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6년

[book] 그대 아직도 부자를 꿈꾸는가 - 우리시대 부모들을 위한 교양 강좌

토닥s 2016. 12. 16. 20:20

박경철 외(2011). 《그대 아직도 부자를 꿈꾸는가》.  심상정 엮음.  양철북.


한국에서 짐을 배로 보내면 무엇을 담았는지 잊을만하면 짐이 도착한다.  이 책도 받아들고 '내가 샀나?'했다.  책을 펼치고 날개에 담긴 짧은 소개 글을 읽으면서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현직 국회의원 심상정이 국회의원 선거에 패배하고 지역에서(고양) 마을학교를 운영할 당시 진행한 강좌들을 글로 엮어 낸 책이다.  강사로 초청된 사람들은 박경철, 정태인, 이범, 나임윤경, 윤구병, 신영복, 조국, 심상정, 이이화.


한국 밖에서 사니 아무리 핫한 책이 생겨도 그 흐름에 읽기는 어렵다.  읽고 싶어도 목록에 담았다가 한국에 가서 읽거나 사오거나, 이미 핫한 유행은 지나가버린 뒤, 한다.  그런탓에 '시의성'이 필요한 책들을 읽지 말자고 마음을 정했다.  물론 이런 책들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책들은 지나서 읽으면 의미가 약해지는 경우가 많고 또 두 번 읽어지지 않는다.  주변에 이런 책을 나눠 읽을만한 사람이 있으면 영국까지 들고온 수고로움이 무색하지 않을텐데, 그런 사람도 없고.  그래서 당분간 문학(?)을 읽자고 마음을 정했는데, 한국가서 눈에 뭔가가 씌였던지 이 책이 영국에 있는 내 손에까지 오게 됐다.


책을 펼쳐들고 놀란 것은 2012년 국회의원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지렁이 꿈틀하는 심정에서 엮어진듯한 '오래된 책'이라는 점이다.  책은 2011년도에 만들어졌다.  '유행타는 책은 안읽으려고 했는데'하면서, '영국까지 왔으니'하면서 숙제 헤치우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흘러도 한참 흐른 이 책이 아직도 한국사회에 유효하다는 사실에 두번째 놀랐다.  그 동안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 - 특히 교육은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책의 부제가 '우리 시대 부모들을 위한 교양 강좌'인 것처럼 교육에 무게를 둔 강좌들의 엮음이다.


그런데, 2012년과 2016년 사이 사실 큰 변화/사건이 있었다.  낡은 교육관행과 부모들의 욕망에는 변화가 없는듯하지만, 겉보기엔 그러하지만, 2014년 많은 시도에서 일명 진보교육감들이 선출됐다.  이 진보교육감들의 성과는 잘 보이지 않지만, 그들의 하루하루는 전쟁일꺼라고 추측해본다.  교육관료/행정들은 생각보다 낡았고 생각보다 더 견고하다. 

그리고 우리는 2014년 세월호 사건을 겪었다.  이 사건은 한국사회에 많은 질문과 과제 던져줬다.  이 사건으로 (아직도 진행중이지만) 부모들의 욕망에 작으나마 진동이 있었다.  물론 그 진동도 이제는 사라져 원점으로 돌아간듯하지만.  그래서 이 책이 여전히 읽을만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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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in 서울'을 믿는 한국의 부모들이, 혹은 그런 부모들의 아이들과 함께 아이를 키워야 하는 또 다른 부모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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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도중 12월 9일 한국에 큰 변화가 있었다.  그 즈음해서 신영복 선생님의 강연 부분을 읽고 있었는데, 한 단락 한 단락 생각할 부분이 많았다.  강연자 중에서 이범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교육 시장에서 일하다 지금은 교육정책관련해서 강연도 많이하는 그런 사람이 있다.  나는 사실 이 사람의 글과 평가에 대해서 판단 유보인데, 고기도 먹어본 사람들이 먹을 줄 안다는 말처럼 사교육을 통해서, 아이의 성공을 통해서 부모들이 희망하는 욕망(?)을 잘 이야기해준 것 같다.  반면 인지도와는 다르게 재미없는 글(정태인, 조국)도 있었고 이야기를 하다말고 끊어버린듯한 글(이이화)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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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난 뒤 BBC에서 제작한 영국 웨일즈 고등학생들의 한국 강남 소재 고등학고 3일 체험을 다룬 프로그램을 봤다.  웨일즈는 영국 내에서도 학업 성취도가 떨어지는 지역이다.  가난하기도 하다.  학업 성취도라는 건 세계적으로 동시에 실시되는 시험(수학과 언어, 과학 등)으로 판단된다.  주로 아시아 국가들이 최상위권이고, 웨일즈는 이들 순위 최하위다.  구성이 재미있어 흥미롭게 봤는데, 마지막 부분은 씁쓸하고 부끄러웠다.  학업 성취도 최상위권인 한국인 15-30세 자살율은 세계 최고다.  15-30세로 묶었지만 십대 자살률로 나눠도 그럴테다.  학업 성취도와 아이들의 생명을 선택하라면 나는 아이들의 생명을 선택하겠다.  나와 같은 선택, 혹은 두 가지 중 하나가 '적어도 고민이 되는'사람이라면 이 책이 의미있을테다.  그런데 나도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한국엔 '그래도 학업 성취가 더 중요하다'고 할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