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1년 37

[life] 여행가가 직업이려면

얼마전에 지인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갓 스물이 넘은 청년을 만났는데, 한국인, 자신을 포토그래퍼라고 소개했다는거다. 그런데 요렇게 조렇게 나이를 따져봐도 사진을 공부하기엔 이른 나이였던 것. 그래서 물었더니 고등학교 졸업하고,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영국에 왔고, 그런데도 자신을 포토그래퍼라고 소개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인은 그 당당함이 부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을 그 당당함 속에 넣을 수 있을지 부럽기만한 나이든 여자들의 대화였다고나 할까. 지난 주 여행을 가면서 볼런티어로 하는 라디오를 쉬어야겠다고 하니 함께 하는 B언니가 '니가 여행이 직업이냐'는 말에 착안하여 나도 직업을 여행가라고 할까라고 잠시 생각했다. 그런데 그러기엔 나는 input만 있고 out..

[plant] 빨간 토마토

일주일이 넘도록 파랗기만 하던 토마토가 여행가기 바로 전날 아침부터 노래지기 시작하더니 오후가 되어서는 빨간색은 아니어도 주황색이 되었다. 더 붉어지는 것은 보지 못하고 나흘간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가서도 플랏메이트가 부탁한 것처럼 물을 주었을까, 말라 죽지는 않았을까 걱정을 했는데 집에 오자말자 들여다보니 토마토가 완전히 붉어졌다. 귀여운 것들. 내가 너희들을 어떻게 먹을 수가 있겠냐. 그래도 언젠간 먹어버리겠지. 짐승.(>.< )

[plant] 토마토

한국에 다녀오고서 토마토를 심었다. 키만 무럭무럭 자라 토마토가 아니라 재크의 콩나무가 아닐까 의심했던 토마토. 8월 초에 집에 손님으로 왔던 은주씨 말로는 늦게 심어서 토마토가 안열리는 거라고 했다. 그래도 물만주면 자라는 토마토를 뽑아버리긴 그래서 그냥 될때까지 길러보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토마토가 생겼다. 손톱만하던 토마토들이 지금은 대추보다 커졌다. 갯수도 6개. 색깔은 언제나 붉어질까? 아까워서 먹을 수나 있을까 모르겠다.

[book] 낯익은 세상

황석영(2011). . 문학동네. 과 이후 그다지 만족스러운 작품이 없었음에도 외면하기 힘든 작가 황석영. 다 읽고서 부족한 입맛을 다시더라도 꼭 사게 되는 그의 책들. 6월에 책을 사면서 한참을 망설였다. 그리고 구입을 미루었다 8월에 책을 사면서 다시 한참을 망설이다 구입했다. 그랬다고 생각했다. 6월에 어찌나 망설였는지 결국은 구입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6월에도 8월에도 책을 샀다. 6월에 구입한 책이 얼마전에야 도착하고서야 내가 같은 책을 두 권을 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진짜 망설이긴 많이 상설였나보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두 권을 필요 없으니 이번 바르셀로나행에 들고가서 읽고 상인이에게 주고 와야겠다고 마음먹고 여행길에 들고 나섰다. 해변에 누워 읽어야겠다 생각하면서. 생각보다 공항으로 ..

[book] 선율이 번지는 곳 폴란드

백승선·변혜정 글·사진(2011). . 가치창조. 온라인 서점에 들를때마다 '폴란드'와 '영국'을 늘 검색해본다. 그러다 발견한 책. 미리보기로 스륵 보고 '딱 한 시간 감'이라 망설이다가 샀다. 다른 책들은 배타고 두달 걸려 이 섬나라까지 왔는데, 이 책은 언니에게 비행기로 보내달라고 했다. 첫 폴란드 여행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폴란드로 떠나기 이틀 전쯤 도착해서 겨우 여행길에 들고 갈 수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비행기를 타는 바람에 비행기에서 반만 읽고, 나머지는 크라코Krakow에서 바르샤바Warsaw로 가는 기차 안에서 읽었다. 크라코로 가기 전엔 크라코 편 겨우 읽고, 바르샤바 가기전엔 그거 겨우 읽고. 그야말로 벼락치기였다. 폴란드는 슈체친Szczecin만 세번 정도를 갔다. 겨우 세번..

[book] 내가 만일 대통령이라면!

