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Newbie Story

[40weeks] 반갑다, 누리야!

토닥s 2012. 9. 24. 20:33

정신없이 일주일이 흘러갔다.  누군가는 조용한 블로그를 보며 '애 낳으러 갔나?'했을지도 모르겠다.  네, 맞습니다.  아기 낳으러 다녀왔습니다! (^ ^ )


예정일은 9월 16일 일요일이었는데 역시 예상했던 대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분만상황(?)이 일어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예약해둔 40주 진료를 갔다.  보통때와 다름없이 소변검사와 혈압 그리고 아기 심장소리를 체크했다.  그 뒤 조산사가 앞으로 진료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설명해주었다.  첫 출산의 경우 늦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41주 진료를 예약하고, 그 날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으면 그 땐 일반적인 검사에 더해 이른바 내진이라고 하는 internal check를 하게 될꺼라고 했다.  그리고 이후에 인공적인 유도분만이 필요한지 등을 선택한다고.

한국에선 출산까지 열 달이라고들 하지만, 영국에선 난자의 배란일부터 출산까지 총 40주를 셈한다.  프랑스에서는 총 41주를 셈한다고 하니 일주일 정도의 +/-는 기본이라고 생각했지만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게 조금 부담이 되긴 했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마음으로 진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와 이탈리아인 친구 알렉산드라를 쇼핑센터에서 만나 간단한 점심을 먹었다.  알렉산드라는 8월 후반 이탈리아로 3주간 휴가를 가면서 9월 15일에 돌아오니까 꼭 예정대로 16일에 출산하라고, 자기가 오겠다고 한 친구였다.  그냥 고마운 말 한 마디로 받았다가 출산계획birth plan을 세우면서 출산할 때 지비 이외에 누군가 있으면 내게도 지비에게도 좋을 것 같아 지비와 의논 끝에 조심스럽게 출산동반자birth partner가 되어 줄 수 있는지 이탈리아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던 알렉산드라에게 메일을 보냈다.  고맙게도 흔쾌히 yes라고 답해주었던 친구다. 

알렉산드라에게 앞으로 진행될 진료들에 관해서 이야기해주고 진통이 오면 연락하겠으니 시간이 되면 병원으로 와주면 좋겠다고 했다.  알렉산드라도 그러마 했고, 그녀의 휴가 이야기 그리고 3주간의 휴가 동안 결정지은 그 부부의 중요한 인생의 결정에 대해서 이야기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월요일 저녁을 지비와 먹으며 아무래도 출산은 9월 25일 경에나 일어날 것 같다고 이야기 나누었다.   애초 내 배란일을 기준으로 잡은 출산 예정일은 9월 25일이었는데 13주쯤 있었던 첫번째 초음파 촬영에서 아기가 표준치보다 크다며,특히 머리가( _ _);;, 출산 예정일을 일주일 정도 앞당겨 잡았다.  40주 진료에서 조산사는 아기에게 일주일, 정확하게는 9일은 꽤 큰 차이인데 그 정도 이유로 9일이나 출산 예정일을 앞당겨 잡은게 이해가 안된다고 했다.  그때서야 왜 일주일도 아니고 9일이나 당겼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9월 25일에서 일주일을 당겼으면 18일인데, 왜 16일로 잡았을까 하고.  지나서 생각해보니 딱 일주일만 앞당겨 잡았다면 정확했을텐데.(^ ^ )


지비랑 보통때와 다름 없이 저녁 먹고 TV보고 침대에서 뒤척뒤척하다가 11시 반쯤 겨우 잠이 들었다.  0시 30분, 딱 한 시간만에 '앗!'하는 느낌과 함께 눈을 떴다.  양수가 조금 흘렀다.  처음엔 양수인지 소변을 실수한 것인지 분간이 안됐지만 화장실로 가서 확인해보니 들었던 대로 무색의 액체라 양수라고 생각했다.  아주 적은량이라서 지비를 깨울까 어쩔까 고민을 했는데, 많지는 않지만 양수가 계속 흘러나오는 기분이고 아랫배가 슬 아파오기 시작해 지비를 깨웠다. 

