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 7

[life] 가을가을한 하루

누리가 학교 병설 유치원에 들어가고 여유가 생긴 건 분명하다. 그런데 학교생활 일주일 후 지난 주 아파서 이틀 결석, 이번 주 아파서 하루 결석을 하니 그 여유도 아직은 들쭉날쭉 그렇다. 그 들쭉날쭉 틈을 겨우 맞춰 오랜만에 친구 A를 만났다. 어젯밤 내린 비로 공기는 상쾌하고 오늘 날씨는 맑아 좋아 걷기도 좋았다. 누리랑 오면 다소 먼 거리라 부담스러운 길을 골라 큐가든 구석구석을 누볐다. 그리고 큐가든에 갈 때면 늘 지나기만하고 들어가보지 않은 찻집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크림티 - 티와 스콘을 전문으로 하는 집이었는데 티 대신 커피도 가능하다고 해서 시켰다. 그런데 당연하다는 듯이 티를 내온, 다소 불친절하고 비싼, 하지만 그 집에서 구운 작은 스콘이 너무 맛나는 집이었다. The original ..

[life] 집집마다 아들들

아들 둘을 둔 언니가 아들 셋이라고 이야기할 땐 웃었다. 얼마 전 다녀간 친구도 역시 아들 둘인데 그 비슷한 말을 했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젠 그 말에 웃어도 웃는 게 아니다.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 되고 보니. 여러가지 면에서 지비의 어깨에 많은 짐이 지워져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상은 주로 내가 끌고 간다. 돈을 벌고 있는 사람이 본인이라는 점에서 지비는 본인이 우리 가족의 보호자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가끔/자주 보호자의 보호자, 아니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 평생교육이라며 수 없이 반복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좀 피곤한 건 사실이다. 여행을 하게 되면, 새로운 곳의 정보가 둘에게 있건 없건 방향을 잡고 결정을 하는 건 내 몫이다. 특히 밥을 먹는 것은 물론 커피를 마시는 것도. 요..

[+1820days] 그 날이 다가오고 있다.

2년 전에 한국에서 보낸 누리 생일 일주일 전 전야제 사진이다. 페이스북은 잊지는 않았지만 매순간 기억하지는 않는 과거를 상기시켜준다. '몇 년 전'이라는 타이틀로. 주로 반응이 많았던 글들만 보여주고, 과거 포스팅들은 페이스북 임의대로 삭제 / 저장된다. 페이스북엔 메모만 남겼다가 블로그로 옮겨야지 했던 글들이 숱하게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페이스북은 과거를 상기시키준다는 장점 외에도 더 이상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기억의 조각들을 블로그로 퍼올려야 한다는 부담감도 함께 준다. 이건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 모든 걸 다 퍼올리지는 못해도 여행은 꼭 담아보자는 것이 실천되지 않는 계획이라면 계획이다. 그 밖에도 매년 사용하지 않지만 글들이 저장되어 있어 없애지도 못하는 오래된 홈페이지까지 있다...

[+1819days] 마미 말, 대디 말, 그리고…

지난 8월 가족들과 폴란드에 갔을 때 공항에 도착해서 가방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이 누리와 화장실에 갔다. 손을 씻던 누리가 "어?"하고 화들짝 놀랐다. 마침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었는데 "대디 말"이라며. 누리가 보통 밖에서 듣는 말이래야 영어인데, 그날은 폴란드어였으니 누리에겐 놀라운 사실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마미 말도 할 수 있고, 대디 말도 할 수 있고, 리X코 말도 할 수 있어", "누리는 세 개 할 수 있는데, 이모는 하나 할 수 있어"라고 덧붙였다. 어린이집 일본인 친구 리X코가 영어를 하니 영어가 리X코 말이라고 생각했다. '리X코 말'을 뭐라고 교정해주면 좋을까 생각하다 '영어'가 아닌 'English'라고 알려줬다. 뒤에 다시 언어를 말할 일이 있었는데 아직 쉽게 'English'라..

[+1815days] 학교에 갑니다.

오늘부터 누리는 학교에 간다. 갔다. 1학년은 아니지만 학교에 있는 리셉셥reception/프리스쿨pre-school이기 때문에 학교는 학교다. 한국식으로 풀자면 학교 병설 유치원이다. 특별한 변화가 없으면 내년 9월 이 학교에 1학년으로 그대로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지난 겨울 학교 신청, 올해 4월 결과 통보, 몇 차례 학교 방문, 어제 있었던 신입생 가정방문까지 거쳐오며 오늘을 기다렸다. 학교 신청 9월에 학기를 시작하는 영국의 입학신청은 보통 그해 1월 초에 마감한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고,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사회화되어 가는 시기라서 모두들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겪어보니 공립의 경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없다. 전 국가적인 시스템에 우리가 선호하는 (런던의 경우) 6학교까지 이름을 올릴..

[20170905] 밥상일기 - 여름의 끝물

9월이 되고 며칠이 지났을뿐인데 벌써 춥다. 이상 고온에 시달렸던 유럽과는 달리 올 여름 영국은 계속 서늘했다. 오늘 누리는 놀이터로 가면서 플리스 자켓을 꺼내 입었다. 여름 같지 않았던 여름의 끝, 우리는 여름에 어울리는 간식 몇 가지를 발견했다. 버블티와 냉동과일을 이용한 스무디. 버블티 내가 영국에 오기 전에도 한국엔 이 음료가 있었다. 나랑은 어울리지 않는 음료라 마셔보지 않았다. 영국에 와서 일식집, 베트남음식점에서 마셔보게 됐다. 독특한 맛이었다. 타이베이 여행을 앞두고 검색쟁이 지비가 버블티의 원조가 타이완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지비는 타이완에 가기 전까지 버블티를 마셔보지 않았다. 버블티가 타이완에서 해야 할, 먹어야 할 미션 1호였다. 타이베이에서 두 번 마시고 우리는 팬이 됐다. 런던에..

[20170904] 밥상일기 - 고향의 맛

요며칠 페이스북에 올렸던 고향의 맛 시리즈. 누리에게 어떤 언어를 쓰는가 만큼이나 많이 듣는 질문이 어떤 음식을 먹는가다. 가만히 돌아보면 누리가 생기기 전에는 이곳 음식이 주를 이뤘던 것 같은데, 요즘은 점점 한국음식이 많은 것 같다. 그 쉽다는 된장찌개, 미역국도 못끓이는 처지라 한국음식이라기는 뭣하지만. 한국마트에 장을 보러 갔는데 하이트(수출용)가 할인이라 한 번 사봤다. 그 누군가는 몇 년만에 한국가는 비행기 안에서 마시고 뿜었다는 하이트. 대학시절 히태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던 하이트. 생각보다 맛이 나쁘지 않아서 놀랐다. 수출용이라서 그런가.그리고 하이트보다 중요한 쥐포님. 언니가 런던오면서 들고왔는데, 매일밤 언니들과 술잔을 기울이다보니 마지막 남은 두 마리. 이 날 하이트와 함께 냠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