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Cooing's

[+1607days] TV 없는 아침

토닥s 2017. 2. 12. 05:38
얼마 전 시작한 TV 없는 아침.  우발적으로 시작됐지만, 바꾸고 싶었던 일상이었다.

누리는 끼니를 먹을 때마다 TV를 봤다.  심지어 간식을 먹을 때도.  물론 먹지 않을때도 본다.  밥먹기를 달가워하지 않는 아이를 붙잡아두기 위해서, TV에 넋이 나간 사이(?) 몰아서 정해진 양의 밥을 먹이기 위해 시작한 것이 습관과 일상이 됐다.

물론 나는 그 습관과 일상을 마음만 먹으면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아이가 TV보며 밥 먹는 동안 내가 밥을 먹을  수 있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고, 원하는 양을 부지불식간 먹일 수도 있는 그 습관과 일상을 없애는데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누리가 어린이집을 다니게 되고, 정해진 시간에 준비하고 집을 나서야 하는 환경이 되면서부터 TV는 정말 큰 어려움이 됐다.  오전반으로 옮기면서 늦게 일어나는 것까지 더해져 너무 답답했다.  나는 아주 시계같은 사람은 아니지만, 일명 코리안타임을 달가워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내 아이가 매일 같이 어린이집에 늦는다니.  재촉하는 나도, 재촉당하는 누리도 스트레스라 이 상황을 바꾸기로 하였다.  이 글은 TV 없는 아침의 간단 기록.

1일차 - 우발적으로 시작된 TV 없는 아침.  아침밥을 받고 TV를 켜달라는 누리.  켜주지 않았더니 15분을 운다.  TV 보다 늦으나 울다가 늦으나, 늦는 건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용하게(?) 어린이집 문이 닫히는 컷오프에 맞춰 등원.

2일차 - 역시 TV를 켜달라고 말은 꺼내보지만 안된다니 색칠을 하겠다는 누리.  TV를 보지 않는다고 일찍 가는 건 아닌.  라디오를 켰더니 자기가 즐겨듣는 어린이 프롬스 공연실황을 들려달라고 함.  역시 어린이집 컷오프에 맞춰 등원.

3일차 - 하루도 빠지지 않고 TV를 켜달리는 누리.  안된다니 윷놀이를 한다고 해서 식탁에 앉아 같이 한 게임.   어린이집 컷오프에 맞춰 등원.

4일차 - 토요일 아침.  보통 주말엔 한국 TV나 폴란드 TV를 보여준다.  약간 걱정이 됐지만 나들이에 들떠서 TV를 청하지 않았다.

5일차 - 일요일 아침.  TV를 켜주지 않았지만 울거나 다른 뭔가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다만 밥을 너무 천천히 먹었다.  하지만 외출 계획이 없어 재촉하지 않았다.

6일차 - 다시 월요일 아침.  아파서 어린이집을 쉬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 책을 읽어 달라고 해서, 서두를 일이 없으니 읽어줬다.  아침 먹으며 읽자니 순순히 식탁으로 따라온 누리.  TV를 켜달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책은 한 열권쯤 읽어줘야했다.

7일차 - 누리가 일어나기 전 라디오를 켜두었더니 눈뜨자 말자 하는 첫마디가 "마미 TV.."였다.  아이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당분간은 라디오도 켜지 않는 것으로.  겨우 어린이집 컷오프에 맞췄다.

8일차 - 전날 감기로 하루 쉬었던 어린이집에 돌아가고 이어 발레까지 한탓인지 아침 8시 반이 넘어서야 일어난 누리.  눈뜨자 말자 준비해놓은 아침을 먹여가며, 옷을 입혔다.  서둘러 나갔지만 역시 어린이집 컷오프에 맞추긴 무리.  TV 없는 아침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컷오프에 맞추지 못한 날. 

9일차 - 지비가 출근하기 전에 일어나기는 했지만 아침을 늦게 먹어 겨우 어린이집 컷오프에 맞춤.  밥 먹는 식탁에선 책을 봤다.  다행히(?) 내가 읽어줘야 하는 책은 아니라서 혼자서 봄.  어린이집을 마치면 너무 배고파해서 가능한 많은 아침을 먹이려고 했는데, 아침밥의 양을 줄여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보통 빵 3쪽과 과일, 우유를 먹는데 저도 이제 두 쪽만 먹겠단다.  정말 아침을 적게 먹으면 준비가 빨라지려나.

요즘 누리가 먹는 아침.  반으로 접어 곰돌이 모양 빵틀로 찍어 반쪽 곰돌이 3개를 먹는다.

10일차 - 평소와 달리 일찍 7시 반에 일어난 누리.  전날의 요구대로 빵을 2쪽만 준비해서 줬다.  하지만 늦게 먹는 건 마찬가지.  겨우 어린이집 컷오프에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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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삼아 며칠 동안 써본 TV 없는 아침 일지.
아침 시간이 바빴던 것도 여전하고, 아침밥/빵을 먹이기 위해 재촉했던 것도 여전하다.  그런데 열흘 동안 하루를 제외하고 어린이집 컷오프에 맞췄다는 사실이 변화라면 변화다.  누리가 아침을 먹으며 TV를 볼 때보다, 그렇지 않을 때 내가 더 신경 쓸 것이 많다.  어떤 때는 같이 앉아  먹어줘야하고, 책을 읽어줘야하고, 색칠을 해줘야하니까.  하지만 정말 바꾸고 싶었던 습관이니까 계속해볼 생각이다.  어느 날엔 점심, 저녁 식사에도 TV 없는 날을 꿈꿔보면서.  아이가 크면 그런 시간이 더 근사할 것 같다.  하루 이야기도 하고, 음식 이야기도 하면서.

+

그리고 오늘 토요일.  일어나긴 했지만 아픈 탓에 영 기운이 없어 이불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누리를  아침 테이블로 부르기 위해 지비가 TV를 켜자고 했다.  갈등이 일었지만 안된다고 했고, 어렵게 누리를 이불 속에서 끄집어 내서 겨우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먹고 나니 기운이 생기는지 하루 종일 잘 보냈다.  그러다 저녁무렵부터 기운이 떨어지는지 짜증내다 겨우 목욕하고,  밥 먹고 바로 골아떨어져 잠들었다.  낮시간에 누리가 괜찮은 것 같아 약을 주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오늘 밤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나도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지난 주부터 누리가 아프기 시작해서, 지비가 이어받고, 그 다음 내가 이어받아 앓았다.  한 4일 누리가 저녁 9시에 잠들고 이어 나는 저녁 9시 반 취침했다.  그러고서 나는 나아졌는데 누리가 다시 아프다.  이 끝나지 않는 릴레이는 언제나 끝이 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