☞ 이때 진통의 수위를 별점으로 매겨보자면 ☆


지비랑 둘이서 "어쩌지?" "어쩌지?"하다가 지비가 일단 병원에 전화를 걸어보자고 해서 병원에 전화를 했다.  얼마 전 요가 수업에서 알게된 독일인이 병원에 전화했더니 최대한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정확한 때가 오면 병원으로 오라고 해서, 정확한 때에 병원에 갔더니 빈 병실이 없어 다른 병원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터라 지비는 진통이 시작되는 산모가 하나 있음을 병원에 알려두자고 했다.

역시나 들었던대로 일정한 길이의 진통이 일정한 간격으로 오기 전까지 일종의 감기·진통제인 파라시타모paracetamol를 먹거나 따듯한 물에 목욕을 하며 집에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 진통이 진행되면 다시 전화를 달라고 했다.  가(짜)진통일수도 있으니 지비보고는 더 자라고 하고 나도 다시 자려고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진통도 조금씩 심해지는 것 같고, 아주 심하지는 않지만 복통을 동반한 설사 때문에 화장실을 3번정도 갔다.  참고로 영국에선 출산 때 관장을 하지 않는다.  그 부분때문의 지인은 분만 중 실수를 하게 될까봐 걱정을 하는데, 자연적으로 설사 같은 관장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아 자연의 섭리.( ' ');;


일전에 교육에서 출산이 다가오면 산모는 본능적으로 뭔가 느끼게 되는지 갑자기 아기 용품을 정리하고 준비하게 된다고 조산사가 말했다.  나의 경우는 본능적으로 출산 후를 대비하자는 마음이 생겼는지 먹을 음식을 사놓아야 할 것 같아 온라인 한국슈퍼마켓에서 먹거리를 주문했다.( ' ');;  불고기 같이 별 준비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들과 반찬들로.

주문을 마치고 나니 진통이 확실히 길어지고 진통간 간격이 짧아지는 것 같아 지비를 다시 깨웠다.  지비랑 시간을 체크해보고 드디어 '때'가 된 것 같다고 결론짓고 3시 반쯤 다시 병원에 전화했다.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양수와 진통 때문에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쇼파를 붙들고 서 있었다.  지비와 birth center 조산사와 통화를 들으니 조산사는 첫 아이라 당황해서 그렇지 최대한 집에 머무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산모들이 병원에 왔다가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그러고서 나를 바꿔달라고 했는데, 그때 이미 내가 전화를 받을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지비가 이야기했더니 그제서야 그럼 병원으로 오라고 하는 것이다. 

☞ 이때 진통의 수위를 별점으로 매겨보자면 ★☆


미리 챙겨놓은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병원까지 버스로 10~15분인데 새벽이라 집을 나선지 10분도 안되서 도착한 것 같다.  4시쯤 병원 birth center에 도착했으니 병원에 전화하고 고작 30분이 지났을 뿐인데 지비가 주차장에서 차를 가져오고, 차로 운전해 병원에 가고, 약간 복잡한 병원 건물 구조를 지나 birth center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조산사들을 만나기까지 그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조산사가 나를 보고 어떻냐고 물었는데, 마침 진통이 오던 타이밍이라 대답을 못했다.  그런 나를 보더니 대답을 듣지 않고도 때가 됐다고 판단했는지, 별다른 질문과 체크 없이 바로 birth center의 분만실로 안내했다.  


