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떠나다. 91

[Korea2020] 자가격리 14일

한국에 왔다는, 자가격리를 시작한다는 글 하나 던져 놓고 조용했던 14일. 우리는 각자가 바쁜 시간을 보냈다. 누리는 지난 주 금요일에서야 2학년 종강을 했기 때문에 매일매일 학교에서 나눠준 워크북과 구글 클라스룸으로 온라인 홈스쿨링을 지속했고, 지비는 재택근무를 했고, 나도 7월 15일이 마감이던 교육의 과제를 했다. 나는 직업 교육 같은 걸 듣고 있었다. Covid-19 때문에 3월부터 수업은 중단됐지만, 교육을 마무리 하기 위해서 과제를 제출해야 했다. 결국 (내부)마감을 넘겨 내기는 했지만 18일에 그 과제도 마무리했다(자격증을 주는 기관의 마무리는 7월 말). 수정을 요구받을 수도 있긴하지만. 그렇게 아침밥 먹고나면 각자의 자리에 앉아 각자의 일을 하며 보낸 14일간의 자가격리는 정말 눈깜짝할 ..

[Korea2020] 자가격리 1&2일차

지난 토요일 저녁 런던을 떠나 월요일 새벽 목적지인 부산에 도착했다. 아주 고단한 여정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그 이상이었다. 비행기를 탄 시간보다 공항에서 기다리고, 다시 공항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서류 작성하고, 기다리고, 서류 작성하고, 기다리고, 서류 작성하기를 무한 반복한 시간이 조금 더 길었다. 절차가 조금 아쉬운 면도 없지는 않지만 그런 노력이 모여 지금 한국의 COVID-19 대응 결과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기에 고마운 마음이 더 크다. 적어도 내 가족과 친구들은 우리보다는 안전한 환경에서 지내고 있으니까. 우리 여정이 끝나고 목적했던 언니네에서 자가격리가 시작되면서, 우리와 같은 여정을 앞둔 지인들에게서 질문을 꽤 받았다. 우리도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 생각하지 못했던 사건+실수가 더해져 여..

[Korea day4] 수리수리 마하수리

지난 한국방문에서부터 누리는 영화도 보기 시작했다. 이번 방문은 특히 여름이라 영화극장에 자주 가려고 계획했는데 아이들 영화가 많이 없는 것이다. 한국의 아이들은 이 더운 여름을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할 거리를 찾아 검색의 검색을 거듭하던 중 코코몽키즈랜드가 있는 건물에 소극장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코코몽키즈랜드에 간 다음 날 다시 같은 건물로 출동. 초록마술사의 재미있는 마술 여행이라는 공연을 봤다. 마침 우리처럼 할머니 집을 방문한 런던지인과 함께. 내 카드가 비밀번호 오류로 결제가 안되서 출장/답사 중인 언니에게 SOS - 한국오면 카드 갱신, 인증서 갱신이 주요 할 일이다. 시치적응도 덜되서 걱정되고, 같이 간 런던아이는 누리보다 3~4살 많지만 한국어를 못하는 아이라 걱정했는데 정~..

[Korea day3] 아직도 코코몽

누리가 한국 할머니네를 떠올리며 꼭 하고 싶어하는 것 셋 중 하나 - 코코몽키즈랜드. 나머지 둘은 경륜공원에서 자전거 타기와 빠리빵집에서 캐릭터 케이크를 사먹는 일이다. 시차도, 더위도 적응되지 않았지만 누리와 둘이 집을 나서 코코몽키즈랜드에 갔다. 누리의 코코몽 사랑은 3년차. https://youtu.be/GfdW9gQZij8 평일 낮이라 한산했는데 그 때문인지 누리는 조금 심심해 보였다. 많은 시설들이 이제는 누리에게 어울리지 않아보였다. 몇 안되는 아이들은 모두 누리보다 어렸다. 심지어 따라온 부모들 중 내가 가장 나이가 많게 느껴진 느낌적 느낌. 누리도 나도 이제 이 코코몽을 떠나보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한국방문에서 누리가 가장 즐겨보는 프로그램은 소피아와 미니특공대. ..

[Korea day2] 여름이니까 부산이니까 밀면

집에 온 다음날 부모님 집 앞 이름 있는 밀면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사실 부모님 집은 부산도 아니고(부산의 베드타운), 먹은 것도 정확히는 쑥밀면. 여름엔 별미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 더운 날씨에 식사 준비도 건너 뛸겸 점심 먹으러 가자고 제안드렸다. 누리도 면을 좋아하니. 집에서 나가 100여 미터 걸어가는 사이 열기에 지쳐버렸다. 헉헉 하고 소리가 나올 정도. 내가 살던 10년 전도 이렇게 더웠던지 잘 기억이 안난다. 10년 만에 맞아보는 한국의 여름은 나에게는 도대체 견디기 어려운 수준. 거기다 지금은 37도짜리 히터를 데리고 다니는터라 더더 그렇다. 누리랑 함께 먹을 요량으로 면 위의 양념을 넣지 말라고 요청했다. 그런데도 육수 자체에 생강이나 겨자가 들었던지 누리는 매워서 먹지를 못했..

