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9년 22

[life] 푸드 로망 - 생크림 케이크와 치킨 로스트

먹는 걸 두고 거창하게 로망식이나 싶겠지만, 자라면서 먹던 음식을 맘껏 먹지 못하는 환경에 살고 있으니 그렇다. 늘 먹고 싶은 음식이 몇 가지 있는데 내게는 한국에서 먹던 빵류와 케이크류가 그 중 한 가지다. 그래서 한국에 가면 빠리 빵집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다.머핀도 만들어보고 쿠키도 만들어보면서 꼭 만들어보고 싶은 건 케이크와 빵이다. 빵은 반죽기, 제빵기가 없으니 엄두를 내기 어렵고, 케이크 정도는 핸드 블랜더로 어떻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연말을 앞두고 핸드 블랜더를 구입했다. 아무래도 연말엔 디저트류를 구울 일이 많다. 핸드 블랜더 구입후 야심차게 도전했던 마카롱은 더 이상 도전하지 않는 것으로 정했고, 이번엔 생크림 케이크에 도전했다.결론부터 말하면 작은 빵틀이 없어 기존의 빵틀을 이..

[life] 펜심 리필

듣고 있는 교육 과정에서 쓰는 펜이 있다. 젤리펜이라고 하나? 펠트팁은 아니고 수성펜 느낌인데 쓰고나서 지울 수 있다. 그래서 누리가 좋아하는 펜이기도 하다. 주로 교육과정에서 사인을 할 때, 과제물에 페이지 번호를 매길 때, 수기로 뭘 써서 제출해야할 때 쓴다. 펜 하나에 3파운드쯤 한다. 교육과정에서 2개를 받았고, 내가 1개를 샀다. 일년 동안 2개의 펜을 다썼다. 펜을 다 써버릴까 불안한 마음에 예비로 미리 사두려니 비싸서 4파운드에 3개의 리필 펜심을 샀다. 다른 물건을 살 때 포함시켜 사서 배송비를 따로 주지는 않았다. 집에 지비가 이런저런 행사장에서 받아온 홍보용 펜들을 모으면 신발 상자 하나는 쉽게 채울 수 있을 것 같은데 돈을 주고 펜을 산다니-. 학교 때도 그런 펜이 있었다. 왠지 그 ..

[life] 나이 feat. 배+생강+계피+통후추

특별한 계기 없이, 그저 피로 누적으로 얻은 감기가 오래가고 있다. 한 2주 전 며칠 목이 깔깔하더니 열이나 몸살도 없이 목소리가 가버렸다. 소리도 안나고 쉰소리만 나고 있다. 약, 사탕도 소용이 없고 다급한 마음에 내 손으로 배, 생강, 계피, 통후추를 넣고 끓여 마셔봤다. 별 효과는 없었지만, 목이 답답할 때마다 커피, 차, 유자차 골고루 끓여 마시기도 번거롭고, 남겨둔 생강 반토막과 배 2개가 있어 한 번 더 끓여 마시기로 했다. 생강 껍질을 까다가 나도 모르게 '아 향이 좋네'하고 생각하다 깜짝 놀랐다. 마늘, 생강 몸에 좋다는 건 다 싫어했던 사람인데-, 나이가 든건가 싶어서. 음식을 하면서 마늘, 양파, 파를 많이는 쓰지 않아도 꼭 쓴다. 이제 파까지는 가끔 즐기게 됐지만 아직도 마늘, 양파는..

[life] 영화 Sorry we missed you.

벌써 '보통'으로 산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알고는 있었다. 보통은 커녕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해야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 대열에 내가 끼여 있지 않다는 사실에 고마워하고 싶지는 않다. 나 또한 그 대열 언저리에 있는데 자각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누구나 그 대열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닥치지 않고는 알기 어렵다. 그리고 열심히 해도 그 대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우리 사회가 그렇게 허술하다는 걸 알지 못한다. 그 사실을 83세의 감독은 매정하리만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Sorry we missed you 2008년 경제 위기 때 일자리를 잃은 주인공은 모기지로 얻은 집도 잃게 된다. 대출을 갚을 길이 없으니. 이런..

