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떠나다./Korea

[Korea2020] 24시간의 여정

토닥s 2020. 7. 22. 18:00

이번 한국행은 여러 면에서 복잡했다.  언니가 봄에 영국을 와서 함께 여행을 하다 7월 말쯤 함께 한국에 올 계획이었다.  Covid-19으로 언니의 유럽행은 취소됐다.  그래도 우리의 한국행은 여전했는데 언제 올지가 관건이었다.  5월 중간방학 이후에 등교가 시작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유럽과 영국의 Covid-19 현황은 점점 어려워만 졌다.  그러던 어느 날 지비가 등교가 결정되면 누리를 학교에 보낼 거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답했고, 지비는 "그럼 더 망설이지 말고 항공권을 사라"고.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티켓을 찾아봤는데, 얼마간 한국을 다녀갈 것인가를 생각해보니 그 기간 동안 지비만 혼자 남겨두고 가는 게 좀 걱정이 되긴 했다.  마침 지비의 일터가 7월 말까지 사무실을 닫고 이후로도 인원을 줄여 출퇴근을 조정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던 때라 "그럼 한국 가서 재택근무를?"라고 내가 아이디어를 줬다.  그래서 애초 계획보다 조금 더 일찍 한국에 오게 됐다.

보통은 여정 동안 먹을 간식을 중요하게 챙겨오는데, 이번엔 손소독제, 손소독 티슈 뭐 그런 것들을 더 중요하게 챙겨 왔다.  비행기에서 누리가 할 워크북 같은 것도 최소화시켰다.  장난감도 안된다고 내가 미리 못 박았다.  대신 원하는 만큼 기내 게임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먼저 한국에 입국한 블로거들의 글을 보니 다들 실리콘 위생장갑을 사용하기에 우리도 사이즈별로 구매해서 챙겨 왔다.  그런데 필요가 없었다.  공항 곳곳에 손소독제가 있어 차라리 장갑보다 손소독제를 자주 사용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물과 비누로 씻어주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국을 준비하며 우리가 구매한 것 중에 코안에 뿌리는 가루약도 있었다.  코 안에 장벽을 만들어줘 감염을 낮춰준다는데 한 번 해보고 다시는 못하겠다 싶었다.  마스크를 꼼꼼히 쓰고 마스크와 눈에 손을 대지 않는 게 최선이지 싶다.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지만, 영국에 있는 한국맘까페 글들을 볼 땐 정말 걱정이 많이 됐다.  아마 많은 분들이 누리보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가니 그랬을 것도 같다.  물론 한국인들의 기준이 높은 것도 사실.  지비는 확진자가 많은 해외 입국자들과 이동해야 하는 공항과 KTX를 많이 걱정했지만, 나는 갇힌 공간에서 11시간을 날아가야 하는 비행을 더 많이 걱정했다.  

 

 

 