혈압을 체크하고 내 병원 기록을 체크하고 두 명의 조산사가 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birth plan를 미리 작성해둔 탓에 조산사들은 그걸 보고 나에게 질문없이 준비할 수 있었다.  분만실에서도 역시 침대에 앉지도 서지도 못했다.  한 명의 조산사가 서류를 체크하고, 풀에 물을 채우고 준비를 하는 동안 다른 한 명의 조산사는 내 옆에 붙어서 지비와 함께 나를 격려했다.  진통이 점점 심해오니 조산사는 내가 기댈 수 있는 커다른 쿠션과 매트가 있는 분만실 모서리로 안내했다.  힘들어도 침대에 눕기보다 서거나 무릎을 세워 선 자세를 권한다.  출산시 몸 안쪽 방향으로 약간 굽은 꼬리뼈가 움직이게 되는데 누워있는 경우 꼬리뼈가 움직일 수 없고, 아기도 중력과 반대 방향으로 나와야 하기 때문에 누운 자세를 권하지 않는다고 출산 전 교육에서 들었다.  내 경우는 교육뿐 아니라 요가 수업에서 강사가 분만에 도움되는 몇 가지 동작을 설명하면서 그 이야기를 반복해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무거워진 몸 때문에 무릎으로 선 자세가 장시간 계속되면 무릎에 상당히 부담이 온다.  사실 그런 이유 때문에 풀 분만을 선택하기도 했다.  진통 간격이 짧아져 진통의 길이가 진통 간 간격보다 길어졌을때쯤 체온과 비슷하게 준비된 풀에 들어갔다.  들어가는 순간 확실이 통증이 덜 느껴졌다.

☞ 이때 진통의 수위를 별점으로 매겨보자면 ★★☆


쿠션에 기대어 있을 때 기력이 떨어질 것을 염려한 조산사가 가져온 비스켓이 있다면 먹기를 권했다.  영국에선 진통이 시작되면 음식을 먹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출산 가방을 준비할 때 비스켓 같은 간식거리를 준비하라고 한다.  분만시 기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런데 그때의 내 상태는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물로 입술만 겨우 축이고 있었더니 조산사가 급하게 당이 필요한 환자들이 먹는 것 같은 스위트를 들고 왔다.  억지로 한 알 입에 넣었지만 그걸 입 안에서 녹일 여력이 없어 5분만에 뱉어내고 말았다. 


온수가 주는 통증완화도 잠시뿐 진통 간 간격이 거의 없어졌을 때는 도움이 되지 않아 air & gas 같은 진통제를 부탁했다.  최대한 진통제 없이 견뎠다가 참을 수 없을 때 약한 수위의 진통제를 써야 끝까지 diamolphin이나 epidural 같은 수위의 진통제 없이 출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조산사가 아직은 안된다고 할까봐 겁도 났다.  그런데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yes하면서  air & gas를 물려주었다.  나에게 air & gas로 호흡하는 법을 가르치면서 물 속에 넣지 않고 직접 잡으라고 했는데,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호흡기를 직접 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비가 풀 옆에 붙어 앉아 잡아주었다.

자연분만을 하되 최대한 약물 사용을 피하려고 한 이유는 그것이 좋기도 하지만, 약 반응에 민감한 체질이라 그렇게 하려던 이유도 있었다.  나의 경우는 가장 약한 수위의 진통제라고 할 수 있는 air & gas도 4~5번 정도 들이마시고 나면 얼굴이 얼떨떨해졌다.  조산사가 진통이 없을 땐 air & gas를 호흡기에서 떼고 태아를 위해 최대한 공기를 마시라고 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얼굴이 얼떨떨해지고 구토감이 와도 air & gas를 7~8회 반복해서 들이마시지 않으면 안될 지경에 이르렀다.


가능하면 조산사의 지시대로, 그 동안 요가 수업에서 배운대로 호흡과 자세를 유지하려고 했다.   진통이 최고조에 이르고 자궁이 10cm정도 완전하게 열리면 push를 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 때가 언제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조산사는 아무런 지시를 하지 않았고 그저 격려만 했다. 힘을 줘야할까라고 물어보면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하라"면서 "몸을 따르라"고만.  어떻게 해야할지, 언제까 때인지 모르겠다고 (울부짖으면서) 말하니 "직접 손으로 자궁이 열렸는지 아기의 머리가 만져지는지 만져보라"고만.  그러면서 조산사는 물안에 거울 하나만 넣어두고 나와 거울만 지켜봤다.  계속해서 격려를 해주긴 했지만 좀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 같이 유연성과 창의성이 없는 사람은 시키면 시키는대로 잘 할텐데.( i i)

힘을 주긴 하지만 어떻게 힘을 주어야 할지 모를 때 그런 내 뒤로 지비에게 조그만 목소리로 설명해주는 이야기가 들렸다.  지금 아기가 힘을 줄 땐 내려왔다가 그렇지 않을 땐 올라간다고.  그런 시간이 오래되면 아기가 힘들어진다는 걸 알고 있어서 힘을 주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도저히 어떻게 힘을 주어야 할지 몰랐다.  

