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7년 18

[life] 벌써 크리스마스

벌써 일주일도 전에 누리가 크리스마스 트리 타령을 시작했다. "어 다음주에"하고 답하고, 바쁜 한 주를 보내는 동안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토요일 집에 돌아와 다시 시작된 크리스마스 트리 타령. 내친김에 꺼냈다. 12월에 들면 꺼내려고 했던 크리스마스 트리인데, 어차피 12월도 며칠 남지 않았다. 작년에 썼던 것들을 꺼내 크리스마스 준비 완료. 사실 가장 노동(?)이 필요한 크리스마스 카드가 남긴 하였다. 그 와중에 누리는 계속 내 옆에 와서 "산타 할아버지가 배가 고파"타령을 했다. 그 말은 주중에 사둔 크리스마스 디저트 민스 파이를 발견하고 그걸 먹고 싶다는거다. 여기 아이들은 12월 24일 산타와 루돌프가 먹을 간식을 준비해두고 잠이 든다. 주로 민스 파이와 당근.스페인으로 이주하는 이웃의 송별 파티에..

[life] 역시 영국

멍멍이들의 천국 누리가 어릴 땐 공원과 놀이터를 매일 출근했다. 그때마다 볼 수 있는 건 나 같이 유모차를 끌고 있는 엄마들이거나 개들과 산책하는 사람들이었다. 듣자하니 영국에선 개를 하루에 두 번 산책 '시켜야 한다'고. 그래서인지 개들이 크기를 떠나 다들 순한 편이다. 마치 아이들처럼 하루에 두 번 바깥 공기를 마시며 맘껏 뛰니 집 안에서, 다른 개들과의 관계에서 스트레스가 없는 편이다. 물론 그래도 문제성 개는 늘 존재하겠지만. 나이든 개를 싣고 있는 개용/고양이용 유모차도 가끔 본다. 공원에서 그런 유모차를 신기해하며 보던 우리에게 그런 유모차를 끌던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여기는 개들의 천국"이라고.오늘 장을 보러 갔더니 할로윈 상품이 빠져나간 자리를 빼곡히 크리스마스 상품들이 채우기 시작했..

[life] 일시정시

블로그가 뜸하다 싶으면 그건 바쁘다기보다 누리가 아프다는 신호다. 며칠 간의 감기 투병(?)을 뒤로하고 누리를 학교에 보내고 며칠 간 먹거리를 사들고 집에 들어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오랜만에 오래된 음악을 골랐다. 하긴 영국까지 끌려온 CD들은 다들 오래됐다. 음악을 들으며 할 일을 하려고 했는데 일시정지 상태로 한참 동안 음악만 들었다. 그럴 때도 있었다. 이 CD의 한 곡을 하루 종일 무한반복해서 듣던 시절(思い出の風 Omoide No Kaze). 그 때가 생각나네. 몸은 제약이 많아도 영혼은 자유로운 시절이었는데, 지금은-. + 아침에 장을 보면서 커피 두 봉투를 샀다. 차에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차 안에 커피 냄새가 가득했다. 그 냄새를 더 많이 마시려고 깊이 깊이 숨쉬면서 '커피 냄새 하나가..

[life] 가을가을한 하루

누리가 학교 병설 유치원에 들어가고 여유가 생긴 건 분명하다. 그런데 학교생활 일주일 후 지난 주 아파서 이틀 결석, 이번 주 아파서 하루 결석을 하니 그 여유도 아직은 들쭉날쭉 그렇다. 그 들쭉날쭉 틈을 겨우 맞춰 오랜만에 친구 A를 만났다. 어젯밤 내린 비로 공기는 상쾌하고 오늘 날씨는 맑아 좋아 걷기도 좋았다. 누리랑 오면 다소 먼 거리라 부담스러운 길을 골라 큐가든 구석구석을 누볐다. 그리고 큐가든에 갈 때면 늘 지나기만하고 들어가보지 않은 찻집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크림티 - 티와 스콘을 전문으로 하는 집이었는데 티 대신 커피도 가능하다고 해서 시켰다. 그런데 당연하다는 듯이 티를 내온, 다소 불친절하고 비싼, 하지만 그 집에서 구운 작은 스콘이 너무 맛나는 집이었다. The original ..

[life] 집집마다 아들들

아들 둘을 둔 언니가 아들 셋이라고 이야기할 땐 웃었다. 얼마 전 다녀간 친구도 역시 아들 둘인데 그 비슷한 말을 했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젠 그 말에 웃어도 웃는 게 아니다.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 되고 보니. 여러가지 면에서 지비의 어깨에 많은 짐이 지워져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상은 주로 내가 끌고 간다. 돈을 벌고 있는 사람이 본인이라는 점에서 지비는 본인이 우리 가족의 보호자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가끔/자주 보호자의 보호자, 아니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 평생교육이라며 수 없이 반복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좀 피곤한 건 사실이다. 여행을 하게 되면, 새로운 곳의 정보가 둘에게 있건 없건 방향을 잡고 결정을 하는 건 내 몫이다. 특히 밥을 먹는 것은 물론 커피를 마시는 것도. 요..

