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21년

[life] 부활절 연휴2(feat. 크로스 번)

토닥s 2021. 4. 6. 04:25

원래도 이곳에 가족이 없지만, 런던의 동쪽 끝에 지비의 사촌형 가족이 살기는 한다, 명절이면 그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진다.  누리 친구들 대부분은 부모 한쪽이 유럽계가 많아서 방학이면 만나기 어렵다.  이번 부활절 방학은 그 대부분도 유럽으로의 가족 방문이 어려워서 자주 보겠거니 했는데, 또 그렇지도 않다.  우리처럼 아예 가족이 없는 경우는 잘 없어서 대부분 또 영국 내 다른 가족들을 방문하느라 보기가 어렵다.  '심심하다', '심심하다' 노래를 부르는 누리를 데리고 우리끼리 동네에서 뱅글뱅글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처럼 집을 꾸미지는 않아도 그냥 넘어가기는 심심해서 부활절 분위기나게 바구니를 사서 꾸며보자고 했는데, 코비드 때문에 생필품 구입을 위한 상점(마트와 약국)정도만 문을 열어서 바구니를 사지 못했다.  그런데 마트에 가보니 부활절이면 넘쳐나던 초코렛 에그도 없다.  사람들이 이번 부활절 연휴에 고향방문과 여행을 하지 못하니 먹는 것으로라도 위로해보자고 식료품을 많이 산다고 한다.  때문에 초코렛 에그 부족 현상이 일었다고 한다.  뉴스에서 보고 웃었는데, 내가 장을 보러가서 텅빈 선반을 보니 애닯다.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빈손으로 돌아와 누리를 위로하고 달걀을 삶고, 친구가 선물한 달걀 띠지를 입혀주었다.  지난 월요일 만난 친구가 누리 주라고 초코렛 토끼 한 마리 주었는데, 그거 하나라도 없었으면 어쩔뻔-하고 안도했다.

 

☞ 영국 초코렛 에그 품귀현상 www.theguardian.com/lifeandstyle/2021/apr/03/easter-egg-hunt-uk-shoppers-disappointed-by-shortages

 

Easter egg hunt: UK shoppers disappointed by shortages

Many share pictures of empty shelves on social media and some draw comparisons to last year’s toilet paper shortage

www.theguardian.com

 

영국에서는 부활절에 핫 크로스 번Hot cross bun을 먹는다.  시나몬과 건포도가 들어가 있고 십자무늬를 한 빵이다.  좋아하는 빵은 아니지만, 누리랑 부활절 액티비티로 한 번 해보려고 준비해뒀다.  대신 우리가 좋아하는 녹차를 바탕으로 초코렛 칩을 넣고 만들기로 했다.  그러니 핫 크로스 번은 아니고 크로스 번인셈.

 

겉모습은 그럴듯한(?) 녹차 크로스 번

 

 

결론적으로 누리와 시작만하고 같이 만들지는 못했다.  반죽이 너무 질어서 누리가 다루기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누리는 시작할 때 재료 계량만 하고, 마무리할 때 십자모양만 그렸다.  맛은?  별로였다.  3번씩이나 발효를 해야해서 시간은 시간대로 들였고, 반죽이 너무 질어 모양을 만들며서 덧가루를 많이 썼더니 표면이 질겨졌다.  앞으로는 괜찮은 브랜드로 사먹자고 했다.  지비님도 "생긴 건 그럴듯한데(?) 힘들다면 사먹는 게 낫지"하고 애둘러 맛이 별로라고 의견을 밝혔다.

 

크로스 번을 만들며 발효 하는 사이사이 김치를 만들었다.  김치를 만들 때 기록해둔 계량을 보고 하는데도, 늘 결과물이 다르다.  때에 따라 배추의 크기가 다른 것은 물론, 계절 때라 비슷한 크기의 배추를 같은 량의 소금으로 절여도 결과물이 다르다.  신기한 김치의 세계를 경험하는 중이다.

 

 

빵 만들랴, 김치 만들랴 서서 시간을 보냈더니 피곤한 하루였다.  저녁 9시쯤 일찍 쉬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누리님 잠자리를 준비하려고 창문을 여니 두런두런 목소리가 들려 창밖을 봤다.  부활절 연휴 한가운데 그 시간까지 배달을 하는 아마존 택배노동자들의 모습이 모였다.  요즘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씁쓸한 모습.  프라임도 좋고 다 좋은데 남들 쉬는 저녁시간, 휴일에는 배달이 좀 늦어져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대망의 부활절 날.  아침에는 달걀을 까서 먹었고, 점심에는 달걀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리고 누리의 염원을 담아 미니 골프를 치러 갔다.