☞ 이때 진통의 수위를 별점으로 매겨보자면 ★★★★☆


그러다 정말 고통이 별 네 개 반을 훌쩍 넘었을 때 어떻게 힘을 주어야 할지 감이 왔다.  별 다섯 개의 강도가 넘치는 진통과 살이 찢어지는 고통과 함께 아기 머리가 나왔다.  그때부터 조산사들은 격려가 아니라 더 힘을 주라고 지시했다.  아기가 머리만 나온채로 오래 있으면 아기와 나에게 좋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기 머리가 나올때 만큼은 아니지만 결코 덜하지 않은 진통과 살이 찢어지는 고통과 함께 한 번 더 힘을 주었고 아기의 어깨가 빠져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조산사들은 바쁘게 아기를 물속에서 잡고 다리 끝까지 빼냈다.  그리고 나를 풀에 기대게 하고 아기를 바로 내 가슴팍에 올려 놓았다.

조산사들이 다른 준비를 하는 2~3분 동안 아기가 내 가슴팍에서 스스로 호흡할 수 있도록 했다.  그 때 내 가슴팍에 올려진 아기가 너무 작고 뜨거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옆에 고개를 돌려 지비를 보니 울고 있었다.






풀 안에서 아기를 안고 가진 2~3분의 시간은 나에게도 아기에게도 또 옆에서 고통을 함께 한 지비에게도 안정을 주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아기가 울긴 했지만 호흡이 안정됐을 때 조산사들은 탯줄을 자를 준비를 했고, 울던 지비는 웃으면서 탯줄을 잘랐다.  9월 18일 오전 8시 2분 그렇게 누리가 태어났다.( i i)





아기는 나와 떨어져 지비 품에 안겨졌다.  지비는 아기를 감싸 안고 분만실 의자에 앉았고, 나는 물 속에서 나와 타월을 뒤집어 쓰고 나머지 태반을 분만(?)했다.  태반이 달걀 흰부분 같지 않을까, 주머니 같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던 나는 태반을 분만하고 깜짝 놀랐다.  아기보다는 작지만 상당한 크기의 핏덩어리였다. 

영국에선 태반을 분만하는데도 주사를 맞고 빠르게 배출할 것인지, 자연적으로 배출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주사제를 맞으면 20여분 안에 태반이 저절로 배출되고, 자연적인 방법으로 배출하면 길게는 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다른 산모들은 어떤 선택을 하는지 모르지만 끝까지 자연적인 분만은 원했던 나는 자연적인 배출을 희망했다.  자연적인 태반 배출, 그건 힘을 줘야 하는 그야 말로 또 하나의 분만이었다.  영어로 아기도 태반도 분만하는 걸 delivery라고 한다.  이미 기력이 다 떨어진 나는 힘을 주기가 힘들었고, 조산사들이 낚시 의자 높이의 작은 의자를 들고 왔다.   하지만 아래는 뚫려 있다.  거기 앉아 태반을 분만했는데, 문제는 그러면서 피를 꽤 많이 흘렸다.  그때는 그게 문제인지 몰랐다.  그저 끝났다는 안도감.  비록 아프긴 해도.


나를 커다란 쿠션에 기대 눕게 하고서 조산사들이 피를 많이 흘려 의사에게 보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더욱 분주해진 조산사들이 의사를 부르고, 의사가 와서 확인하고 나를 birth center에서 의사들이 관할하는 labour unit으로 옮겼고, 다시 수술실로 옮겼다.  birth center에서 다른 층의 labour unit으로 옮겨질 때 처음 휠체어에 앉았다.  그런데 분만실 문을 나서자 말자 조산사가 괜찮냐고 물었다.  어지럽고 구토할 것 같다고 했더니 휠체어로 옮기는 것이 어렵겠다며 다시 분만실로 돌아 들어가 침대로 올려져 labour unit으로 옮겨졌다.