[life] 수납장 프로젝트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는 건 아닌데, 심리적으로 쫓기는 가을을 보내고 있다. 그 와중에 누리는 가을학기 중간방학을 맞았고, 내 일상은 '일시정지'. 그래서 몸으로 할 수 있는 걸 이 기간에 하기로 했다. 미루고 미뤘던 수납장 마련. 한 2주 정도 틈틈이 IKEA 홈페이지를 드나들며 연구했다. 마음은 이쁘고 튼튼한 걸로 하고 싶지만 통장잔고는 정해져 있으니 취향이고뭐고 거기에 맞춰서 진행했다. 지비가 출장가서 돌아오는 날 하루 전에 집으로 배송. 돌아오는 날 바로 제작(?)시키려니 배송이 늦어질 수 있겠다 싶어 하루 전에 배송예약했다. 마침 비가 온 날이라 집에서 누리랑 각종 크라프트 & 베이킹을 하며 기다렸다. 다행히 빠진 물건 없이 도착. 그런데 막상 물량을 보니 전동 드라이버와 드릴이 필요할 것 같아 ..

[life] 다시 집으로

한국으로 간다는 글 하나 던져 놓고, 이번에는 가서 부지런히 기록을 남겨야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가기 전에도, 가서도 정신 없이 하루하루를 지내다보니 보름이 조금 넘는 일정을 꽉 채우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나의 집'이라고 부르는 런던으로. 사실 나도 여행을 마치고 비행기가 런던 상공에 들어서면 '이제 집이구나'라는 생각에 긴장이 풀린다. 하지만 나에게 집이란 한국이라는 생각이 늘 자리잡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변하지 않을 생각과 마음인데, 시간이 지나면 바뀔지도 모르겠다. 집에 돌아오니 다급하게 한국으로 떠나면서 미뤄둔 일들이 고스란히 기다리고 있다. 다행히 어제부터 누리가 학교에 가서 하루하루 한 가지씩 헤쳐내고는 있지만, 이곳에서 하루하루가 더해지니 또 할 일들이 생겨난다. 그래서 오늘 ..

[life] 언니와 런던 여행 - 칼 마르크스 묘지

언니가 런던에 도착하고 이틀은 누리가 여름 방학이 시작되기 전이라 학교에 가야했다. 아침에 함께 누리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누리가 없는 시간을 이용해 언니와 인근 공원에 산책을 가기도 하고, 이제까지 런던을 5번 방문한 언니도 가보지 않은 곳 - 칼 마르크스의 묘지도 함께 갔다. 하교 시간에 맞추어 집으로 돌아와 누리를 데리고 학교 앞 공원에서 다시 한 시간 반 정도 시간을 보냈다. 물론 누리만 다시 발바닥에 땀나도록 놀이터를 뛰어다니고 우리는 그늘에서 준비해간 커피나 물을 마셨다. 학교에 아이를 등교 시키고 하교 시킬 때 부모나 보호자가 가야하는 모습, 학년 말이라고 아이들이 카드를 써온 모습을 언니는 색다르게 봤다. 보통 카드와 꽃, 초콜릿, 프로세코 정도를 선물로 들고 온다. 한국에서는 김영란법 이후..

[life] 오랜만입니다.

며칠 전 언니가 런던에 올 때 부탁한 책 한권. 언니가 올 즈음이 고(故) 노회찬 의원의 기일이었다. 아는 사람도 아니고, 강연자와 청중으로 두 세 번 만난 인연이 전부인 노회찬 의원의 죽음이 이렇게 오래도록 무겁게 느껴질지 몰랐다. 사실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작년 한국으로 휴가를 가기 전날 노회찬 의원의 죽음을 접하고 한 동안 할 말을 잃었다. 그 후로도 일년 동안, 지금까지 내 언어에 담지 못한 그의 죽음.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믿고 의지했던 것과 달리 나는 노회찬 의원을, 그의 화법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부드러운 화법이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지만, 나는 사람들이 그 부드러움에만 환호할뿐 그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본질에는 환호하지 않는다고 투정했다. 하지만 그가 그 어느 누구보다 본질을 ..

[life] 이번엔 Father's day

작년 여름 영국의 호수지방을 여행하기 위해 가입한 내셔널 트러스트 회원 기간이 끝나간다. 끝나기 전에 어디 더 가볼 곳이 없을까 찾아보던 중 집에서 멀지 않은 햄 하우스 Ham house에서 Father's day 기념 이벤트인 Pint race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름 그대로 맥주 500ml 보다 약간 더큰 파인트pint를 들고 달리는 이벤트. 햄 하우스는 벌써 다녀왔지만, 일요일 점심을 먹으러 간다고 생각하고 집을 나섰다. 내서널 트러스트는 영국의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관리하는 일종의 자선단체/비영리기구다. 문화유산이나 자연유산을 소유자에게서 기부 받기도 하고, 자산으로 보존 가치가 있는 유산을 구입/보존/관리하기도 한다. 보통 이런 곳을 한 번 방문할 때 입장료는 8~16파운드 정도인데, 일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