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2년 63

[people] 당당한 주영씨

어제 하루 누리와의 바쁜 일상에 쫓기면서도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죽어서야 내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난 한 사람에 대해서 생각했다. 2005년 장애인 미디어교육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된 주영씨.그 보다 앞서 서울서 장애인 미디어교육에 참가하면서 이후 그 바닥에 뛰어든 주영씨를 서울에서 사전 미팅을 하면서 만났다. 그리고 부산에서도 만났다. 짧은 시간, 그것도 빡빡한 회의하면서 얼굴을 본 그녀가 얼굴을 대한지 두 세 번쯤 지났을 때 너무 친하게 다가왔다. 나라는 사람은 그럴때 되려 한 걸음 물러선다. 겨우 두 세 번 봤을 뿐인데 그녀는 조잘조잘 쉼없이 이야기했고,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주저없이 당당하게 부탁했다. 휠체어 뒤에 매달린 가방에서 약을 꺼내달라, 떨어진 뭔가를 주워달라, 그리고 가방에서 또 ..

[life] 토요산책

요즘은 토요일마다 산책을 나간다. 산책 혼자서도 누리 데리고 나갈 수 있지만, 혼자서 나가면 들어올 때쯤 꼭 혼이 빠진 사람이 된다. 아직 혼자는 무리다. 주로 나가서 하는 일 별 거 없다. 주택가를 10~15분쯤 걸어나가면 있는 하이스트릿에 가서 기저귀를 사오거나, 간식으로 먹을 쿠키를 사오거나, 토요일 저녁으로 먹을 거리를 사오거나. 그래도 그 토요일의 산책이 얼마나 꿀맛인지. 일단 누리가 내 품을 벗어나도 울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에게 평안와 위안을 준다. 누리는 유모차에 넣으면 우는데 일단 집을 나서면 꿈나라로 여행을 떠나신다. 유모차에 넣고 집을 나서기까지가 힘들지, 오죽했으면 잠 못들어서 칭얼거릴 땐 한밤이라도 집을 나가고 싶다.덕분에 우리는 이야기도 하고, 구경도 하고, 또 걷기도 하고. 남의..

[book]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

문은희(2011). . 예담. 이런 류의 책 좋아하지 않는데 출산을 앞두고 이런 책 한 권은 읽어줘야 할 것 같아서 골랐다. 문익환 목사의 동생 문은희 박사의 책이라면 좀 다르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좀 샛길로 나간 이야기지만 이 집안 참 대단한 집안이다 싶다. 이런 집안을 두고 뼈대 있는 집안이라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책 내용은 문은희 박사가 진행하는 상담과 상담모임의 엄마들이 사례로 나온다. 지구상 어느 나라의 아이들보다 무거운 짐을 어깨위에 올리고 살아가는 한국의 아이들, 아프게 하는 것 엄마가 맞다. 하지만 그 엄마들 조차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픈 아이였다는 많은 사례에서 출발한다.부모의 양육 방법을 좇아, 혹은 부모의 양육 방법을 반대하면서 방황하는 엄마들의 양육 방법이 여전히 부모의 그늘에서..

[taste] 꼬리곰탕

월요일 B언니와 S님이 집에 왔다. 아기도 보고 밥 한 끼 해준다며. B언니는 한인타운에 가까운 곳에 사는 관계로 아기에게 줄 선물을 대신해 한국음식을 사오겠다고 했다. 불고기, 돼지갈비 그리고 각종 반찬을 사들고 온 B언니가 사온 또 한 가지. 바로 소꼬리.( ' ');; "산후조리엔 이런 걸 먹어야 한다"며. 그냥 주고만 갔으면 내가 어쩌지를 못해 집 냉동실에서 몇 달을 지내게 됐을 소꼬리. B언니와 S님이 "이거 쉬워!"하면서 물에 담궈두고 훌쩍 떠나심.( i i) 틈날 때 마다 핏물을 갈아주며 하룻밤을 보냈다. 어제 아침 일찍 잠에서 깨서 인터넷을 검색해보고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참 '별 걸 다 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재료: 소꼬리부재료: 파, 후추 인터넷 블로..

[taste] 미역국 끓이기 연습

남들은 쉽다는 미역국과 된장국이 왜 내겐 까르보나라나 라쟈냐보다도 어려운 것인가. 그래서 안만들고 안먹었는데, 이젠 먹어줘야 할 때인 것 같아 오늘 지비와 함께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갔다. 나름 소금 반 스푼, 국간장 한 스푼 계량하는 척 해가면서. 계량하는 척 한 이유는 다음부터 지비 시킬려고. 그런데 저녁 먹으면서 지비가 하는 말은 어떻게 만드는지 기억 못하겠단다. 써줘야겠다.('_' ) 주재료: 불린 미역, 소금, 국간장, 참기름부재료: 새우 지금까지 살면서 국간장이 없었는데, 모든 국맛의 비결은 국간장이라길래 큰 마음 먹고 샀다. 딱 한 번 미역국 끓이기에 도전해보고, 지난 봄인가( ' ')a, 국맛의 비결 전부가 국간장은 아닌가보다 하면서 쓰지 않은 국간장. 왜 내가 끓인 미역국은 맛이 없는가에 ..