추운 수술실에 누워서 당황하고 있으니 의사가 와서 설명을 해주었다.  찢어진 상처를 꿰매기도 해야하지만, 피를 1000ml 정도 흘려서 internal treatment가 필요할 수 있다고.  그런 경우 diamolphin이나 무통주사로 알려진 epidural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이미 아기를 놓은 상태이긴 하지만 강한 진통제의 부작용이나 더딘 회복을 피하기 위해, 또 아기를 위해 epidural의 사용을 피하려고 했던 것인데 결국 출산 후 사용하게 되서 마음이 좀 그랬다.

나를 처치하는 의사보다 좀더 나이가 들어보이는 의사가 들어왔고, 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내가 들은 설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피를 많이 흘렸고, 꿰매야 한다는.  다행히 그때도 epidural까지는 사용하지 않고 air & gas 만으로 견뎠다.  사실 입에 마스크가 안물려져 있었다면 epidural를 처치해달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마취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꼭 붙어서 손을 붙잡고는 끊임없이 진행상황을 설명해주고 격려를 해주었다.  그래도 아기를 낳을때도 소리를 안질렀는데 수술실에서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는.( i i)

처치가 끝나고 의사는 자기 컨설턴트에게 보여야 한다고 했다.  처음 들어와 상황을 듣고 처치를 동의했던 의사가 들어와 확인하고 몇 번 더 꿰매야한다고 설명해주었다.  처지하는 의사도 상황을 설명해주었지만 시니어로 보이는 그 의사가 다시 한 번 확인 설명해주는 식이었다.

한 시간 정도 수술실에서 보냈나보다.  아기를 낳은 건 8시 2분이었는데 labour unit의 회복실로 간 건 10시가 넘은 시간이었으니까.  수술실에서 거의 처치가 끝날 즈음 조산사가 들어왔다.  아기가 우는데 우유를 주어야 할 것 같다고.  어떤 우유를 주겠냐고.  아파 누워도 "모유수유하고 싶다"고 했는데, 조산사는 "어려워 보인다"고 세 가지 브랜드 중에서 정하라고 했다.  "아무꺼나"라고 답했는데 내가 한 브랜드를 정할때까지 옆에서 묻는 집요함 때문에 조산사가 처음으로 언급한 우유 브랜드를 부르고 말았다.

병원에서 필요에 따라서 우유를 아기에게 제공한다.  세 가지 브랜드가 있는데 때마다 어떤 우유를 하겠냐고 물었다.  비록 협찬은 받지만, 선택만은 철저하게 환자에게 맡기는 것 같았다.  그러면 한국의 야쿠르트 병만한 크기의 우유와 일회용 누크 젖꼭지를 가져다주었다.


labour unit의 회복실에 도착하니 지비와 아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기가 울고 있었는데 내 가슴위에 올려 놓으니 울음이 잦아들었다.



애초 4시간 정도 labour unit의 회복실에 머물다가 분만 후 회복실 겸 일반실인 maternity ward로 옮겨질꺼라고 설명해주었는데 그 두배인 8시간 정도를 회복실에 머물렀다.  그리고 저녁 6시가 되서야 maternity ward로 옮겨졌다.




영국에선 자연분만이면서 초산인 경우는 24시간 정도 maternity ward에 머물 수 있다.  두번째 출산은 6시간이라고 한다.( - -);; 그런데 대부분의 산모들은 그 24시간을 채우지 않고 귀가한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아기를 놓은 날 병원에 머물러보니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내가 maternity ward에 도착했을때 있던 산모들은 저녁 8시가 되자 가족들과 함께 모두 집으로 갔다.  그 이후에나 출산을 한듯 보이는 세 명의 산모가 차례로 들어와 나와 함께 밤을 보냈다.

