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2년

[life] 행복한 캠퍼들 Chapter 1.

토닥s 2012. 7. 10. 02:35

지비와 내가 이곳에서 캠핑을 하게 된 건 순전히 지비의 친구 발디와 사라 커플 때문이었다.  2010년의 봄날 그들이 제안했고, 그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땐 사실 '이 나이에 캠핑은 무슨'이라고 생각을 했다.  지비의 극성이라긴 그렇고, 지비의 희망으로 그래 '한 번 가준다'라는 생각으로 Folkstone에 가게 됐다.  그 뒤로 우린 두 해 동안 5월과 8월의 연휴 때마다 캠핑을 갔다.  그 동안 발디와 사라 커플은 헤어졌어도.


처음 간 Folkstone은 기회가 되면 다시 가고 싶은 환상의 캠핑장이다.  영국의 전형적인 이미지라 할 수 있는 하얀 절벽 아래 위치한 캠핑장에서는 밤이면 도버해협 너머 프랑스의 불빛들이 보였다.  두번째로 간 Cambridge-Ipswich는 전형적인 영국 시골길을 걷는 즐거움을 알게 된 캠핑이었다.  세번째로 간 Cornwall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해변과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절경이 잊혀지지 않는 캠핑이었다.  그때 간 오목조목한 Looe라는 작은 마을은 지금도 지비와 내가 아름다운 마을로 손꼽는 마을이다.  네번째로 K선배와 함께 간 Isle of Wight는 캠핑이 아니어도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은 볼꺼리 많은 섬이었다.


그리고 지난 주말, 함께 가기로 한 일행이 이틀 전에 취소하고 호우경보가 내려졌어도 단 둘이서 Oxford로 캠핑을 갔다.  비구름을 쫓아가는 격이어서 비로 큰 고생은 하지 않았지만 평소 이용하던 고속도로가 공사로 닫히고, 문제없던 네비게이션이 작동되지 않는 등 문제가 계속 있었다.  하지만 이번 캠핑에서 지비와 나는 또 다른 소박한 즐거움을 알게 됐다.  떠나갈 때 마음은 '힘들면 돌아온다'였는데 다행히 비는 캠핑을 포기하기엔 아까울만큼 왔고, 생각보다 모바일로 찾는 지도가 정확해서 큰 어려움이 없었다.  대신 지비와 나는 모든 것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을 받아들이고, 없으면 없는대로 적당히 만족하게 됐다.

사실 캠핑이 그렇다.  집처럼 다 갖추어져있지도 않고, 심지어는 돈을 들여가는 일종의 여행인데 고생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장비를 늘여가며 때마다 캠핑을 간다.  가본 사람만 아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 갖추어진 카라반으로 캠핑을 한다면 뭔가 허전할 것 같다는 지비.  좁다란 텐트안에 누워 비오는 소리, 바람 소리 들으며 속닥속닥 이야기하는 즐거움.  춥지만 상쾌한 풀냄새가 깨우는 아침.  그런 것들이 캠핑에서만 알 수 있는 즐거움이다.  아니, 즐거움의 일부일뿐이다.



The Warren, Folkstone (2010)



Oxford Camping and Caravanning Club Site, Oxford (2012)


개인적으론 영국에 처음와서 친구들과 하루 여행으로 갔던 옥스포드를 지비와 함께, 거기다가 뱃속에 아기까지 대동하고 가니 기분이 이상했다.  뭐랄까, 울컥하기도 하고.  복잡하고 신기한 기분? ( ' ');;



Alice's Shop, Oxford (2008)



Alice's Shop, Oxford (2012)


우리는 2~3년 정도는 캠핑은 물론 여행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해서 이번 짧은 여행을 여러가지 우여곡절 속에서도 밀고 나갔다.  그리고 우리의 그 동안 캠핑을 함께 한 작은 텐트도, 테스코에서 £14 주고 산 귀여운 텐트,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둘 아닌 가족이 되면 지금보다 조금은 큰 텐트가 필요하니까.


친구 커플 때문에 시작한 캠핑이었지만, 이제는 둘이서도 캠핑을 즐길 수 있는 캠퍼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은 깨달음과 함께 캠핑을 하지 못하게 됐지만, 우리는 언젠간 다시 짐챙겨서 캠핑을 떠날 것이다.  지비는 아이가 걷기만해도 간단다.  그건 좀 무리일 것 같지만.  당분간은 캠핑이 어렵다는 점에서 여기서 캠핑을 접는다고 말하기보다 그냥 챕터1을 닫는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