강수돌(2010). . 생각의 나무. 장하준 교수의 책을 읽고서도 시원하지 않던 그 마음. 그들이 조목조목 짚어낸 이야기 뒤, 그리고 마음 한구석엔 '그래서 어쩔껀데'라는 물음이 남아 있었다. 구체적인 질문이 남아 있었다기 보다는 샌님같이 떠들기만 하는 그들의 책에 염증이 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다 오랫동안 장바구니 안에 있던 이 책을 구입했다. 오랫동안 장바구니에만 담았던 이유는 책이 너무 유치할 것 같아서. 제목이 너무 쉽고 상투적이지 않은가. 책은 유치하지 않았다. 간단하고 선명했다. 마을 이장으로 활동하던 그가, 그는 경영학 교수이기도 하다, 분에 못이겨 누군가의 멱살을 잡을 땐 통쾌하기까지 했다. 물론 그 누군가는 개인적으로 그럴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처지였..

[project] 생각다듬기 - untitled

#01. 런던에 오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홀비시티 Holby city라는 병원 드라마를 열심히 봤다. 뉴스는 도저히 알아 들을 수가 없었지만 그나마 드라마는 그림만 봐도 이해가 되니까 즐겨 봤다. 주로 TV를 틀어놓고 얼굴은 노트북이 박고 있었지만. 그러던 어느날도 홀비시티를 보고 있었다. 보고 있었다기 보다는 듣고 있었는데, 켜놓은 TV에서 한국말이 흘러나왔다. 놀라서 고개돌려 자세히 보니 한국말이 맞았다. 한국말이긴 했는데 정확하게는 북한말이었다. 북한 난민인 부부가 샴 쌍둥이를 출산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였다. 난민 지위인지라 보통의 케이스와는 약간 달란던 것이다. 그래도 그들 부부는 영국의 의료혜택을 받았다는 그런 에피소드. 그걸 보고 당시 룸메이트였던 아이에게 이야길 했더니 런던에 북한 사람이 많..

[project] 생각다듬기 - family tree

블로그 꼭지에 '탐구생활'이라는 것이 있다. 한번도 채운 일이 없으니 없앨까하다가 '초심'과 '야심'을 잃지 말자는 의도로 계속 두었으나 비어만 있는 그 란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탐구생활'중에서도 'family tree'라는 건 가계도가 흥미로운 사람들을 담아보고 싶었다. 이름은 없었지만, 그런 영감을 처음 준 사람은 어학연수시설 어학원의 강사, 거스. 그는 아르헨티나인이었다. 아버지는 이탈리아계였고, 할머니가 영국인이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지만 영국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다. 그의 부인 역시 아르헨티나인이었지만 이란계였다. 부인에 관해선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하여간 꼭 영어만을 잘해서가 아니라 그는 언어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이야기를 해도 재미있는 사람이어서 친구가 ..

[life] 런던 폭동의 해법

토튼햄 Tottenham 에서 시작된 폭동은 '토튼햄 폭동', '런던 폭동' 그리고 다시 '영국 폭동'으로 이름을 바꾸어가면서 진화했다. 들불처럼 번지던 폭동은 지난 주 중반을 고비로 사그러들었다. 런던시장 보리스와 영국총리 캐머론이 휴가에서 돌아왔고 미디어는 폭동과 약탈에 참여한 사람들이 하루에 몇 명씩 검거되는가를 수치로 강조하면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 폭동이 사그러들고 이유와 재발방지를 놓고 각자가 해법을 내놓았다. 캐머론은 올초 주장하던 'big society'에서 big을 빼고 'society'를 들고 나왔다. 결국은 교육문제, 가족과 사회의 역할을 운운하고 나선 것이다. 올초 캐머론의 빅 소사이어티는 공공 부분에 예산 삭감을 예고하면서, 그 빈자리를 자원봉사로 매꾸자 그런 아이디어였다. 참 ..

[life] 가난한 것은 위험한 것인가.

노팅힐과 홀랜드파크는 전통적인 부자 동네지만, 바로 뒷동네인 Ladbroke Grove는 저소득층지역이다. 일전에 그 동네에서 나의 시선을 잡아끄는 건물이 있었다. 미래소년 코난에 나올법한 건물같다고나. 도색도 없는 커다란 아파트엔 발코니마다 빨래가 어지럽게 널려 있는 건물이다. 한번쯤 사진에 담고 싶어 가려고 하니 지비가 관두란다. 위험한 동네라고. 내가 혼자서 카메라들고 얼쩡거리면 보나마다 할일 없이 집근처를 배회하던 사람들이 니 카메라에 관심을 가질거라고. ‘그런다고 무슨 일이 생길까’하고 처음에는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말에 부정할 수가 없다. 런던에 살면서 알게된 참 쓰라린 런던의 모습 중 하나는 가난한 동네는 위험하다는 동네라는 점이다. 사실 런던만 그런것도 아니지만 처음엔 참 받아들이기 힘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