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Cooing's

[+1819days] 마미 말, 대디 말, 그리고…

토닥s 2017. 9. 11. 19:48

지난 8월 가족들과 폴란드에 갔을 때 공항에 도착해서 가방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이 누리와 화장실에 갔다.  손을 씻던 누리가 "어?"하고 화들짝 놀랐다.  마침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었는데 "대디 말"이라며.  누리가 보통 밖에서 듣는 말이래야 영어인데, 그날은 폴란드어였으니 누리에겐 놀라운 사실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마미 말도 할 수 있고, 대디 말도 할 수 있고, 리X코 말도 할 수 있어", "누리는 세 개 할 수 있는데, 이모는 하나 할 수 있어"라고 덧붙였다.  어린이집 일본인 친구 리X코가 영어를 하니 영어가 리X코 말이라고 생각했다.  '리X코 말'을 뭐라고 교정해주면 좋을까 생각하다 '영어'가 아닌 'English'라고 알려줬다.  뒤에 다시 언어를 말할 일이 있었는데 아직 쉽게 'English'라는 단어는 입에 붙지 않는 모양이다.

언어의 구분이 누리의 머리 속에 생겼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누리가 3살을 넘겼을 땐 지비가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한다고 답답해했다.  그래서 늘/자주 "대디한테 …라고 말해줘"라고 말했다.  그런데  누리가 조금씩 폴란드어를 사용하면서는 절대로 나에게 써야할 한국어와 지비에게 써야할 폴란드어를 뒤섞지 않는다.  나에게 영어도 하지 않으니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쓰는 일도 없다.  사실 영어가 한국어만 못하니 영어를 써야할 친구에게 한국어를 하는 일은 있어도 나에게 영어로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얼마전 마트에 장을 보러 갔을 때 누리는 우리 물건 뒤에 막대를 놓을까 여러 번 물어봤다.  우리 물건과 다른 사람 물건 사이에 막대를 놓는 일, 누리는 이 일을 참 좋아한다.  물건을 올리고, 이동하고 정신없는 와중이었는데 누리가 여러 차례 물어봐서  내가 "just leave it"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누리가 "아니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라고 말했다.  내가 앗뜨거하고 놀라서 "응 그래 올려놔"라고 답했더니 그제야 만족했는지 우리 물건 뒤에 막대를 올려놓았다.

'영어'라고 가르쳐 줘야할까 'English'라고 가르져 줘야할까 단순한 것도 한 번은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것처럼 한 순간도 언어에 관해서는 느슨해지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노력이 한국에서 유창한 영어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엄마들의 노력과 같을 수는 없지만 작다고도 하기 어렵다.  누리를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누리가 영국에 살면서 한국어를 한다는 사실에 처음엔 놀라지만, 부모가 한국인이니까 당연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절대로 당연하지 않다.  얼마전에 계기가 되서 알고지내는 한국인맘이 몇 명인지, 그 중 아이들이 한국어를 하는 건 몇 명인지 세어봤다.  6명쯤 아는데, 그 중에 딱 한 가정의 아이들만 한국어를 한다.  그나마도 학교 생활이 길어지는 첫째의 경우는 학교 생활을 하지 않는 동생의 한국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내가 그 집 아이를 처음 봤을때만해도 한국어를 참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학교 생활과 영어에 노출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길어지니 있던 한국어도 줄어든 느낌이었다.  그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다.  아이들이 한국엄마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유년기에는 한국어를 곧잘하다가 학교 생활이 시작되면 있던 실력에서 깎아먹는다는 말.  막연한 말이었는데, 현실이 된다고 생각하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생각만큼 부지런하지 않아서 잘은 되지 않는다.  한국어를 가르치겠다며 언니편에 받은 소리나는 장난감은 사용빈도가 적고 그나마 누리에겐 좀 쉬운듯한 한국어책을 열심히 보고 있다.  어떻게 어려운 한국어-자음과 모음을 가르쳐야할지는 막막하다.  그래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한국어 과외를 다른 사람에게 시키는구나 싶다.

