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Newbie Story

[+19weeks] 유모차 보다 휠체어 먼저

토닥s 2013. 1. 28. 23:38

런던에서 운행되는 모든 버스는 저상버스다.  시내에 관광용으로 운행되는 일부 9번과 15번 버스를 제외하고.  이 버스들은 구형버스다.   그래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물론 유모차를 끄는 부모들도 버스를 이용한 이동에 어려움이 없다. 

그런 이유로 한국에선 보기 쉽지 않은 풍경이지만, 이곳에선 혼자 이동 중인 휠체어를 탄 장애인, 혼자서 유모차를 끌고 가는 엄마들을 어렵지 않게 본다.  그래도 저상버스의 시작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위한 배려였을 것 같다.  그 덕을 나를 포함한 유모차를 이용하는 가족들도 누리고 있으니 고마워해야 할 일.


그런데 유모차와 함께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다보니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버스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지 얼마 전부터 버스에 이런 광고가 등장했다.  휠체어 이용자들에게 공간을 내주라는 유모차 이용자를 향한 메시지.



얼마 전에 집근처 하이스트릿에서 친구를 만나 차 한잔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집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 짐이 많을 때, 비가 올 때 용이하다.  마침 주말이어서 배차 간격이 평소보다 긴 20분이었다.  우리가 누리를 실은 유모차와 함께 먼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버스가 올 때쯤 휠체어를 탄 한 명의 중증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이 왔다.  우리가 탈 버스를 함께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버스가 오자 그 활동보조인이 우리에게 와서 양해를 구했다.  "너희들이 먼저와서 기다린건 아는데 친구의 상태가 안좋으니 버스를 먼저 타도 되겠니?"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휠체어와 유모차가 같이 들어가지 않겠냐고 했더니, 규정이 얼마 전에 바뀌어서 안전상의 문제로 휠체어 한 때 또는 유모차 두 대가 탈 수 있다고 했다.  버스 운전사에게 물어보자며 함께 기다렸다.  버스가 와서 물었더니 휠체어 한 대만 탈 수 있다고 했다.  규정상으로 휠체어에게 우선권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와서 기다렸다는 건 별 의미가 없었다.  그 활동보조인에게 우린 괜찮다고 했더니, 고맙다고 몇 번이고 인사하면서 버스를 타고 갔다.  그때 우린 둘이었고, 친구도 함께 버스를 기다려주고 있었기 때문에 또 다른 20분을 기다린다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만약 비오는 날 나 혼자 유모차를 가지고 있었다면 내 마음의 전개가 또 달라졌을지도.  하지만 결과는 같았을꺼다.  휠체어에 우선권이 있으니까.  그 덕을 평소에 우리가 나눠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평소에 고마워하면서 드물게만 불편하면 된다.


그나저나 한국갈 때, 한국 가서가 걱정이다.  유모차가 있으면 편한데, 비행기에 실어가는 것도 문제가 없는데 한국이 그리 유모차 프렌들리가 아니라서 말이다.  지하철이야 리프트들이 있으니 걱정이 없는데, 부모님 사시는 곳이 시외라 버스 탈때가 걱정이다.  리프트가 없어도 둘이니까 들면 되는데, 버스는 껑충 뛰어 올라타야하니 말이다.

그래도 들고 갈 생각이다.  유모차가 필요한 이유는 공항에서 대기시간, 이동 때문이다.  들고 가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마음을 먹고나니 유모차를 들고 지하철을 타는 우리를 어떻게 사람들이 바라볼지.  한국의 물리적, 정서적 '턱'을 과연 우리가 넘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