우리는 이번에 아X아나를 타고 왔다.  대X항공은 어떤지 모르지만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에는 아시아인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  이미 한국엔 아시아인들의 확진자가 많이 나와 주변을 둘러보고 걱정을 하기도 했는데 우리보다 더 꼼꼼하게 준비하고 수시로 손소독제를 사용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방역복을 입은 중국인도 있었다.  비행기에 타고 주변을 손 소독 티슈로 꼼꼼히 닦았다.  그렇게 이륙을 했는데, 오랜만에 타본 아X아나라서 그런지, Covid-19 상황이라서 그런지 기내 서비스가 많이 줄어 있었다.  아이 간식도 주겠지 해서 하나도 챙겨가지 않았는데, 선택도 할 수 없는 아이용 기내식만 두 번 받았다.  고기랑 거리가 먼 누리인데 두 번 모두 육식이었다.  고기보다 운동량이 적은 기내임을 고려하여 소화가 쉬운 음식으로 준비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기내식 기획하는 사람들은 아이들 안 키워본 것인지, 비행기를 안 타본 것인지.  나는 비행할 때마다 김을 챙겨서 내 밥을 누리와 나눠먹는다.  주변의 아이 엄마들이, 아이들이 부러워한다.  그런데 이번 기내식은 내 밥도 누리와 나눠먹기 어려웠다.  예전에 타이완 갈 때 타본 진X어 수준의 밥이었다.  비빔밥인데 이미 섞여 있어 고추장만 더해 먹는 식.  비지니스는 다르겠지만.  기내식과 아이들 간식이 꽤 괜찮았던 아X아나였는데 요즘이라서 그런지, 서비스가 바뀐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기 중심의 아이 기내식보다 그냥 밥을 받을 수 있을까 물었더니 수가 맞춰져 있어서 남으면 주겠다고.  심지어 보통 아이들 기내식은 먼저 나오는 편인도 그것도 아니라서 여러 가지로 불편했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음식도 맞지 않고, 난기류 때문에 멀미를 한 누리.  결국은 먹은 한끼도 다 토해내고 두 번째 기내식은 손도 대지 않았다.  신선한 음식을 먹기 어려운 여정이라 챙겨갔던 딸기와 당근도 한 두 개만 먹고 손대지 않았다.  나중에 이게 문제가 됐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검역서 각각 두 장씩 쓰고, 물론 우리는 내가 누리지비 서류를 다 써야 한다, 자가격리 앱을 설치했다.  우리는 미리 설치해서 갔지만, 설치가 제대로 되었는지 현장지원을 나온 군인들이 확인하고, 체온을 입력하고, 써놓은 연락처가 맞는지 확인 전화를 했다.  나는 한국 유심이 있어서 내 전화로 확인을 했지만, 없는 분들은 가족들에게 연락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 과정에 상당히 시간이 걸렸다.  미리 준비해둔 가족관계 증명서 덕분에 별다른 확인 없이 지비는 우리와 같은 루트로 이동할 수 있었다.  런던에서 출발할 때 어떤 가족은 엄마와 딸은 한국 국적인데, 아들은 영국 국적.  가족관계 증명서가 없어서 한국에 가서 확인이 안 되면 시설 격리를 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는 것 같았다.

 

 

 

여러 장의 서류를 내가 작성해야해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별 무리 없이 입국 데스크까지 왔다.  여기서 문제 발생.

지비는 이번에 영국여권으로 한국에 왔다.  폴란드에서 한국인의 입국을 허가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폴란드인 입국을 허가하지 않는다.  정말 외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그래서 영국 여권으로 왔는데, 준비해 간 가족관계 증명서에는 지비의 국적이 폴란드라고 나와있었다.(ㅠㅠ )  외국에서 이름을 바꾸거나 국적을 바꿀 땐 범죄경력 사실을 숨길 때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  왜 국적을 바꾸었는지 물어서 "영국에 오래 살아서.."라고 자신 없게 대답을 하니 "잠시만요"하면서 직원분이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시면서 확인을.(ㅠㅠ )  그러면서 시간을 썼다.  별문제 없이 해결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우리가 거의 마지막으로 나와서 가방을 찾게 됐다.  가방을 찾고 있는데 강아지 한 마리가 와서 "왈왈왈"  누리랑 "아이고 귀엽다" 하고 있는데, "음식이 있냐" 물으셔서 아이가 먹지 못한 딸기가 있다고 했더니 가방 검사를 하신다고.(ㅠㅠ )  그런데 보통 세관신고서류는 신고할 것이 없다고 작성하지 않나.  신고할만한 것들이 없으니 대충 했는데, 딸기 당근(농산물)이 있으니 허위작성으로 벌금을 내야 한다고. (ㅠㅠ ) 확인을 해보시더니 "처음이시네요"하시며 이번만 폐기 서류에 사인하고 가라고 하신다.  세관신고를 대충한 건 내 잘못이 맞지만 아이 간식임이 뻔한데 좀 과하다 싶기도 했다.  처음 겪어보는 일에 당황하며 나왔는데, 나오면서 생각하니 다른 가방에 커피도 들어있었고, 역시 간식으로 먹는 도시락용 치즈도 두 조각 있었다.  농산물, 유제품, 육류(햄과 소시지) 엄격하게 하시니 다른 분들은 참고하시길.

