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Cooing's

[+1935days] 방학생활 1 - 나들이

토닥s 2018. 1. 5. 22:58

3학기제로 운영되는 영국의 교육 시스템에 아이를 넣으면서 어려운 점은 중간방학이었다.  아이가 혼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나이가 되기 전까지(대충 11살이라고 한다) 3학기마다 돌아오는 방학, 학기 중간에 있는 1주일간의 중간방학은 참 어려워보이는 시스템이다.  일하는 부모들은 조부모의 손을 빌리거나 부부가 번갈아 휴가를 쓰거나 그것도 안되면 유료 진행되는 활동에 아이들을 맡긴다.  그래서 영국의 부모들도 아이가 둘 넘어가면 한쪽이 일을 하지 않은 경우도 많고,  아니면 아이들의 학기제와 같이 갈 수 있는 직업군으로 전직하기도 한다.  실제로 누리가 다니던 어린이집 친구 (영국)엄마들이 학교 파트타임 교사인 경우가 많았다.

이런 부분이 어렵지 않냐고 지비의 사촌형수와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그쪽도 부부가 일을해서 지비 고모님이 폴란드에서 넘어와 조카를 돌봐주셨다, 그렇긴한데 아이들을 생각하면 6주마다 돌아오는 중간방학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단다.  6~7주쯤 지나면 아이들이 피곤해보인단다.  그 말을 들을 땐 그런가 싶었는데, 누리를 학교에 보내보니 정말 그렇다.  그나마 어린이집은 하루 반나절 - 이라고해도 하루 2시간 45분이라 중간방학의 절실함이 덜했는데 8시 50분 - 3시 30분까지 학교생활을 시작하고보니 정말 아이가 방학이 다가오면 기운이 빠지고 자주 아프다.  쉬어야 한다는 신호가 보인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방학이 되서 어른들처럼 늦잠 자고 잘 먹고 쉬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 종일 긴장 속에 있지 않아도 된다는 그 자체가 큰 휴식일테다.  영어를 못하는 누리는 하루 종일 영어환경에 있는 그 자체가 다른 아이들보다 더 긴장 속에 놓여 있는 셈일테고.  정말 누리는 학교 교문을 빠져나오면 애가 축 늘어진다.

누리가 12월이 들면서 감기를 앓기 시작한터라 나도 역시 방학이 기다려졌다.  물론 날씨가 추워서 여름처럼 나가 놀 수 없으니 계절에 맞는 놀거리 - 에너지 방전용 활동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나로써도 하루 두번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노동(?)을 하지 않아서 방학이 반가웠다.  아침마다 "빨리 밥 먹자", "빨리 옷 입자"하고 아이를 떠미는 일이 성격상 쉽지 않다.


하여간 누리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할 무렵 방학이 시작되었다.  집에서 푹 쉬어야 하는 게 맞는데, 방학이 시작되는 주말 본머스로 1년 영국살이를 떠나온 대학 선배 가족을 만나러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 길을 나섰다.  누리가 아주 열이 많이 나는 것은 아닌데, 낮에는 괜찮고 밤에는 열이 오르고 그런 상태여서 취소를 고려하다 약을 한 무더기 싸들고 일단 가기로 했다.  가서 잠시 밤나들이를 가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집에서 먹고 또 먹고.  오랜만에 남이 해주는 한국집밥을 먹었다, 그것도 선배의 남편분이 차려주시는 집밥.  너무 배가 불러서 더 먹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 잠시 바닷가 산책을 하고 돌아와 또 저녁을 먹었다.

본머스는 가본적 없는 도시지만, 겨울이기도 하고 누리도 아파서 우리는 별로 기대가 없었다.  내가 알만한 비유를 하자면 옛 송정 같은 분위기라고나.  한적한 바닷가. 



사실 우리는 선배네 가족만 보고 와도 괜찮은데 멀리서 왔으니 뭐라도 봐야하지 않겠냐고 해서 다음날은 인근 관광지(?)인 Hengistbury Head를 찾아나섰다.  다시 우리식으로 비유하면 송정보다 더 한적한 일광 정도.

뭐라고 읽어야 할지 알 수 없는 Hengistbury Head는 바다가 모래 둔덕으로 (거의) 닫힌 라군 지형이다.  그 모래 둔덕 위엔 여름하우스들이 있어 유명한 곳이다, 검색해 본 바에 의하면.  본머스 관광 엽서에 자주 등장하는 곳이라 '본머스에서 딱 한 곳을 간다면 - 이곳'하고 낙점했다.