[book] 마인드 더 갭

김규원(2012). . 이매진. 런던에 처음 왔을 때 K선생님이 읽어보라며 책 한 권을 빌려주셨다. 박종성의 라는 책이다. 영국을 이해하는데 혹은 궁금증과 호기심을 더 가지는데 기여한 책이다. 그 책의 내용 중에서 많은 부분이 남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마인드 더 갭Mind the gap'이라는 부분이다. 지하철 발판에 쓰여져 있고, 지하철이 들고 날 때 방송에서 나오는 말, 마인드 더 갭. 나는 '마인드 더 갭'이 아니라 '마인 더 갭'이라고 들리더만, 하여간. 그 말이 언제나 조심스러운 그래서 친절하게도 보이는 영국사람들의 문화가 담겨 있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고, 사람과 사람 간의 보이지 않는 거리를 늘 두는 영국사람들 같다던 그 말. 그 책에 담긴 다른 내용들과 달리 일상생활에서 늘 접하는 말이라 ..

[book] 다까페 일기 1·2

모리 유지(2008·2009). . 권남희 옮김. 북스코프. 잘 담은 가족의 기록사진과 성장사진, 그보다 감동적인 다큐멘터리가 없다.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있을꺼다. 한 번쯤 그런 역작(?)을 위해서 결혼도 해야겠고, 애도 낳아야겠구나하고. 그런 이유로 본적은 없는 이 늘 궁금했는데, 자주 놀러가던 블로그님의 블로그에서 이 책 리뷰를 보고 과 비슷한 느낌일 것이라 상상하며 보게 됐다. 보다 짧은 기간이지만, 아들 하늘이 태어나는 즈음부터 3~4년 동안, 아이들 자라는 것이 놀랍다. 놀라운 변화만큼이나 변하지 않고 늘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개 와쿠친과 부부 그리고 테이블. 부부가(그리고 와쿠친도) 함께 한 시간에 비하면 사진에 닮긴 시간은 무척 짧다. 하지만 사진은 그..

[taste] 포토벨로 마켓

런던에서 서쪽런던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노팅힐Notting Hill이라는 곳이 있다. 영화 의 바로 그 노팅힐. 동네가 참 오묘한 곳이다. 노팅힐에 있는 포토벨로Portobello라는 길을 따라 엔틱마켓, 푸드마켓 등 몇 가지가 쭉 이어져 있는데 포토벨로 로드의 입구 격인 노팅힐 게이트Notting Hill Gate와 근처의 홀랜드파크Holland Park는 무척 '영국스런' 동네고, 포토벨로 로드의 출구 격인 레드브로크 그로브Ladbroke Grove는 커리비안 이민자들이 집중적으로 살고 있는 '아프로-아메리칸스런' 동네다. 지비가 운동하는 짐gym이 레드브로크 그로브쪽 포토벨로에 있고, 집에서도 멀지 않아(차로 15분쯤, 버스로도 25분쯤) 할 일 없는 일요일 오후에 종종 나가 차를 마시곤 한다. 한 ..

[keyword] squatting right 무단점거의 권리

어제 아침 먹고 지비와 본 논쟁프로그램에 던져진 이슈가 'is squatting immoral?'였다. squatting은 무단점거쯤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주로 주거지역 무단점거를 이른다. 폴란드에서 온 지비나 한국에서 온 나에게는 무단점거의 이유를 떠나 법치의 범위안에서는 일단 무단점거는 불법으로 이해되며 논쟁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곳에선 그것이 불법이냐 불법이 아니냐가 아니라 도덕적인가 그렇지 않은가로 바꾸어 옳으냐 그렇지 않으냐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내 가 squatting이라는 단어를 알기 전에 한국에서 주택란 문제로 무단점거하는 파리의 홈리스와 활동가들에 관한 뉴스를 본 적 있다. 그때만해도 프랑스가 꽤나 관용적인 나라로 나에게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니까 가능한 이야기라..

[book] 지금은 없는 이야기

최규석(2011). . 사계절. 잠은 잘수록 늘어난다더니 내가 딱 그 격이다. 잠은 계속 늘고, 반대로 책은 읽지 않기 시작하니까 더 잘 안읽혀진다. 읽던 책이 너무 생소하고(일본고대사..켁..), 너무 무거웠다는 변명을 하면서 무조건 작고 가벼운 책으로 골라들었다. 최규석의 우화, . '세상은 이야기가 지배'한다는 최규석의 머릿말. '그런가?'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장르는 우화인데, 우화라면 왠지 동물나오고 아름답지는 않아도 뭔가 마음에 남는 깨달음과 함께 조금은 훈훈한 마무리여야 할 것 같은데, 글쎄 이 우화는 읽고 나면 '씁쓸'하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현실이 '슬프기'까지 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것. '동물'이 아닌 '짐승'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