공항 안에서 보낸 2~3시간은 시작에 불과했다.  현재 부산으로 오는 해외입국자들은 가족 마중이 아니면 모두 KTX를 타고 와야 한다.  인천공항에서 광명역으로 가는 해외 입국자 전용 버스를 타고 이동하게 되어 있다.  타는 인원이 제한이 되어 있어 버스만 한 시간 넘게 기다렸다.  광명역에 도착해서는 해외 입국자 전용칸이 있는 KTX를 두 시간 기다려서 탈 수 있었다.  보통 1~2시간마다 기차가 있는데 마침 우리가 도착한 시간대는 2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 KTX 역시 인원이 제한되어 있어 뒷분들은 다 탈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해외 입국자 전용칸 뒤로 한 량을 비워서 운행하기 때문에 손실이 크니 자주 배치할 수는 없겠지만 한 시간에 한 대 정도는 있으면 좋겠다 싶다.  사실 나는 이 인천공항-광명역 버스 대기 시간이 길다는 글을 봤기 때문에 택시라도 타고 싶었다.  11시간 비행 뒤 어린이 1명과 어른이 1명을 부산까지 보호 인솔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비용이 들어도 그게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인데 그런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 아쉽기도 했다.  누리의 휴대전화 사용을 제한하는 편인데, 이번 여정은 우리가 파워뱅크까지 준비해서(순전히 이 여정을 위해서 구입했다) 휴대전화로 색칠, 게임을 허용해주었다.  

 

지나서 드는 생각은 자가격리앱을 설치하고 확인하는 작업만으로 여러 가지 서류를 대신할 수 있을 텐데 불필요한 서류 작성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쓰는 우리도 우리지만, 그 어느 누군가는 우리가 발로 쓴 것 같은 정보를 입력하고 관리해야 할 텐데 그것도 일이 아닌가 싶다.

 

밤 12시가 넘어 부산역에 도착했다.  다른 지역은 어떤지 모르지만 부산은 KTX를 이용한 해외입국자들은 부산역에서 바로 Covid-19 검사를 한다.  코 점막과 목안 점막 두 곳 검사하는데, 이 검사가 생각 이상으로 아팠다.  어른들이야 아파도 참겠지만, 누리가 울고불고.  결국은 검사하시는 분 둘, 지비와 내가 붙어서 완력으로 할 수밖에 없어서 아쉬웠다.  인터넷에서 본 경험담에 아이들은 비교적 덜 아픈(그리도 다들 운다고들) 목안 점막만 검사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그건 유아들에게만 해당되는지.  아이가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나를 제대로 검사해야 한다며 한참 동안 검체를 채취.(ㅠㅠ )  다음 기차 시간이 우리 도착 1시간 뒤였는데, 우리가 검체를 채취할 때 다음 기차를 이용한 승객들이 도착했으니 부산역에서 한 시간 정도 보낸 것 같다.  그리고 한시적으로 방역 택시로 운영되고 있는 장애인용 두리발 택시를 타고 자가격리를 한 언니 집에 도착했다.  언니네에 도착해서 가족들에게 잘 도착했다고 문자를 보낸 시간이 새벽 2시.  우리가 토요일 6시 집에서 예약한 택시를 타고 출발해서 한국 언니네 도착한 게 월요일 새벽 2시.  그 시간이 영국시간으로 일요일 저녁 6시였으니 정확하게 24시간의 여정이었던 셈이다.  잠도 오고 피곤해서 머리가 핑핑 돌았지만 배가 고파서 언니가 준비해둔 빵과 과일을 먹고 새벽 4시가 돼서 잠이 들었다.

