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21년

[life] 영국 주유대란

토닥s 2021. 10. 5. 18:57

한국 뉴스에도 나왔는지 모르지만 지금 영국은 주유대란 중이다.  휘발유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휘발유를 배달하는 대형 차량(HGV - Heavey Goods Vehicle) 운전자 부족으로 생긴 현상이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코비드 상황과 맞물려 현재 부족한 대형차량 운전자는 10만명이라고 한다.
https://www.bbc.co.uk/news/57810729
 

 

How serious is the shortage of lorry drivers?

The industry says there's a shortage of 100,000 drivers but why is that and what is the likely impact?

www.bbc.com

 

한 2주 전부터 이 현상이 뉴스에 나오기 시작했을 땐, '그런가? 큰일이네' 정도로 반응했다.  열흘 전 차로 한 시간 떨어진 지인집에 가려니 휘발류가 간당간당.  가기는 가도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마음을 졸여야 할 것 같아 약속시간 전에 일찍 나서 주유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아침 9시, 우리집에서 차로 지인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거의 모든 주유소에 휘발류가 없었다.  집을 출발한지 30분 지나 주유소 한 곳을 앞두고 긴 차량 정체를 발견했다.  주유하기 위한 차량들이 줄로 도로 한 차선을 차지하니 생긴 정체였다.  우리도 그 정체에 참여하기로 했다.  40분 정도 기다려 우리는 겨우 주유했는데, 12개의 주유기 중 8개만 운영중이었다, 우리 뒤로 주유소의 직원이 나와 주유기를 줄여야 할 것 같다고 동료에게 말했다.  경유는 이미 바닥난 상태였는데, 남아있는 휘발유도 그 양이 많지 않아 줄인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 주유소를 출발했지만, 아직도 긴 줄 안에 서 있는 사람들이 걱정됐다.

 

영국 정부에서 유럽의 운전자들 이민/비자 절차를 간소화 한다, 군인 150명을 투입한다 이런저런 안을 내놓았지만 지금까지 별로 나아진 게 없다.  당분간 아이의 발레와 주말학교를 제외하곤 차를 쓰지 않겠다고 정한 우리지만, 집에서 일하는 지비의 의자가 말썽이라 큰 마음 먹고 IKEA에 갔다.  차로 15-20분인 거리라 늘 편하게 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휘발유 때문에 큰 마음을 먹어야했다.  가는 길에 몇 개의 주유소가 있었는데 모두 비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도로도, IKEA도 좀 텅빈 느낌.

오늘 아침 한 달 동안 모은 마스크를 버리기 위해 모리슨이라는 마트에 다녀왔다.  걸어서 20~25분거리.  가는 길목에 주유소 하나가 있는데, 마침 휘발유가 있었는지 차량들이 한 차선을 차지하고 있었다.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
(부끄러운 일이지만)대형차량 운전자 부족이 뉴스에 올랐을 때 "내가 할까?"하고 말했다.  들어보니 면허만 딴다고 운전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짧아도 7~8개월의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 일이라고 한다.  
또 영국은 운전자들의 휴게시설이 무척 부족하다고 한다.  영국은 한국 같은 유료 고속도로가 없다.  차량 정체 구간을 피해가도록 만든 유료 도로가 몇 개 있고, 잉글랜드에서 웨일즈로 넘어가는 유료 다리가 있긴 하지만 유료도로는 손에 꼽힐 정도다.  도로를 이용해서 수익을 남기는 구조가 아니니 휴게시설에 대한 투자도 없다.  대형차량 운전자들이 서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휴게소에 대형차량 주차공간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영상이 BBC를 통해서 소개됐다.  대형차량 운전자들이 적지 않은 돈을 벌지만 새로운 노동인구가 유입되지 않는 이유다.  일주일에 5일을 집에서 잠들지 못하는 운전자의 노동 환경.  그마저도 길에서 새워야 하는 날이 많기 때문이다.  새로운 유입 노동인구는 줄고, 기존 노동인구가 퇴직연령에 이르면서 운전자가 부족해졌다.   사실 다양한 직업군에서의 인력부족은 영국의 유럽연합의 탈퇴와 함께 예견된 일이었는데 코비드가 더해져 가속화 되고, 가시화 되었을 뿐이다.   

 

이 대형차량 운전자 부족현상이 짧은 시간 안에 해결될 일이 아니니 다른 영역으로 그 영향이 확산되고 있다.  물류에 이상이 생기니 거의 모든 제조업에도 이상이 생긴다.  잉글랜드 북부 랜캐스터 지역에는 아이들 급식에 사용되는 식재료가 제때 공금되지 못해 아이들의 식단을 바꾸어야 할 정도다. 

 

https://www.bbc.co.uk/news/uk-england-lancashire-58753203

 

Lorry driver shortage blamed for Lancashire school dinner menu cuts

Children in Lancashire will be offered soup, sandwiches and jacket potatoes rather than full menus.

www.bbc.com

 

지금은 당장은 주유가 불편한 정도지만, 이후엔 더 큰 어려움이 오겠지.  영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기간이 크리스마스 겨울 시즌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크리스마스 물류대란 - 작년 연말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완료 절차에 따라 통관 절차가 복잡해지고 코비드까지 겹쳐 물류대란이 있었다 -에 준하는 경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배 곯지 않고 자란 세대인데, 코비드와 브렉싯으로 마트에 가도 물건을 살 수 없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다음은 무엇인가.  기대 되는 것이 아니라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