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6년 46

[life] 누리의 킴미 2016 - 제대로 크리스마스

누리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니 크리스마스가 더 중요하게 다가온다, 누리에게. 이곳에서 크리스마스는 한국의 명절 격이라 조용히 지나가려 해도 그러기가 어렵다. 그럴바엔 즐기기로 했다. 간소하게라도 챙길껀 챙기면서. 민스 파이 mince pie라는 간식인데, 숏크러스트에 과일/잼/건포도 같은 것들이 채워져 있다. 처음 영국와서 민스 파이를 권하길래, 고기 파이 생각하고 거절했던 경험이 있다. 단음식 싫어해서 사지 않았는데, 영국의 크리스마스에서 뺄 수 없는 부분이라 우리도 샀다. 크리스마스 때 먹으려고 워커스라는 브랜드에서 주문해뒀는데 마트에 갈 때마다 누리가 먹고 싶어해서 크리스마스용은 그대로 아껴두고 일상용으로 마트에서 구입해서 야금야금 먹었다. 누리는 민스 파이의 팬이 됐다. 영국의 크리스마스에..

[book] 그대 아직도 부자를 꿈꾸는가 - 우리시대 부모들을 위한 교양 강좌

박경철 외(2011). 《그대 아직도 부자를 꿈꾸는가》. 심상정 엮음. 양철북. 한국에서 짐을 배로 보내면 무엇을 담았는지 잊을만하면 짐이 도착한다. 이 책도 받아들고 '내가 샀나?'했다. 책을 펼치고 날개에 담긴 짧은 소개 글을 읽으면서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현직 국회의원 심상정이 국회의원 선거에 패배하고 지역에서(고양) 마을학교를 운영할 당시 진행한 강좌들을 글로 엮어 낸 책이다. 강사로 초청된 사람들은 박경철, 정태인, 이범, 나임윤경, 윤구병, 신영복, 조국, 심상정, 이이화. 한국 밖에서 사니 아무리 핫한 책이 생겨도 그 흐름에 읽기는 어렵다. 읽고 싶어도 목록에 담았다가 한국에 가서 읽거나 사오거나, 이미 핫한 유행은 지나가버린 뒤, 한다. 그런탓에 '시의성'이 필요한 책들을 ..

[book] 몇 번을 지더라도 나는 녹슬지 않아

가와타 후미코(2016). 〈몇 번을 지더라도 나는 녹슬지 않아〉. 안해룡·김해경 옮김. 바다출판사. 일본의 저널리스트가 모으고 쓴 재일본 조선여성들의 이야기다. 일본강제점령기 때 가족을 찾아 혹은 결혼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한 경우도 있고, 일본에서 조선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고 자란 경우도 있고, 일본군강제위안부 경우도 있고, 히로시마 원자력폭탄 피해자도 있으며, 일본에서 차별을 겪다 북한으로 가족을 떠나 보낸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런 가족사를 가지고 일본에 정착한 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를 겪고 다시 이민자가 된 경우도 있다. 전쟁을 겪고, 차별을 경험한 조선여성들의 이야기. 너무나 강하게 다가오는 책의 제목은 일본고등법원에서 위안부 판결에서 패소된 후 ..

[life] Christmas is around the corner

한 해 한 해를 보내보니 이렇다. 일단 2월엔 발렌타인데이, 3월~4월엔 부활절, 5월엔 어머니의 날, 6월엔 아버지의 날, 7월엔 바베큐와 여름휴가/방학, 10월엔 할로윈, 11월부터 크리스마스, 12월 말에 박싱데이, 해를 넘겨 1월엔 여름휴가 예약. 소비자가 쉼없이 물건을 사고 돈을 쓰도록 광고를 한다. 특별한 계획이 없던 우리도 때마다 날라드는 전단지를 보면 뭔가 계획을 세우고 돈을 써야할 것 같은 강박감마저 생긴다. 10월말 할로윈이 끝나자말자 한 해 중 가장 큰 이벤트(?)인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마케팅이 시작됐다. 누리도 이젠 크리스마스도, 산타도 안다. 아직 선물과의 연관성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지난 주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 때문에 카드와의 연관성은 알게 됐다. 자기에게도 카드를 달란다...

[life] 오늘은 부자예요

한국의 내 또래 친구들처럼 큰 차도 없고, 집도 없지만(있어도 태반이 빚이다, 심지어 내 명의도 아니다) 오늘은 부자다. 우표 부자. 바다 건너 갈 크리스마스 카드들은 오늘 발송 완료. 한 주쯤 쉬었다가 다시 작업 해야지. 가끔은 벽에 댄 독백 같기도 하고, 짝사랑 같기도 한데 한 가득 우체통에 밀어넣을 때만큼은 훈훈하다. (발송요금을 지불할 땐 헉헉..) + 나는 정말 올드하구나.

