한 바가 없으니. 다른 사람들처럼 호박 넣고 만들어볼까 했는데, 일전에 써본 호박 퓨레는 맛이 쓰고 단호박은 우리 집 주변에서는 ..

[life] 라면을 부르는 오후

라면을 참 좋아하는데 언젠가부터 먹고나면 속은 더부룩하고 잠은 쏟아져 멀리하게 됐다. 누군가는 늙어서 그렇다더라. 그래도 여전히 좋아하는 음식이다. 그런데 오늘은 뭐랄까 라면을 먹어야 할 것 같은 오후다. 춥지도 않고 비도 오지 않는데 말이다. 누리 점심으로 우동을 급하게 하나(2/3분량만) 끓여주고 나를 위한 라면을 끓였다. 풀X원 통영굴짬뽕. 좋은 라면이면 더부룩함이 덜할까 싶어 먹어보는 라면인데 똑같다. 그런데 한국라면은 왜 이렇게 다 매워졌나. 김치도 그렇더니 라면조차도. 라면에 포함된 건더기 스프를 빼고 그냥 파 넣으니 좀 덜하긴 한데 여전히 입술이 화끈화끈한다. 누리는 우동을 다 먹어가고 나는 벌써 속이 더부룩해져온다.

[life] 다시 런던

지난 일요일 다시 런던으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한국행에서는 먹고 싶은 것 찾아먹고 푹 쉬겠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짜내고 온 기분이다. 텅빈 냉장고 집에와서 보니 알뜰하게(?) 텅빈 냉장고. 지금 내 상태마냥. 돌아온지 며칠이 지났어도 이 상태에서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냉장고도, 나도. 다시 채워야지. 다 죽어 없어졌을 것이라(?) 생각했던 토마토들이 가지와 잎사귀는 바짝 마른채로 이 녀석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며칠 째 누리의 주요한 간식과 우리의 주요한 식재료가 되어주고 있다. 토마토가 감당할 수 없을만큼 자라 내년엔 한 가지로 한 그루만 심어야지 했는데, 두 가지가 서로 다른 맛과 멋이 있다. 작은 토마토는 수확이 빠르고 또 누리가 잘 먹는다...

[life] 세번째 한국여행

혼자서 누리를 데리고 온 지난 번 한국행 만큼은 아니지만, 이번 한국행의 여정도 역시 긴장됐다. 간단한 샌드위치를 저녁 삼아 공항 내 까페에서 먹었는데 소화가 안될 지경이었다. 소화가 안된다기보다 속이 울렁거렸다. 지난 번엔 혼자서 누리를 감당하는 것이 버거워 수화물을 보내놓고 최대한 지비와 시간을 보내다 보안검색대를 통과하였는데, 통과 시간이 너무 걸려 탑승장까지 유모차를 끌고 열심히 뛰어야 했다. 그래서 이번엔 수화물 보내고, 간단 저녁 먹고 일찍이 보안검색대를 통과하기로 하였다. 아빠와 헤어질 때까지만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던 누리. 헤어진다니 진하게 뽀뽀하고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비행기를 탄다는 사실에 흥분하면서. 지난 경험을 거울 삼아 이번엔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서 무조건 게이트로 직진하..

[life] 공항패션

이럴 줄 알았다. 한 2~3주 간 틈틈히 물건을 주문하고, 사다날랐는데도 가는 날 아침 약간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3군데 마트에 들렀다. 그런 와중에도 누리는 평소처럼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요즘 지비와 누리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그래서 내가 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어제 오늘 좀 따듯해 보이는 부녀. https://youtu.be/zlWob5tZtvM 장을 보러가서 다음 일주일 지비가 먹을 거리를 사왔다. 예전엔 지비도 요리를 했는데 이젠 그 능력이 완전 퇴화한 것인지. 내가 냉장고를 냉동고까지 텅텅 비운 관계로, 그래도 햄 치즈 토마토 샐러드 같은 건 있다, 별다른 조리가 필요없는 것들로 샀다. 누리의 공항패션은 올해도 추리닝/내복. 밤 9시 비행기니 잠자기 편한 옷으로..

[life] 우리에게 어울리는 자리

지난 주말에 다녀온 런던 한국 페스티벌. 런던 관광의 중심지들 중의 한 곳인 내셔널 갤러리 앞 트라팔가 광장에서 열렸다. 우리는 구경도 하고, 한국음식도 사먹고, 아는 분들도 만나면 커피나 한 잔 할까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갔다. 그런데 너무 사람 많고 너무 시끄러웠다. 한 2~3년 전 런던 탬즈 페스티벌 안의 한국 행사들은 참 볼 거리 많고 즐길 거리가 많았다. 아기자기 코지한 분위기였는데 지난 주말 한국 페스티벌은 규모만 큰 보여주기 행사 같았다. 우리는 사람에 질리고 소음에 질려 아는 분을 만나 인사만 나누고 이웃하고 있는 코벤트 가든으로 갔다. 코벤트 가든 역시 일년 내내 관광객도 많고 사람도 많은 곳이지만 커다란 소음의 한 가지 행사가 그곳을 지배하지는 않는다. 수많은 거리의 퍼포머들은 있지만. ..

[life] 텃밭놀이 수확

정말 요즘은 화분에 물주는 게 일이다. 집을 나가기 전, 들어오고서 바로 물을 준다. 드물게 햇볕이라도 든 날은 한 번 더줘야 한다. 토마토가 '잭과 콩나무' 저리가라로 자랐는데 화분이 작아 품을 수 있는 물이 작으니 조금만 볕이 들면 축 처져 버리고 만다. 우리한테는 일인데 누리에겐 놀이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 뭔가 맘에 안들어 퍼질러 앉아 울다가도 "토마토 물 주러가자"하면 눈물을 닦으며 따라 나선다. 토마토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스툴로 세워놓았다. 토마토가 넝쿨식물처럼 쓰러져 자라고 있다. 오른편은 깻잎. 토마토가 많이 달려도 한참 동안 초록색이라 대체 내가 한국 가기 전 맛이라도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며칠 전부터 몇 개씩 붉어지고 있다. 그제 4개 따서 먹고 오늘은 3개 따서 먹었다...

[life] 영국날씨

그런 말이 있다. 영국에서 날씨 걱정하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오늘 오전 비가 온대서 예약한 축구수업을 내일로 미뤘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점심 이후에나 비가 온다는 예보. 오전시간 나가 놀이터에서 한시간 반쯤 놀리고 간단하게 장보고(빵 우유) 서둘러 들어왔다. 그런데 오후 3시가 다되가는 지금까지 비가 안온다. 하루를 이렇게 날리나. 슬프다. 그런데 스크린샷 어떻게 하나 잠시 검색하는 사이 빗방울이 떨어진다. 하늘에서 분무기로 물 뿌리듯.(- - ) 좀더 지켜보다 누리 스쿠터에 태워 세탁소나 다녀와야겠다. + 이렇게 쓰고보니 참 시시콜콜. 전~혀 안바빠 보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