일단 maternity ward는 4명 정도가 함께 쓰는데, 물론 커튼으로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 저녁 8시가 되면 가족이든 남편이든 함께 머물 수 없다.  아기와 산모만 머물게 된다.  영국은 한국처럼 신생아실에 아기를 격리 시키지 않고 아기에게 문제가 없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산모와 아기가 함께 있는다.  그런데 저녁 8시 이후엔 maternity ward에 산모와 아기만 머무르면서 산모가 아기를 다 챙겨야 한다.  이 대목이 꽤나 힘이 들었다.  내 경우는 꿰맨 후 소변을 빼내기 위해 소변관을 달고 있었고, 만일의 경우 수혈을 위해 왼손엔 수혈용 바늘을 꼽고 있었다.  움직이기도 힘들었지만, 왼손마져 쓰기가 힘들었다.  그런데도 아기 우유 주고, 기저귀 갈고, 울면 달래주는 것이 모두 내가 해야 하는 일이어서 힘이 들었다. 

birth center의 조산사나 labour unit의 스탭들과는 달리 maternity ward의 조산사들은 무서웠다.  침대 옆에 비치된 벨로 부르면 기저기를 갈기 위해 필요한 따듯한 물이나 아기에게 주기 위한 우유를 가져다는 주었지만 도와주는 법이 없었다.  입으로 시키고 눈으로 지켜볼 뿐.  아마 내가 강단이 눈꼽만큼이라도 덜 강했다면 울고 말았을꺼다.  밤에도 아침에도 지비에게 문자를 보내 면회가 가능한 9시에 땡하고 맞춰오라고 했다.  시간 맞춰 나타난 지비와 함께 maternity ward의 조산사들을 헐뜯으면서 언제 집에 갈 수 있을까 하고 기다렸다.  오는 사람마다 물어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내 혈액 수치가 나아지고 있는지 확인이 되는대로 집에 갈 수 있을꺼라고 답해줄뿐.

labour unit에서도 maternity ward에서도 시간되면 밥을, 아니 끼니를 주긴 했지만 끼니가 샌드위치라 잘 넘어가지 않아서 나는 쥬스나 우유만 마셨다.  다행히 지비가 집에서 과일이나 음식을 가져와 배를 곯지는 않았다.  오후 3시 정도가 되서야 집에 가도 되겠다는 통보를 받고, 준비를 해서 7시쯤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병원에 찾아온 알렉산드라와 함께.


지금 뒤돌아 생각해보면 maternity ward의 무서운 조산사들이 다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도 같다.  사실 막 출산을 하고 아이를 돌보는게 쉽지는 않지만, 그런 시간이 있어 집에 돌아와서도 아는게 없지만 지비랑 얼렁뚱땅이지만 둘이서 우유 주고 기저귀 갈고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병실에서 보낸 다음날 조산사들은 내게 엄한 얼굴로 샤워 하라며 등떠밀었다.  차마 아파서라는 말은 못하고 "아기가 혼자라서"하면서 남편이 올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니까 조산사가 돌볼테니 하라고 했다.  샤워실로 등떠밀면서 타월과 마터니티 패드가 있냐고 해서 "그래서 남편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더니 "우리가 다 줄테니 샤워를 하라"고 했다.  선택없이 물로만 씻어내리는 샤워를 했다.  사실 샤워를 했다기보다 따듯한 온수를 맞으며 잠시 서 있었다.  샤워실에서 나오니 조금 전 엄한 얼굴과는 전혀 다른 환한 표정으로 기분이 괜찮지 않냐고 물어왔다.  움직이는 게 힘들긴 했지만 기분이 나아진 것도 사실이었다. 


집으로 돌아오고 거의 일주일이 흘렀다.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흘렀다.  지비랑 나는 하루는 잠을 설치고, 다음날 하루는 그럭저럭 잠을 자고, 다시 다음날 하루는 잠을 설치면서 시간을 보내고 적응하고 있다.

2주간 휴가를 낸 지비가 다시 일터로 가게 되면 아기와 둘만의 시간에 다시 적응을 해야겠지만 그건 일주일 뒤에 가서 고민하고, 지금 당장은 누리 우유 주러 가야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