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일기/2016년

[place] 영국박물관 British Museum

토닥s 2016. 9. 22. 08:12

한국에서는, 그리고 나도 '대영박물관'이라고 불렀던 '영국박물관'에 지난 주 토요일에 다녀왔다.  얼마전 지비 가족이 왔을 때 갔던 곳이기도 한데, 그 때 누리와 나는 선물가게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지난 주엔 한국의 추석을 테마로 하는 이벤트들이 있어 다녀왔다.


일년 반 전에 언니가 영국을 방문했다.  언니가 차에 타서 '대영박물관'이 영어로 뭐냐고 물었다.  입국할 때 이민국 직원이 여행목적을 물었는데 '여행'이라고 답했더니 어디 갈꺼냐고 되물은 모양이다.  언니의 머릿속엔 '대영박물관'이 있어 "Great UK museum" 라고 했더니 이민국 직원의 반응이 "%$#%#$%" 그랬단다.  이민국 직원은 언니가 과연 영국을 제대로 여행할 수 있을지 걱정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기서 '대영박물관'은 the British Museum이라고 한다. 

이 일을 겪고서 생각하니 the British Museum을 직역하면 '영국박물관'인데 왜 우리는 '대영박물관'이라고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 사이 스며든 사대주의가 아닐까 싶어서 그 이후 '영국박물관'이라고 쓰고 '대영박물관'이라고 덧붙여준다.


영국박물관은 Holborn과 Russel Square라는 역 사이에 있는데 홀본은 정문으로 들어가는 대신 번잡한 길을 가야하고, 러셀 스퀘어는 후문으로 들어가는 대신 걷는 길이 쾌적하다.  그런데 번잡하고 쾌적함을 떠나서 지난 달 나도 몇 년만에 영국박물관에 갔더니 보안검색 구간이 생겨서 정문쪽은 줄이 길다.  지비의 가족과 방문했을 땐 기념사진을 위해서 정문으로 갔지만, 이번엔 후문으로 갔다.  역시 줄이라고 할 것도 없이 금새 들어갔다.  여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참고하면 좋을듯 하다. 


영국박물관 후문으로 들어와 중앙홀로 들어가니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로 무척 시끄러웠다.  중앙홀 정면에 세워진 무대에서 한국전통음악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공연이 있었는데 박물관은 공연을 위해 세워진 곳이 아니다보니 소리울림으로 시끄럽게 느껴졌다.  솔직히 소음에 가까웠다.  우리는 정면 무대를 피해 한쪽에 마련된 가족 수공예체험 - 연만들기와 제기만들기 코너로 갔다.



친절한 스태프들과 넉넉하게 준비된 재료로 연을 만들긴 했지만, 무대의 소리 때문에 집중이 안됐다.  누리의 말소리는 더더욱 안들렸다.  나중에 K-pop 무대가 되어서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할 정도였다.

누리는 재미있게 연에 그림을 그리긴 그렸지만 중앙무대라고 할 수 있는 공연의 소음과 누리 나이엔 버거운 연만들기가 좀 아쉽긴 했다.  그림은 누리가 그리고 연을 만드는 건 내가 했다.  그런 우리 옆 부모들도 마찬가지.  나이 막론하고 빈 탈에 그림 그리기 정도가 좋지 않았을까 싶다.  혹시 관계자가 보시면 다음에 참고하면 좋겠다.



소음 피해 누리가 해볼 꺼리를 찾아 전통놀이체험 코너로 갔더니 투호만 덩그러니 있었다.  그런데 누리는 여기서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만 그런게 아니라 다른 집 아이들도.  투호와 함께 다른 전통놀이들도 있었다면 좋았겠다 싶다.



그리고 연만들기와 제기만들기 코너 만큼이나 인기가 있어보였던 한복체험.  한복을 입어만 보는 게 아니라 즉석사진을 찍어줘서 애들보다 젊은층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가족단위 방문객은 스토리텔링에 많이 모였다.  우리는 한 주 전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에서 본 할아버지 스토리텔링이라 생략하고 급하게 점심을 먹으러 갔다.



영국박물관에서 소호로 이동하면서 발견한 YMCA건물.  세계 최초의 YMCA라는데 YMCA는 미국이 시초가 아닌가 하며 지나갔다.  그날 우리는 완전 관광객모드였다.  사실 시내 나갈 땐 늘 그런 느낌이다.  우리가 사는 동네도 시내에서 그~렇게 멀지는 않은데 시내만 가면 시골쥐가 되는 기분.



