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21년

[life] 후회들

토닥s 2021. 4. 11. 22:09

지난 밤 누리가 자다 깨서 한참 울었다.  나쁜 꿈, 슬픈 꿈을 꾼 모양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무슨 꿈인지 물었는데, 꿈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슬픈 느낌만 남아 또 훌쩍였다.  누리가 울면서 깰 때 나도 꿈을 꾸던 중이었다.  어떤 사람(들)을 한 번은 만나고 싶었고, 그래서 연락을 망설이던 중이었다.  몇 번이며 지웠다 새로 썼다를 반복하며, 단어를 고르며 문자를 보내던 중이었다.  나는 꿈에서 깨어나도 선명하게 기억났다.  평소에도, 잠을 자지 않을 때도 언젠가는 한 번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지기 싫은 '짐'이 아니라 해야 하는 '숙제'의 느낌이다.  그 숙제를 언제나 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지금도 늦지만, 너무 늦지 않기만을 희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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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먹을 때 누리가 식탁에 놓여진 토끼 인형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지비의 사촌형 가족이 선물한 초코렛 에그와 함께 있던 피터래빗이었다.  누리가 자기가 먹기 싫은 밥을 토끼가 먹어라 어쩌라 그러던 중이었는데 지비가 그 피터래빗을 보더니 "왜 옷의 단추가 없냐?"고 물었다.  누리는 "원래 없었다"고 답했고, 나는 "최단가로 만들어야 하는 장난감에 단추가 웬말?"이냐고 답했다.  지비는 옷 앞섶이 활짝 열려 있으니 이상하다며 불량품이 아닌가하고 의심했다. 

그때 내가 한국 여학교 앞에 등장하곤 했던 '바바리 맨'이야기를 해줬다.  여학교 앞에서 앞섶을 펼치던 남자들의 이야기.  우리 대학에 있었던 '아담' 혹은 '나뭇잎맨'이라고 불리던 남자 이야기.  그는 얼굴'만' 나뭇잎으로 가리고 학교를 활보했다고 한다.  누리는 완전 박장대소했고, 지비는 황당해했다.  여기엔 그런 게 없나?🙄  나는 그 남자들을 '정신이상'이 있는 일종의 환자라고 표현했는데, 지비는 그건 병이 아니라 범죄라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여기엔 그런 게 없는건가.  지비가 남자라서 그런 사람들이 이곳에도 존재하는데 모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그 뒤로 누리는 피터래빗의 앞섶을 혼자 활짝 펼치며 폭소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불쌍한 피터래빗.🐰

내가 누리 앞에서 괜한 이야기를 했나 싶었는데, 이미 늦었다.  그래서 누리에게 당부했다.  "학교가서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면 안돼!"😰  정말 이미 늦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