[life] 보리차와 라면

또 보리차를 끓였다. 누리가 감기에 들면 내가 꼭 하는 일 중에 한가지가 보리차를 끓이는 일이다. 콧물을 줄줄 흘려도 해열제/진통제를 주는 것 외에 딱히 해줄 게 없다. 그냥 물보다는 낫겠지하면서. 세상이 좋아져서 끓인 물에 10분만 넣었다 빼면 되는 유기농 보리차 티백으로 달달한 보리차를 끓인다. 그리고 라면을 먹었다. 누리가 아프면 그렇지 않아도 예민한 성격이 더 예민해진다. 누리 말고 내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하루하루 미루던 누리방 커튼을 달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엎친데 겹친다더니 멀쩡하던 누리방 블라인드가 목요일에 갑자기 떨어졌다. 나를 재촉하는구나 싶어 그날 당장 창문에 버블랩(일명 뽁뽁이)를 붙이고 금요일에 IKEA에 가서 커튼 재료를 사왔다. 그런데 포장을 뜯고 보니 벽에 설치할 커..

[keyword] 노키즈존 in Korea VS 콰이어트존 in UK

노키즈존 No Kids Zone in Korea 지난 해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누리가 잠든 동안 한국 뉴스를 봤다. 한국에 어린이들 동반을 금지하는 식당 같은 곳이 속속 생기고 있다는 그런 뉴스였다. 해외사례로 노키즈존을 시행하는 영국의 한 펍(pub 선술집)이 등장했다. 우리에게 누리가 생겨도, 그 이전부터 우리 부모님도 식당 같은 장소에서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줘도 제지 하지 않는 '요즘 젊은 부모들'에 대해서 말씀하시곤 했다. 그런 건 나도 싫었지만 그 부모에 대해서 뭐라고 하지 못했던 건 내 미래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부모가 되지 않을까보다는 내가 아이를 제지할 수 있을까다. 아이들이란 게 그렇다. 인터넷에서 이런 건으로 푸념과 비난이 오갈 때 '왜 한국 아이들만'이..

[life] 감을 깎다가

요즘은 밤마다 감을 깎는다. 딸기, 블루베리, 라즈베리의 계절이 끝났다(딸기는 스트로베리). 이제 이런 베리들은 맛없고 비싸다. 단단한 과일들의 계절이 왔다. 몇 년 전만해도 영국은 감이 참 흔하지 않은 과일이었는데, 사람들이 먹기 시작하자 수입이 늘었는지 이젠 흔한 과일이 되었다. 특히 요즘 같은 계절엔. 누리도 잘먹고, 가격도 싸서 사두고 사과와 함께 매일 밤 깎아 먹는다. 감을 깎다보니 중학교 2학년 때 단감을 좋아한다던 담임 선생님이 떠오른다. 스타일이 있는 사회 선생님이었는데, 좀 멋졌다. 어느날 좋아하는 과일 이야기를 하며 단감이라고 말했다. 보통은 수박이거나 딸기 뭐 그런거 아닌가. 홍시는 싫고 사각사각한 느낌이 좋다나. 그 이후로 (단)감을 보면 늘 그 선생님이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보니 ..

[life] 회사는 왜 그럴까?

지비는 로펌에서 일한다. 아쉽게도 변호사/법률가는 아니다. 로펌에서 일하는 IT 스태프인데, 하는 일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고 듣자하니 네트워킹 엔지니어라는 것 같다. 역시 잘 모른다. 회사가 자율시간 근무제와 재택근무를 도입한다고 해서 좋아했던 것이 엊그제인데 이는 회사의 변호사/법률가들에게 해당되는 일이고 이들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IT 팀이 포함된 비지니스 서포트 파트는 장기적으론 주7일/24시간 , 단기적으론 8am-8pm 지원 시스템으로 운영한다며 근무시스템이 바뀌게 되었다. 두 개의 IT팀이 운영되고 있는데, 그 중 한 개 지비가 소속된 팀에선 원래 1명의 결원이 있었고, 최근 심장질환 돌연사로 동료 한 명을 잃었다. 그래서 지비 포함 3명의 팀원이 있는 팀이 8am-8pm 지원 시스..

[life] 이탈리안의 유머코드

지난 일요일 일주일 동안 우리 집에 두 딸과 함께 머물런던 친구가 다음 여행지로 떠나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만 나는 심한 몸살 감기를 동반한채로. 아침 먹고 친구를 보내고 빨래 두 번 돌리고, 집 청소하고, 점심 먹고, 혼자 낮잠을 한숨잔 뒤, 장도 보고 커피도 마실 겸 집을 나섰다. 까페에 들어가 지비와 내가 마실 것을 주문한 다음 계산하고 커피를 받기 위해 바 앞에 서 있다가 누리가 마실 것 - 베이비치노 주문을 잊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막 다음 손님의 주문을 받고 있던 직원에게 "미안한데 잠시만"하고 간절한 표정으로 불렀다. 주문 받던 손님에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하고 내쪽으로 몸을 숙인 직원이 "어떻게 도와줄까?"하고 물었다. 내가 "미안한데 내 딸에게 줄 베이비치노 주문하는 걸 잊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