누리가 연을 팔랑팔랑 흔들며 우리가 점심을 먹으러 간 곳은 소호 안에 있는 프렛 pret a manger.  프렛타망제는 커피 샌드위치 같은 간단한 끼니를 파는 곳인데, 소호에 채식주의 전문점을 열었다.  예전에 뉴스로 보고 가보자 했던 곳인데 그날 동선 안에 들어 있어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영국박물관에서 걷기에 멀지는 않은데 배고픈 누리에겐 좀 먼거리였다.



우리는 케일 치즈 마카로니, 아보카도 브리치즈 토스트, 크로와상을 커피와 함께 먹었다.  생각보다 괜찮았지만 허전한 느낌도 없지는 않았다.  점심을 먹으면서는 집에가서 소시지라도 씹어먹자고 했는데, 생각보다 귀가가 늦어져 올리브 토마토 오이를 넣은 파스타를 저녁으로 만들어 먹었다.  완전 채식의 토요일.



채식은 미래


우리가 앉은 자리 옆에는 방문객들이 남긴 메모판이 있었다.  재미있는 글, 그림들도 있었다.

지비가 흥미롭게 봤던 것은 방문객들.  90%가 여성이었다.  커피와 샌드위치 정도를 파는 곳이니 한국의 입장에선 당연한 것 같지만 여기선 남녀노소가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먹기 때문에 90%의 방문객이 여성이라는 점이 지비에겐 흥미로운 발견이었다.

맛 있었지만 허전함을 지울 수 없는 점심을 먹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데 구름떼처럼 사람들이 몰려 있는 길목을 지나게 됐다.  구름떼처럼 몰려 있는 사람들은 특이한 복장의 행인들을 찍고 있었다.  뭔 일인가 싶어보니 런던패션워크.  우리도 쉬크하게 기념 사진 한 장.




역시 동선 안에 있어 잠시 들러 본 홀푸드.  물건들이 싸지는 않지만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 지비는 팬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쇼핑카트를 질질 끌고 다니며 물건을 닥치는대로 담고 싶어하는 만 4세 유/아동이 있어 필요한 것만 몇 가지 사서 급하게 나와야 했다.



홀푸드에는 동네 마트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유기농제품들이 있는데, 특이한 풍경 하나는 '홀푸드 장바구니'를 다양한 디자인으로 많이 판매한다는 점.  거의 계산대 뒷 벽을 가득채울 정도의 다양한 디자인이 있었다.  그걸 보니 홀푸드를 이용한다는 그 사실 자체가 트랜드가 아닌가 싶었다.  홀푸드 가방 그게 홀푸드의 정신인지는 모르겠지만, 친환경주의라고 들었으니 다시 사용하는 장바구니의 개념과 정신일텐데 모두 그 장바구니를 사는 걸 보니 좀 껍데기 트랜드 아닌가 싶다.  주택가 지점이 아닌 시내 지점이라서 그런가.  하여간 나는 늘 가방 한구석에 장바구니가 있어 그걸 사용했다.  나는야 아줌마.


그리고 그날의 또 다른 목적지에 도착했다.  누리가 열심히 보는 도라의 탐험을 만든 제작사 nickelodeon의 선물가게.  이 제작사를 뭐라고 읽는건가.  지비는 '니켈오데온'이라고 하고 나는 '닉 로데온'이라고 한다.



우리의 목적지를 모르고 따라만 갔던 누리는 건물 안에서 유리창을 통해 밖으로 손 흔드는 스폰지 밥을 발견하고 무서워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때부터 도라를 발견할 때까지 매달려 내려오지 않았다.  누리는 스폰지 밥이 치즈란다.  그러고 보니 구멍 송송 치즈 같이 생겼네.

드디어 발견한 도라 섹션.  인형, 옷, 식기류까지 없는게 없었다.  지비와 나는 도라가 그렇게 유명한지 몰랐다.  이 선물가게를 검색할 때 갔는데 도라 관련 상품이 없으면 어쩌냐고 걱정했었다.  한 개라도 있겠지하면서 갔는데, 상품은 물론 커다란 터치 스크린의 게임, 색칠 코너까지 있어서 누리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누리와 지비를 여기에 남겨 놓고 트라팔가 스퀘어의 세월호 추모 침묵 시위로 고고.



(침묵시위가 끝날 때쯤 와서) 사진 찍힌 누리. 


대비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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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숨가뿐 토요일을 보냈는데, 이틀 뒤가 다시 토요일.  시간 참 빠르다.  런던의 계절은 열흘 전 여름에서 빠르게 가을을 관통하고 있다.  곧 겨울 오겠지.  그러면 크리스마스 연휴도 오겠지.  지비와 나는 그것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