[life] life is sweet

요즘 누리는 오트밀 포리지(죽)에 빠졌다. 그 바쁜 아침에도, 한 숟가락이라도 먹어야 한다. 그래서 커피를 내리면서 오트밀 포리지도 끓여내느라 바쁘다. 우유와 끓이며 계속 저어주어야 한다. 간단하지만, 쉽지 않고, 그러나 든든한 식사다. 폴란드에 여행을 가서도 누리가 먹을 마땅한 음식이 없어 제대로 끼니를 채우지 못하면 까페에서 포리지를 사주곤 했다. 폴란드에 들어간 영국 커피 체인에서 영국 까페에서 먹던 포리지 그대로 먹을 수가 있었다. 거기서인가 비행기에서인가 포리지를 시키고 받았던 꿀을 지금도 먹고 있다. 한 2주쯤 먹고나서 며칠 전 발견한 글귀. Life is sweet. 그렇다고 믿어야지 어쩌겠나. 쓴 에스프레소를 입안에 털어넣고 삶은 달달하다고, 그럴꺼라고 희망하며 우산을 펴들고 까페를 나선다.

[life] 여행의 방법과 기술

정말 폭풍 같은 2주였다. 작은언니가 2주 전에 오고 며칠 뒤 큰언니와 형부가 왔다. 그리고 다함께 폴란드에 다녀왔다. 쉽지 않은 여행이었다. 빠듯한 일정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고, 그 못지 않게 35도에 가까운 폴란드의 기온도 큰 어려움이었다. 다양한 여행의 경험과 방법, 그리고 기대치를 조율하는 게 또 하나의 어려움이었다. 그래도 가족이니까 끝낼 수 있었던 여정이었다. 사실 여행에는 다양한 방법/기대가 있으니 기술이라는 건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가방을 싸는 것에는 기술이 필요하긴 하다. 나의 경우는 누리가 생기기 전과 후 여행이 확연히 다르다. 물론 그 전에도 저질체력으로 부지런한 타입은 아니었지만. 더 느려졌고, 더 간단해졌다. 아이 짐으로 여행 가방은 더 커졌지만. 그러..

[life] 방학과 휴가

누리의 수두로 조기방학을 시작했다. 짧은 중간방학도 바쁘게 지냈는데 이번엔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방학 전 일주일도, 방학 후 일주일도 누리의 수두로 꼭 필요한 외출이 아니면 하지 않는다. 장보기도 지비의 퇴근 길에 꼭 필요한 것을 부탁하거나 온라인 식재료 상점에서 배달을 시켰다. 그래도 이번주는 수두 자국에 딱지가 앉아, 더 이상 옮기지는 않는 상태가 되면서 집에거서 가까운 공원/놀이 나들이를 짧게 몇 번 하기는 했다. 정말 짧게. 비가 너무 자주 쏟아져 갈 수 있는 날도 며칠 되지 않았고 가서도 서둘러 돌아와야 했던 날이 몇 번 있었다. 조용하게 방학을, 7월을 보내고 있다. + 아침을 서둘러야 할 일이 없으니 지비가 출근하고 나면 누리와 나는 기상한다. 정말 방학생활 풍경. 주로 누리..

[life] 야식 말리는 시누이

7월 들어오고 누리가 과외로 듣던 체육 수업들도 마무리되고, 어린이집도 곧 방학에 들어간다. 다음주를 마지막으로 9월엔 병설 유치원(여기서는 리셉션이라고 한다)로 옮기게되니 방학이 아니라 졸업인셈. 이번주 두 번의 체육수업 데모 수업이 있었고(발표회 격) 오늘은 어린이집의 여름파티가 있었다. 마지막까지 갈까말까 망설이다 다녀왔는데 한 시간은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서있었고, 나머지 한 시간은 다른 부모들(여기서 태어난 폴란드인 이민 2세대인 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누다와서 보람찼다는 지비의 총평. 여름파티가 저녁 6시라 저녁은 어떻게 하나 묻는 지비에게 나는 가서 맥주나 한 두 병 마시고 집에 와서 누리 재우고 라면 먹을꺼라고 미리 말했다. 늦도록 친구들과 뛰어놀 수 있는 기회가 누리에게 특례라면, 나에게 ..

[keyword] 이슬람공포증 Islamophobia

이슬라모포비아 Islamophobia - 이 단어를 귀로들어보고 눈으로 읽어 봤지만 내 입으로 말해본 기억이 없어서 '이슬라모포비아'라고 쓰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이슬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이르는 말이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주 이 단어는 인종차별적 행동/범죄와 늘 함께 다닌다. 어제 잠시 들은 라디오의 이슈였다. 게스트로 나온 런던 억양의 젊은 남성이 자신의 여자형제들이 히잡을 쓰고 다니면서 받는 압력을 이야기했다. 히잡을 쓰고 다니는 이슬람 여성들은 인종차별적 행동/범죄의 희생량이 되기 쉽다. 구분이 쉬우니까. 이슬라모포비아 피해자의 거의 100퍼센트가 여성이라는 게스트의 설명. 사실 이슬람 남성도 구분이 어렵지는 않다. 이게 요즘 말하는 '여혐'과 연관은 없을까 생각했지만, 그보다는 이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