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6년

[life] 보리차와 라면

토닥s 2016. 11. 8. 23:27
또 보리차를 끓였다.

누리가 감기에 들면 내가 꼭 하는 일 중에 한가지가 보리차를 끓이는 일이다.  콧물을 줄줄 흘려도 해열제/진통제를 주는 것  외에 딱히 해줄 게 없다.  그냥 물보다는 낫겠지하면서.  세상이 좋아져서 끓인 물에 10분만 넣었다 빼면 되는 유기농 보리차 티백으로 달달한 보리차를 끓인다.


그리고 라면을 먹었다.

누리가 아프면 그렇지 않아도 예민한 성격이 더 예민해진다.  누리 말고 내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하루하루 미루던 누리방 커튼을 달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엎친데 겹친다더니 멀쩡하던 누리방 블라인드가  목요일에  갑자기 떨어졌다.  나를 재촉하는구나 싶어 그날 당장 창문에 버블랩(일명 뽁뽁이)를 붙이고 금요일에  IKEA에 가서 커튼 재료를 사왔다.  그런데 포장을 뜯고 보니 벽에 설치할 커튼 걸이를 샀는데 그걸 벽에 박을 수 있는 나사(screws)는 없다.  수요일쯤 누리 어린이집 마치고 가서 사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금요일 오후 독감예방주사를 맞은 누리가 골골골 아프기 시작.  거기다 갑자기 추워졌는데 토요일은 야외활동.  일요일에 아침먹고  IKEA로 가서 벽에 커튼 걸이를 박을 수 있는 나사를 사와서 그날 밤 커튼 설치 완료.

그러는 며칠 동안 지비와 참 많이 싸웠다.    차 안에서 막히는 길 때문에 싸우고, 벌써 출발하기 전에 어느 길로 갈꺼냐 찾으며 싸운 상태에서, 커튼을 설치하면서는 DIY를 좋아하지만 재능은 없는 지비에게 모자란 영어로 내가 설명해주려니 답답해서 싸우고.  그 와중에 지비가 축구 결과를 보러 TV 앞으로 잠시 자리를 뜨는 바람에 내가 완전 폭발.


그래서 월요일 점심은 컵라면을 먹었다.  몸이든 마음이든 추울 땐 라면을 먹는다.  그때까진 좋았는데 속이 더부룩해서 오후 내내 고생했다.  정말 늙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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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어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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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보다 월요일 누리 상태가 나아서 화요일인 오늘 예정된 어린이집 과학박물관 나들이를 갈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아침에 잃어나니 누리의 숨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어린이집 과학박물관 나들이에 못간다고 연락하고 누리를 데리고 어렵게 예약한 GP에 다녀왔다.  아침 9시가 땡 되는 순간 열심히 전화를해서 15분간 대기 이후 겨우 잡은 예약.  그나마 당일 예약을 할 수 있는 게 정말 다행이다.

역시 의사는 애가 걸어서 올 수 있는 상태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며 견디라 한다.  2~3일 견뎌보고 더 심해지면 다시 오라는 똑같은 말.  그래도 아직까진 폐, 귀, 목에 염증이 없음을 확인했다는데 안도하며 집으로 걸어왔다.


터덜터덜 걸어오는데 집 앞에 떨어진 낙엽을 보고 누리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낙엽이 많이 쌓인 곳만 골라 발을 쑥 밀어넣고 걷는다.  마침 햇살마저 좋아서 기분은 조금 나아졌다.  누리도 나도.  사진을 찍자니 포즈를 잡는다.  나는 늘 포즈 좀 잡지말라고 그런다.  누굴 닮아 이런지.

이렇게 또 겨울이 오나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