[Porto day2] 관광모드3

포르토를 떠올리면 빠질 수 없는 명소 다리 - Dom Luís I Bridge. 한국어로 찾아보니 돔 루이스 1세 다리. 다리니까 당연히 강변에 있다. 강변 자체가 볼 거리, 먹 거리가 많은 곳이었는데 우리는 막 점심을 먹고 온터라 강변을 따라 다리로 직행했다. 이 강변 일정을 점심 시간에 맞춰올 수 있다면 거기서 점심 또는 차/커피를 마셔도 좋을 것 같다. 다만 해바라기 하는 사람들로 넘쳐나서 자리잡기는 쉽지 않아보였다. 강변의 이런 좁다란(?) 건물들이 볼 거리인데, 건물이 이렇게 좁다랗게 생긴 이유는 다른 여느 도시들처럼 세금 관련이 아닐까 싶다. 예전엔 건물의 도로면 길이에 따라 세금을 지웠다고 한다. 그래서 암스테르담 같은 도시들도 좁다란 건물들이 많이 생겼다(고 어디서 읽은듯). 다정한 부녀 ..

[Porto day2] 관광모드2

현지 음식을 사먹자고 호기롭게 여행을 떠났던 우리는 짜파게티를 먹고 라면, 햇반을 살 수 없을까 생각하게 됐다. 짐싸면서 빼놓고 온 우동, 햇반을 그리워하면서. 쌀쌀한 날씨가 우리를 더 그렇게 만들었다. 그래서 포르토에 한국식품점은 없는지, 한국식품점은 아니라도 우동, 햇반을 살 수 있는 아시안식품점은 없는지를 검색했다. 그러다 본 Casa Oriental - 아시안식품점이 아니라 포르토의 오래된 식료품점이었는데 지금은 이름과 위치만 그대로 유지하면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포르토의 특산품인 사르딘 생선통조림을 파는 가게로 바뀌었다. 이 Casa Oriental을 종탑 전망대가 있는 교회 Clérigos Church 앞에서 발견했다. 연도가 표시된 디자인이라 자기가 태어난 생선통조림을 골라서 기념품으로 살 수..

[Porto day2] 관광모드1

여행지 숙소에서 커피를 마실 일이 있으면 인스턴트를 먹곤 했는데, 1회용 드립백에 내려 먹는 커피를 맛보고나니 다시 인스턴트 커피로 돌아갈 수가 없다. 한국에서도 손쉽게 구할 수 있었고, 타이페이 여행에서도 손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여기엔 아직 이런 1회용 드립백 커피가 구하기 어렵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드립백을 구입했다. 커피는 현지에서 사도 되고, 집에서도 가져갈 수 있으니까. 덕분에 하루를 따듯하고 진한 커피로 시작했다. 나이가 드니 여행 짐에서 옷짐은 줄어드는데 이런 짐이 늘어난다. 커피, 약, 충전기 등등. 우리가 묵었던 에어비엔비 숙소가 있던 건물 뒷편 뒷골목. 오른편에 보이는 오래된 주택을 모던하게 개조해서 에어비엔비로 사용하고 있었다. 2월이라도 포르토니까 특유의 맑고 따듯한 날을 기대했는..

[Porto day1] 포르토 맛보기

보통 여행을 가면 뭘 봐야할지 먹어야할지 정하는 건 내 몫이다. 지비에게 공부를 좀 해보라면 엄청나게 검색을 한다. 검색량은 엄청난데 꼭 집어내지를 못한다. 일찍이 도서관에서 포르투칼 가이드북을 빌린 나는 대략 훝어보고 꼭 볼 거리를 압축했다. 다리, 기차역, 포르토 와이너리, 그리고 에그타르트. 자세한 공부는 떠나기 전에 하기로 마음만 먹었는데 떠나기 며칠 전 후배의 동생이 포르토에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후배네가 우리집에서 한 일주일 정도 머물 때 하루 묵어갔던 후배의 동생. 후배의 동생 J는 포르토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페이스북에 홍보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주고 받고, 연락처 주고 받고, 바로 며칠 뒤에 만나서 커피 마시기로 전격 결정. 하나도 준비안된 여행이 다 준비된듯한 그런 ..

[road] 길 위에서 만난 베트남

(2007년 6월 25일)하노이에서 호치민시티까지 그 먼길을 타고 다닌 미니버스다. 24인승 버스 미니버스이지만 그야말로 미니버스이고, 짐들이 많아 남는 공간이 없었다. 아마도 여행 중 다들 잠든 시간에 찍은 사진인 것 같다. 달리는 미니버스 안에서 찍은 사진들. 잠시 쉬어가는 휴게소에서 찍은 사진. 한밤 중에 어느 시골도로 휴게소, 그냥 가게라고 해야 적당한 규모,에 들렀더니 주인이 띄엄띄엄 한국말을 한다. 자세한 내막을 들어보니 한국의 그것도 부산의 신평공단에서 일했던 노동자라고 한다. 한국에서 돈을 벌어 돌아와 가게를 차리게 됐다고 반가워 한다. 우리는 그가 반갑고 고마웠다. 분명 고생 많았을 한국에서의 시간을 그렇게 기억해줘서. 그가 끓여주는 라면으로 야식을 즐긴 후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하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