 

지비는 혼자서 시설격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만족하고, 이 '신기한 경험'을 휴가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의 방식은 유럽과 영국은 절대로 해내지 못할 시스템이라는 총평.  개인과 자유의 개념이 중요시 여기기 때문이라는데, 그보다는 공동체 의식과 제조업의 부재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이유인 것 같다.  한국 사람들도 마스크가 자신을 완전하게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걸 안다.  유럽 사람들은 그래서 쓰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은 공동체의 위험을 줄여, 공동체에 포함된 개인도 위험을 줄이자는 것인데 거기까지 생각을 끌고 가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의문이다.  내게는 가을학기에 누리와 우리를 어떻게 보호할지 과제가 남았다.  영국에서는 닫힌 공공장소, 대중교통 내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면서 학교에서는 필요하지 않다고 교육부가 정하고 있다.  그 근거는 나이가 낮을수록 치명률이 낮다는데서 찾는 것 같다.  글쎄요다.  치명률은 낮지만 전파력까지 낮다고 할 수 없다.  학교 안 마스크 착용 - 도대체 누구와 어디서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과연 누가 동의해줄지 의문이다.  그걸 생각하면 벌써 피곤하다.  그건 한 달 뒤에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

 

자가격리 앱이 불편하다는 평가가 많다.  앱이 불편한건지, 자가격리가 불편한 건지. 어차피 한시적으로 사용하는 앱인데 가벼운 게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여러 번의 서류를 작성하는 것보다 그 안의 정보를 공유하면 좋겠다.   나의 경우는 자가 격리하면서 컴퓨터 앞에 있으니 휴대전화를 따로 쓸 일이 잘 없었다.  그랬더니 자주 휴대전화 움짐이 없다는 메시지가 자주 떠서 간간히 휴대전화를 움직여줘야 했다는 정도.  그건 불편함이라고도 할 수 없다.  하루 두 번 체온 체크 역시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그보다 불편한 것은 쓰레기 배출이었다.  우리가 확진자가 아닌데, 자가격리 후 기간 동안 사용한 쓰레기를 의료용 봉투에 담아서 다시 종량제 봉투에 담아 배출해야한다.  2주 동안 쓰레기를, 여름철에 보관하는게 문제였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쓰레기를 씻어서 보관했는데, 그래도 생겨나는 음식 쓰레기들이 있었다(과일껍질).  확진자가 나왔을 때 쓰레기를 따로 배출해야하는 건 이해할만 하다.  이 부분은 좀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자가격리가 시작되고 며칠 후 우리가 타고왔던 비행기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후들후들.  혹시 확진자 좌석이 어딘지 여쭤봐도 되냐고 했더니 우리가 밀접촉자라는 건 우리 앞뒤 옆으로 3열 안이라고.(ㅠㅠ )  그 연락 뒤로 며칠 갑자기 기침이 나는 것 같고, 목이 아픈 것 같고.  사람이 그렇다.  다행히 그 뒤로도 별다른 증상이 없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자가격리가 끝나기를 기다릴 수 있었다.

 

 

 

 

+

 

생각보다 반나절 빨리 자가격리 해제 연락을 받았다.  친구에게 듣자하지 자정에 자가격리가 끝나면 시설 격리하는 사람들이 1박 요금을 더 내야 해서 정오에 끝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덕분에 생각하지 못했던 반나절을 신나게 보냈다.  쇼핑몰에 가서 누리 수영복도 사고, 핫하다는 카페에 커피도 마시러 가고, 자축의 의미로 초밥도 먹었다.  Covid-19이 아니어도 갔을 곳이지만, '덕분에' 더 즐거운 시간이 됐다.  때마다 마스크를 챙기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덕분에' 가능한 일상이 고마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