누리님의 컨디션은 별로였지만 겨울날씨 치고는 너무 포근해 바닷가라도 춥지 않고 걷기 좋은 날이었다.  우리는 런던으로 돌아오는 길이 바쁘고, 선배네도 오후에 정해진 일정이 있어 서둘러 떠나왔다는 게 아쉽다면 아쉬운 점.  하지만 할 거리라곤 걷는 것과 허름한 바닷가 유일 까페에서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게 전부여서 딱 좋을 때 마무리 했다.  돌아갈 때는 미니 열차(같은 이동수단)을 타고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애초 걸어서 오갈 것이라 생각해서 아랫길로 갔다가 같은 길로 미니 열차를 타고 돌아왔는데, 큰 원형으로 바닷가를 끼고 걸어들어가면 서로 다른 길로 갈 수 있다.  이 글 보고 뭐라고 읽어야 할지 알 수 없는 Hengistbury Head를 갈 사람은 없겠지만 참고하면 좋을듯.  아무래도 아픈 애를 데리고, 아프지 않아도 5살짜리 애를 데리고 걷기엔 살짝 먼 거리.

런던에서 본머스로 갈 때는 1시간 40분만에 갔는데 올때는 3시간 반 정도 걸렸다.  차도 막혔고, 휴게소도 가야하고 뭐 그런 이유들로.  아직은 누리 데리고 장거리(?)는 힘들다.



그렇게 본머스로 방학을 시작하고, 지비는 일터로 돌아가고 누리와 나만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누리가 아주 열이 많지 않으면 거의 매일 집을 나섰다.  마트에 가서 장을 보던지, 까페에 가서 누리는 색칠을 하던지.




이곳 아이들은 방학 때 공연을 많이 본다.  전에는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우리도 그 대열에 끼여들게 됐다.  방학이면 공연을 본다.  공연을 보고나면 누리는 한 일주일은 거기에 빠져있다.  그리고 길을 가다가도 그 공연 포스터를 다시보게되면 또 이야기하고. 이날 누리랑 본 공연은 전통적인 호두까기 인형이 아닌 아이들 눈으로 스토리를 덧붙인 The Nutcracker and the Mouse King.



여전히 상태가 좋지 않던 누리.  평소엔 다 먹는 토스트를 절반만 겨우 먹었다.  아이가 기운이 없어 다 쓰러져 가더니 까페 옆 장난감 가게에 들어가니 없던 기운이 팔팔.



그리고 나머지 시간들은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다 다른 학교로 가게된 친구를 연락해서 실내 놀이터에도 가고, 실내 트램폴린 놀이터도 가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누리 친구만 만난게 아니라 우리도 그동안 여유있게 보지 못한 친구들을 연휴 기간을 이용해서 만나기도 했다.  런던 한국문화원에 아이들 동화책이 있어 빌려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만날 장소를 그곳으로 잡았는데, 우리가 간 날은 도서관이 문을 닫아 난해한(?) 전시만 잠시 둘러봤다.



그리고 2017년의 마지막 날에는 지비도 함께 공연을 봤다.  The Gruffalo and the child.  누리에겐 어떤 공연을 보러 가는지 말해주지 않았는데, 지하철 역에서 공연 포스터를 보고 "아!"하고 알아버렸다.  사진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찍었다.

앞선 The nutcracker and the mouse king은 집에서 멀지 않은 문화공간에서 있었고 The gruffalo and the child는 일명 웨스트엔드라는 공연장이 많은 시내의 한 극장에서 있었다.  "역시 웨스트엔드"의 수준은 다르다며 누리보다 더 감동한 지비.  지비는 파리 디즈니에 가서도 "내 평생 디즈니에 와보게 되다니"하면서 감동했다.  하여간 런던에 여행오는 사람들도 뮤지컬을 많이 보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가족 여행객들도 일정만 맞다면 꼭 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이들에 볼 수 있는 공연이 방학 때는 많다.  여름방학 때는 특히 KIds week이 있어서(이건 포스팅을 하지 않고 기억 저편으로 멀어져버린..) 유익할듯.

2017/06/13 - [런던일기/2017년] - [etc.] 런던 키즈 위크


그리고 한 번 더 지인을 만나 실내 트램폴린 놀이터에 갔다.  런던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어디가 가볼만해요?"라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애들 데리고 어디가 가볼만해요?"라고 물으면 할 말이 많은데. 




다른 엄마들은 전업주부라도 방학이 너무 힘들다고 하는데, 나는 처음 맞아보는 방학이라 그런지 여유가 싫지 않았다.  아침마다 애를 깨우고 서둘러 밥을 먹이고 서울러 옷을 입혀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누리가 아프지만 않았어도 더 잘 놀 수 있었는데.  그게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었다.  방학이 두 번만 더 반복되도 이 생각이 바뀌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