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4년

[etc.] 알싸한 느낌

토닥s 2014. 12. 20. 06:22

1.


오늘 낮에 오랜만에 만난 S님.  누리를 두 시간 여 견뎌주신 것도 고마운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가 탈 지하철 문이 열리는 곳까지 유모차를 밀어주셨다.  지하철에 타고서 바로 내 등 뒤의 문이 닫혔다.  유모차를 한 켠에 밀어두고 빈 자리에 앉으려고 했는데, 앞을 막아선 한 여성 때문에 이도저도 못하고 있었다.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이 여성에게 몇 차례 "excuse me (실례합니다)" 말했다.  사람이 많이 없고 조용한 지하철 안에서 이 여성만 빼고 모두들 이 여성과 나를 쳐다봤다.  점점 목소리가 커진 "excuse me"의 횟수가 5~6번쯤 되었을 때 이 여성이 뒤돌아보며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나?) "sorry (미안합니다)"하고 막아선 길을 비켜주었다.  유모차를 한쪽에 세우고 빈자리에 앉았다.  누리를 무릎에 앉히고 정리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그 여성이 내게 다가와서 말했다.  "sorry, I am a deaf (미안해요, 나는 듣지를 못해요)".  순간 당황은 했지만 내 나름대로 최대한 입을 벌렸다 오므렸다를 반복하며 "no worries, I am fine (신경쓰지 말아요, 나는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그녀가 내 입을 보았는지, 그래서 내 말을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내게 다가와서 미안함을 표현해준 그녀에 대한 나의 인사였다.  사실 그녀는 굳이 내게 와서 미안함을 표현할 필요가 없었는데.  하여간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알싸한 느낌이었다.


2.


지난 가을 지비가 직장을 옮겼다.  영국에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만한 마트.  물론 그 마트의 IT팀.  지비는 한 동안 매일매일 신기한 경험(?)을 집에 돌아와 들려주곤 했는데, 그 중 한가지는 회사에 오래 일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주별 조회, 월별 조회, 분기별 조회 그런 것들이 있는데 "아 이번엔 누가누가 30년 근속입니다, 40년 근속입니다"라고 말해준다는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지비의 IT 팀원 중에 한 사람은 24년 차인데, 처음 마트의 캐셔로 입사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내 기회를 통해서 이팀 저팀을 경험하고 교육을 받아 지비가 있는 IT팀에 합류한 것은 10년 전.  그 사람이 오늘 이 회사를 그만둔다고 노티스를 준 모양이다.  그래서 그 사람에 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캐셔로 시작해 IT 전문직으로 다른 곳에 옮겨 가게 되었는데 대학도 나오지 않은 사람이라고 한다.  지비의 회사는 직원들에게 교육 기회를 주거나 지원하는데 있어 만족도가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카트'를 이 떠나가는 동료의 경우와 함께 생각하니 또 알싸한 느낌.


3.


사람 사는 세상이 참.. 알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