거기에 다가오는 토요일부터 누리는 폴란드 주말학교에 가게된다.  누리가 한국어와 영어만 할 뿐 폴란드어를 하지 않아 지비가 조급함을 느꼈다.  그래서 결정한 일이다.  사실 폴란드 주말학교는 차로 10분 거리고 한국 주말학교는 차로 교통량이 없을 때 50여분 거리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한국학교가 보다 가까운 거리에 생기거나 우리가 그 근처로 이사를 가게되면 나는 꼭 보낼 생각이다.  한국학교가 나보다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한국학교 등록을 권했지만, 특유의 한국인 문화가 있어서 거리가 가까워도 다들 주저하는 눈치다.  그 마음도 이해는 되지만, 비슷한 월령기들의 아이들의 언어는 부모가 끼고 앉아 한글자모를 가르치는 것 이상이 있다는 생각을 충분히 전달하지는 못한 것 같다.  나도 전문가가 아니고, 오히려 나는 뒤따라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이니.  생각만 많다가 '일단 나나 잘하자'고 마음을 접었다.  지난 주는 학교 병설 유치원을 시작했고, 이번 주는 폴란드 주말학교를 시작하니 누리뿐 아니라 우리에게 굵직굵직한 일들이 있는 중요한 주다.  나 개인적으로도.  부드럽게 이 순간들이 흘러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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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를 보면서 언어는 확실히 때가 있다는 걸 느꼈다.  누리는 지금 '그 때'에 있다.  자주 "OO는 대디 말로 뭐라고해?"라고 물어본다.  그런데 지비는 그 단어와 같은 폴란드어를 찾는데 늘 2초가 걸린다.  그렇게 생각하면 누리가 와 있는 '그 때'라는 건 지비처럼 나이가 들어서도 올 수 있는건가 싶다.  폴란드어가 있던 자리에 영어가 들어갔으니.  아니면 그냥 지비의 폴란드 실력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부족한 것인지도.

올 봄 한국에 갔을 때 그네에 앉아 영어로 수를 세던 누리가 10-ten을 넘어 20-twenty까지 세는 걸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올 여름 부쩍 열-10 이상을 궁금해 하던 누리.  스물-20을 알고 혼자 기뻐하고 서른-30을 알고 혼자 감격했다, 누리 본인이.  그런데 서른을 배우기까지 나는 하나-둘-셋으로 시작해서 반복적으로 스물아홉-서른까지 세어야 한다는 답답함이 있었다.  한국교재들을 보면 하나에서 열까지 가르치고 열-스물-서른-마흔을 가르친다.  그건 십진수의 '이해'가 필요할 것 같아서 하나에서 서른까지를 반복했던 것인데, 하나에서 마흔까지 그리고 하나에서 백까지 가면 참 힘들겠지, 지난 주말엔 누리가 1에서 30까지 쓰는 기염을 보여줬다.  지비도 놀라고 나도 놀란 사건이었다.


30까지 쓴 사진은 없네, 정말인데.


하나에서 열까지를 배울 때도 늘 '여섯'을 빼먹더니, '열여섯'도 '스물여섯'도 잘 빼먹는다.  그리고 '-여덟', '-아홉'이 계속해서 헛갈리는 모양이다.  아이의 언어 발달을 보면 재미있는 사실/공통점을 가끔 발견하게 된다.   한국어를 배운 영국인(성인)이 자기도 늘 '여섯'이 어려웠다는 사실이나 10 이상의 수를 읽을 때 누리는 늘 거꾸로 읽는데 누리의 어린이집 영국인친구도 그렇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12'를 하나씩 떼어 읽으면서 'one-two'로 읽는 것이 아니라 'two-one'으로 읽는다.  여기에 대해선 10 이상의 영어가 'twelve-thirteen-fourteen'으로 나가기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 하는 영국엄마의 해석.  아이를 보면 이런 재미있는 사실들을 가끔 마주하게 되는데 기록으로 남길 틈이 없어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린다.  아깝다.  부지런해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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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야 누리가 30까지 어떻게 관심을 가지고, 쓸 수 있게 되었는지 알게 됐다.  바로 달력이었다.  당분간 30 이후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을 것 같다.  적어도 31 이상은.  그 동안 나는 한글 자음을 어떻게 누리의 복잡한 머리속에 넣어줄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