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Cooing's

[+3686days] 라푼젤과 백설공주 사이

토닥s 2022. 10. 23. 10:08

어제 잠시 언급한 것처럼 지난 한 달 동안 아이의 중등학교 진학 때문에 바쁜 시간을 보냈다. 학교 뷰잉을 간 것은 세 번 뿐이라 물리적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기보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리 속과 마음 속이 바쁜 시간이었다. 그렇게 보낸 한 달 후, 우리는 (적어도 나는) 작은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도, 선택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구나. ‘지금’하는 대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이 ‘최선’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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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학기는 9월에 시작하는데, 7학년부터 11학년까지 있는 중등학교는 6학년 9월에서 10월 사이에 지원한다. 6학교를 지원하면 3월 말, 부활절 방학 전에 그 결과가 나온다.
아이는 지금 5학년이니 아직 1년이 남았지만 내년에 학교 뷰잉을 하는데 빠듯함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5학년 때 학교 뷰잉을 한다. 지비에게 설명해주기 버거워서 아이의 학교에서 진행한 중등학교 진학지원 설명회는 물론 학교 뷰잉도 함께 다녔다.

영국의 학교는 기본적으로 거리로 결정된다. (한국식으로)공립학교는 거리로, 종교학교는 종교인의 지원을 받아 지원자 중에서 거리로 선정한다. 기본적인 룰은 거리지만, 음악이나 미술 같은 특기전형은 거리와 상관없이 갈 수도 있고, 사회 배려 지분(입양자 및 사회 보호 대상자)으로 갈 수도 있고, 학교에 따라서는 형제자매가 있는 경우 우선으로 갈 수도 있다. 예로 우리가 뷰잉을 갔던 학교A는 종교학교지만 종교 여부와 상관없이 지원할 수 있되 특기자-사회 배려 지분-형제자매 우선-거리 순으로 학생들을 선정한다. 시험+거리로 선정하는 학교도 있다. 이렇게 학교마다 선정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미리 알아두는 게 좋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엔 거리로 확실하게 배정받으리라 예상할 수 있는 학교가 없다. 영국에서는 그 거리를 캐치먼트라고 하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 학교는 있지만 우리는 그 어느 학교의 캐치먼트에도 들지 않는 애매한 상황. 거기에 아이와 맞는 학교, 성적이 좋은 학교 등 여러가지를 고려하니 무척 어렵다.
내가 아시아인이기 때문에, 교육열이 높을꺼라는 기대(?) 때문에 아이 친구 엄마들은 내가 어떤 학교를 고려하고 있는지 물어보기도 한다. 그 질문에 “좋은 학교는 많지만, 우리가 갈 수 있는 학교는 없네”하고 웃곤 했다. 웃자고 한 말이기도 하고, 사실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 사립학교들이 제법 있고, 그 학교들 중에서는 아주 적은 인원이지만 시험을 통해 장학금을 받고 갈 수 있는 곳들도 있다. 아이가 그렇게 가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내가 그 시험들을 풀어봤다. 초등학교 6학년 선행학습을 통해서 갈 수 있는 정도라면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직접 풀어보니 그 시험 수준은 최소 8학년 정도까지는 선행학습을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도 아쉬움이 있었는데, 그런 기회를 통해 공부한 자녀들을 두고 있는 지인의 경험담을 듣고서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일반학교’ 중 괜찮은 곳으로 가자. 다만, 그런 학교들도 우리는 거리로는 갈 수 없으니 지금 아이가 하고 있는 것들을 열심히 하면서 기회를 찾아보자. 그것이 우리의 최선이다.


글로 풀어내니 간단하지만, 이 생각에 이르기까지 많은 생각과 갈등이 있었다. 분명한 것은 일년 동안 결과를 알 수 없는 시험을 준비하며 아이도 힘들도 나도 힘든 시간을 보내기보다 아이가 좋아하는 댄스, 운동을 응원/지원해주는 게 아이와 우리 모두에게 좋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나니 생각하지도 못한 기회들이 아이에게 주어졌다.
다리 부상을 입은 친구를 대신해서 달리기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학교 대표로 카톨릭학교에서 주관하는 육상대회에 가게 됐다. 지역의 한 사립학교에서 진행하는 수학 프로그램에 추천을 받아 가게 됐다. 두 프로그램 모두 인기있는 중등학교에서 되는데, 생각하지도 못한 학교 뷰잉을 더하게 된 셈이다. 카톨릭학교와 사립학교라 아이가 그 학교에 갈 수 있는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지만. 우리는 아이를 데려다주고, 응원하러 다니느라 좀 더 분주한 시간을 보내게 됐지만 아이는 이 순간을 무척 설레고 즐겁게 보내고 있다.

여전히 중등학교 지원에 대한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최선’을 다하며 즐기면서 이 시간을 지나기로 했다. 그게 이제 라푼젤보다는 작고 백설공주보다는 자란 아이의, 아이와 함께 자라고 있는 우리들의 요즘 근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