 

 

그 미니 골프장엔 꼭 홀인원의 경험을 주는 곳이 있다.  이번에도 누리지비는 나란히 홀인원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youtu.be/Oq1BIzj9AxA

youtu.be/hhiIppWf0BQ

저녁은 간단한 부활절 연휴 메뉴에서(?) 소개한 핑거푸드(손으로 집어 먹기 좋은 음식들)로 준비해봤다.  페스트리 반죽을 각종 속재료에 돌돌돌 말아 굽는, 보기엔 간단해 보이는 음식이었다.  소개된 음식은 아스파라거스에 베이컨과 페스트리 반죽을 돌돌돌 말아 구운 것이었다.  고기를 즐기지 않는 누리를 생각해 절반은 아스파라거스와 맛살을 함께 넣고 페스트리 반죽을 돌돌돌 말았다.  고기를 즐기는 지비는 베이컨 돌돌을 좋아했고, 그렇지 않은 누리는 맛살 돌돌을 좋아했다.  나는 이것도 저것도 다 귀찮고 냉면이 먹고 싶었다(?).😑

 

 

그리고 부활절 연휴의 마지막인 오늘, 하지만 부활절 방학은 아직 꼬박 2주가 더 남았다, 다시 지비의 사촌형 가족들과 큐가든을 찾았다.  우리에겐 가깝고, 비록 밖에서 먹어야하기는 하지만 커피나 간단한 음식들을 파는 매점이 있고 화장실이 있어서 좋은 곳이다.  그리고 이 식물원은 런던에서도 유명한 관광지(?)라서 먼 동쪽에 사는 사촌형 가족들도 초대하면 와볼만한 곳이라 우리가 청했다.  우리가 구입한 회원권이 게스트 초대가 가능해서 부담없이 부를 수 있었다.  알뜰한 당신 지비는 앞으로도 속속 친구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일듯.🙄  다행히 넓은 곳이라, 오늘 식물원에서만 누리는 만보를 달성했다, 지난 금요일에 가지 않은 다른 루트로 걸었다.

 

누리가 한 다리로 서서 쉬고 있는 요기Yogi 거위를 발견했다.

 

엄청나게 많은 꽃이 핀 목련
엄청나게 큰 진달래과 식물

큐가든은 사실 우리들이 애정하는 곳이다.  누리가 학교에 가기 전엔 회원권을 몇 년 갱신해가며 유지한 곳이기도 하고, 한국에서 가족이 오면 꼭 회원에 가입에 가족들과 갔던 곳이다.  나이드신 부모님도 무슨무슨 성당, 역사적인 건물보다 큐가든에서 더 좋은 시간을 보내셨다(고 믿고 있다).  부모님은 큐가든에서 꽃과 나무들을 보며 한국에도 있는데 그 크기가 다른 것들을 유심히 보셨다.  그런데 오늘 문득 엄청나게 많은 꽃이 핀 목련, 엄청나게 큰 진달래를 보고 사촌형수님과 대화를 나누다 그때의 부모님이 떠올랐다.  폴란드엔 진달래과 식물이 있기는한데 꽃이 핀 건 처음보신다고 하셨다.  한국에선 진달래 화전을 구워먹는다고 말씀드리고 사진을 찾아 보여드렸다.  꽁냥꽁냥 꽃 이야기하고 꽃 사진찍고, 이렇게 나도 꽃중년 되는 것인지(?).🌻🌼🌷

 

+

 

이번 부활절은 기존의 명절과 달리 음식하기에 에너지를 쓰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크로스 번을 구워보자 했는데, 시간 엄청 쓰고 지쳐버렸다.  그나마 부활절과 테마가 맞는 음식은 달걀 샌드위치 정도 해먹었다.  내일 마트에 가서 닭 한 마리 사와서 마늘 넣고 백숙을 해 먹어야 할 것 같다.  국물이라도 마시고 힘을 내야할 것 같다.  그래야 남은 부활절 방학은 견디지 싶다.  일단 부담되는 부활절이라도 넘긴데 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