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Cooing's

[+1462days] 이제 만 4살

토닥s 2016. 9. 20. 07:07

어제로 누리는 드디어 만 4살이 되었다.  어제의 기록은 어제 남기고 싶었지만 체력이 허락하지 않아서.


올해 생일은 어린이집에서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 가족과 함께 피크닉을 해볼까 생각했었는데, 누리 생일 앞뒤로 그 친구들 생일이 있어 우리가 미리 시간을 잡기 위해 말을 꺼내면 부담을 가질 것 같았다.  그러던 중 그 친구들 중 한 명의 생일이 있었는데, 엄마가 만든 케이크와 두 개의 헬룸 풍선을 받은 아이 사진을 보니 '이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는 풍선 2개 이외에도 스쿠터를 선물로 받았다.  누리는 케이크에 촛불을 붙이고 부는 건 알지만 '생일'이라는 개념이, 생일엔 '선물'을 받는다는 개념이 아직 없다.  그래서 케이크를 먹으면 생일 막론하고 촛불을 불려고 한다.  그런데 굳이 우리가 '생일-선물-케이크'라는 도식을 만들어줄 필요는 없는 것 같아서 소박하게 우리 끼리 지내기로 했다.  다만 (우리가 먹고 싶은) 케이크만 주문해서 먹는 걸로.  그런데 생일이 다가오니 아무래도 (심약한) 지비는 그냥 넘어가는 게 서운한지 사촌형네를 불러 함께 축하하자고 했다.  이 사촌형네는 같은 런던에 살아도 지비의 고모님이나 오셔야, 주로 부활절 또는 크리스마스, 만나거나 폴란드에서 만나는 게 더 자주 있는 일이다.  부부가 육아 때문에 주중/주말 번갈아 일하기 때문에 만나기 어렵다.  일주일 남겨두고 '일단' 연락을 했더니 바로 오겠다고 답을 해와서 지인의 한국레스토랑에서 밥을 함께 먹기로 했다.  어제가 그날.


오전에 집을 떠나면서는 지비와 나의 신경전이 상당했다.  레스토랑까지 가는 건 30분인데 주문한 케이크를 가지러 갔다가 레스토랑으로 출발해야는데 집을 나서야 하는 시간에 집청소를 하겠다는 지비.  얼른 한다고 했지만 얼른 될리가 없다.  지비 깨갱깨갱.  시간에 늦어 급하게 케이크를 가지러 가는 길에 내가 미리 사놓은 초를 집에 두고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깨갱깨갱.  집에 들러 초를 가지고 서둘러 레스토랑으로 가야는데 구글로 길과 교통량을 확인하고 가겠다며 검색삼매경에 빠진 지비.  그렇게 구글로 찾은 길이 내가 네비게이션에 찍어놓은 길과 같았다.  시간을 지체만 했다며 내가 버럭.  지비 깨갱깨갱. 

내 손으로 누리 생일밥상을 차린 것은 아니었지만, 준비한 선물을 숨기고, 누리의 점심과 간식 그리고 장난감을 챙기느라 정신 없는 아침이었다.  친구들 가족을 불러 피크닉을 했으면 어쩔뻔 했냐며, 내년이라도 그런 이벤트는 마련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사촌형네 가족과 늘 한국식당에 가보고 싶었는데, 은근 폴란드 사람들이 자기 음식만 고집해서 쉽지 않았다.  물론 그 집 형수님은 한국음식을 아주 먹어보고 싶어했다.  하여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맛있는 누리 생일밥상을 먹었다.  그래서 더 좋았다고 어젯밤 평가했다.



일본 베이커리/까페에서 주문한 딸기 케이크.  사촌형네가 너무 맛있다고 좋아했다.  사실 나는 좀 느끼한 감이 있었는데.  그래도 전체적으로 맛있는, 영국의 빵집에선 먹을 수 없는 케이크였다.  영국빵집이 있기나 하던가.


우리는 이 케이크를 생일 선물 삼아 먹자고 했다.  그래도 누리는 좋아할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토요일에 시내에 나갔다가 누리가 요즘 열심히 보고 있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제작사의 선물가게에 들렀다.  누리는 요즘 도라의 탐험이라는 애니메이션을 열심히 본다.  5월에 한국에 갔을 때 한국어 하는 도라가 영어를 가르쳐주는 걸 열심히 봤는데, 지금은 폴란드어 하는 도라가 영어를 가르쳐주는 걸 열심히 보고 있다.  선물가게에 가서는 "와 도라!"하고 했지만 사주지는 않았다.  아니 사지 않은 걸로 누리는 알았다.  지비와 누리를 그 선물가게에 남겨두고 나는 인근에 볼 일 보러 가면서 이 인형을 사서 가방에 숨겼다가 생일인 어제 선물로 주었다.  인형을 살 땐 그냥 샀는데 집에 돌아오니 한국의 언니들이 누리의 생일이라고 용돈을 보낸다기에 그럼 이 인형을 한국의 이모들이 사주는 걸로 둔갑(?) 시켜 누리에게 전달하였다.



그런데!  지난 겨울 크리스마스에 누리에게 바비인형을 선물해서 나를 당황하게 한 이 사촌형네가 이번엔 신데렐라 드레스와 신데렐라 인형을 선물했다.  선물은 고맙지만, 솔직히 반갑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냥 사촌형에게 밥이나 먹자고 연락하라고 했던 것인데 지비가 생일이라고 연락을 해서 이런 일이.  지비 말은 바쁜 사촌형네 가족이 그냥 밥이나 먹자면 만나지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을 했다나.



집에 오는 길에 놀이터에 잠시 들렀다.  놀이터를 떠나지 않으려는 누리에게 "집에 가서 드레스 입어보자" 했더니 흥분해서 깡총깡총 뛰다가 벤치에 부딛혀서 울고불고.  하여간 어째 집으로 오긴 왔다.  집에 도착하자 말자 바로 옷을 입어본 누리.  좋다고 사진을 찍었는데 가렵단다.  역시 내 딸인가보다.  그래서 입을 수가 없단다.  그 이후 그냥 남겨진 신데렐라 드레스.  참 다행이다 싶다.  심지어 오늘 낮에 커피를 마시러 갔다 일어날 생각을 않기에 "집에 가서 드레스 입자"고 했더니 "가려워서 안입는다"고.  속으로 '야호!'를 불렀다.  포장을 잘 보관했다 중고로 되파는 건데 아쉽네.


+


이렇게 누리의 생일이 부드럽게 지나가는가 싶더니 누리가 어젯밤 목욕을 하고나서 콧물을 훌쩍.  5월에 한국 다녀와서 자잘한 감기 한 두 번을 제외하고 여름을 보냈는데 생일에 갑자기.  아이들은 생일무렵되면 아프다더니 정말 그런 게 있는 것인지.  오늘 아침 일어나니 영 감기 기운이 깊어서 어린이집도 가지 않았다.  지난 주부터 어린이집도 가기 시작했지, 이후에 체육수업들도 받았지, 그나마도 없는 날엔 놀이터가서 놀았지.  어린이집 아침반으로 옮겨 평소 수면시간보다 1시간이 줄었지.  아플만도 하다 싶다.  참 정직한 어린이들.  덕분에 오늘도, 아마도 내일도 나는 열심히 어린이채널을 시청하게 될 것 같다.