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2년

[book] 화차

토닥s 2012. 12. 29. 02:07


미야베 미유키(2012). 〈화차〉. 이영미 옮김.  문학동네.


페이스북에 한 선배가 올린 영화에 대한 간략 감상편을 보고 소설부터, 혹은 소설을/만 봐야지 했다.  두께 때문에 쉽게 잡히지 않던 책이었는데 좀 머리 식히면서 볼 수 있는 책을 볼려고 골라들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한국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참 속 시끄러운 시기였는데, 그 시끄러운 속을 눌러가며 읽었다.  일종의 현실도피였던 셈인데, 책을 덮고나니 도피했던 그 책이 되려 절절하게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소설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권총 오발 사고로 휴직 중인 형사 혼마에게 죽은 부인의 친척 가즈야가 찾아온다.  부인의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던 가즈야는 신용불량 과거가 밝혀져 사라져버린 약혼녀 세키네 쇼코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한다.  세키네 쇼코의 흔적을 따라가던 혼마는 가즈야의 약혼녀는 세키네 쇼코의 명의를 도용한 신조 쿄코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혼마는 신조 쿄코가 어떻게 세키네 쇼코의 명의를 도용했는지, 그리고 세키네 쇼코는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간다.


세키네 쇼코의 명의를 도용한 신조 쿄코는 개인파산의 피해자다.  그 굴레를 벗고자 다른 사람의 명의를 도용했다.  도용한 세키네 쇼코가 개인파산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책 내용은 여기까지.


책장을 넘기면서 감탄사를 흘렸다.  어떻게 오늘의 한국과 이렇게 똑같을 수 있는지.  일본의 경우는 1980년대 초반 부동산 버블이 일면서 너도나도 대출을 얻어 주택마련에 나섰다.  당연히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면서 무리하게 대출을 얻은 사람들은 대출금 때문에 개인파산했다.  문제는  버블이 붕괴되었기 때문에 부동산을 처분한다고 해도 이미 바닥으로 떨어진 부동산 가격은 대출금을 갚기엔 역부족이라는 점.  그것이 1차 신용불량사태였다면 2차는 신용카드의 남발이 불러 일으켰다.  1980년대 후반 버블 붕괴 후 내수시장 활성화 운운하면서 신용카드가 남발됐고, 사람들은 갚을 수 있는 이상의 소비를 하면서 문제가 붉어졌다.  1, 2차 모두 개인파산자와 이를 견디지 못한 사회적 죽음이 늘어났음은 물론이다.  참 끔찍한 모습이다.  사실 나는 이 책이 묘사하고 있는 그런 흐름을 자세하게 알게 못했는데, 그걸 알게 된셈.  그런데 그 대목에서 나는 큰 궁금증이 생겼다. 

나 같은 일반 시민이야 이웃나라의 부동산 버블이 언제 무너졌는지, 그리고 개인부채가 어떻게 사회적 문제가 되었는지 잘 모르지만, 경제학자나 관료들은 알았을텐데 어떻게 한국 사회가 일본의 전처를 그대로 밟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는 1997년 IMF이후 내수시장 활성화 운운하면서 신용카드가 남발되었다.  한국도 1980년대 부동산 버블이 일기는 했지만 전국민의 집을 통한 투기 현상은 1990년대 후반 또는 2000년대가 들면서 시작된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카드를 통한 개인파산, 부동산 버블 붕괴가 동시에 오기 직전이다.  튼튼하던 일본경제도 이어진 1,2차 신용불량사태를 맞고 지금까지 만성 경기불황인데, 한국사회는 어떻게 될까 불안불안이다.

책이 단지 책일때는 읽고나면 사회에 대한 관찰력과 촘촘한 구조가 독자로 하여금 포만감이 들게 만들지만, 책이 단지 책이 아니라 현실일때는 슬프다 못해 무섭다.  이 책은 추리소설이니까 우리에게 닥친 문제들의 해법을 제시해주지 않는다.  그건 governance, 정부(?),의 몫이다.  해법을 제시해줄 정부를 선택하는 건 우리들의 몫이고.  억울하겠지만,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결과까지도 안고 가야하는 것이 선거다.  그리고 우리는 막 그 선거를 치뤘다.  이젠 그 결과를 좋아도, 싫어도 우리가 안고가야 한다. 


그래도 여전히 억울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